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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Jul 15. 2020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정

소중한 사람, 어머니

일본으로 대학을 가게 된 아들이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자취방만 얻어주고 와서 내내 마음이 아팠다. 아직 언어가 미숙했던 아들은 자취방에 필요한 전자제품, 가구, 주방 도구, 생필품 등을 홀로 애써가며 마련했다. 대학교 입학도 홀로 했다. 그랬다. 애틋한 내 아들은 홀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본인의 인생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이 마음에 훅 들어와 가슴을 후벼 팠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아들이 걱정되어 가보려던 터였다. 마침 아들도 챙겨줄 겸 어머님과 함께 여행하면 좋을 것 같았다. 어머님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기도 해서 여행을 제안했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몇 년 전 어머님은 수술로 미뤄졌던 여행을 드디어 이번 기회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버님은 가게를 비울 수 없어  동행하지 못했다. 어머님도 가게를 오래 비울 수 없어 2박 3 짧은 일정의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짧지만 어머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큰 의미가 있었다.


어머님과 남편, 작은아들과 함께 큰아들이 있는 일본 히로시마로 여행을 떠나왔다. 큰아들과 히로시마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히로시마 공항에서 내려 리무진 버스를 타고 다시 히로시마 역으로 향하는데 버스는 왜 그리도 더디게 가는 것 같은지 내 마음은 벌써 히로시마 역에 가있었다. 드디어 역에 도착했다. 보랏빛 티셔츠에 단발머리 아들이 와락 안긴다. 용감하게 잘 버티며 지내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마음이 찡했다. 그동안 머리는 한 번도 자르지 못했다고 했다. 단발머리가 된 아들은 다른 사람 같았다. 아들을 보러 오기도 했지만, 어머님과 함께였기에 히로시마 관광을 하기로 했다. 큰아들은 자연스럽게 가이드가 되어줬다.


역에서 점심을 먹고 열차를 타고 이동하여 다시 배를 타고 미야지마 섬으로 향했다. 그곳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조금 여유가 생긴듯한 큰아들과 함께여서인지 섬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다. 오랜만에 아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음에, 눈동자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얼마나 가슴이 벅차던지.

많이 걸어야 하기에 어머님이 걱정되었지만 의외로 어머님은 잘 걸어 다녔다. 허리와 무릎 수술로 불편할 텐데도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큰아들 오랜만에 만나 미야지마 섬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섬을 둘러본 후 다시 숙소로 향했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님은 곳곳을 둘러보며 인상 깊었던 것은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열차 내부조차도 깨끗하다면서 신기해했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정리해놓고 맛집이라며 큰아들이 안내해주는 식당에서 저녁으로 곱창전골을 먹었다. 온 가족에게 인기였다.


알찬 하루를 보내고 한국에서 가져온 먹거리, 약 등을 챙겨 어머님과 함께 큰아들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비어있던 자취방에 큰아들이 홀로 장만해 놓은 살림살이를 구경했다. 제법 필요한 것들을 잘 사놓고 잘 지내고 있었다. 그동안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용감하게 잘 지내준 것이 고마웠다. 집안의 먼지를 닦고 주방에는 가져온 먹거리를 정리해주고 옷장 정리를 해줬다. 자취방을 둘러보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어머님은 남자가 이 정도면 깨끗하게 잘 지낸 거라며 큰 손자에게 힘을 북돋아 줬다. 큰아들은 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같이 자고 싶어 했다. 나와 남편은 어머님과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피곤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머님도 힘들고 피곤했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다며 정말 괜찮다고만 했다. 어머님이 여행에 잘 적응해서 참 다행이었다. 바쁘게 움직였던 하루가 저물었다.


둘째 날은 큰아들이 다니는 대학교 탐방을 하기로 했다. 일찍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다. 어머님이 잘 모를까 봐 알려주려 하는데 이미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아놓고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날라다 줬다. 뿌듯해하며 날라주는 어머님이 너무 보기 좋았다. 적극적이기도 해서 다행이었다. 일본 여행이 처음인데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깨끗해서 좋다며 아침 식사를 흡족해했다. 아침을 부지런히 먹고 큰아들이 다니는 대학교 구경에 나섰다. 깨끗하고 잘 정돈이 되어 있는 아담한 학교였다. 아들은 학교에 걸어서 다닌다고 했다. 학교생활도 선배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할 수 있었다며 만족해했다. 큰아들의 안내로 학교 도서관, 수업받는 교실, 학교 식당 등을 둘러보았다. 어머님은 자전거가 끝도 없이 세워진 자전거 주차장을 보며 신기해했다. 학생들은 자전거로 통학한다고 했다. 큰아들은 걱정했던 거와는 달리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말해줬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마음이 놓였다.


학교를 둘러본 후 가까이에 있는 어느 성으로 이동했다. 비가 간헐적으로 내려서 시원하게 관광할 수 있었다. 성 전망대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멈출 때까지 전망대에서 앉아 있는데 전망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바람이 지나가는데 순간 어머님과 마주 보며 웃었다. 어머님과 같이 그 바람을 느끼다니 기분이 참 묘했다. 어머님께서 여행을 즐겁게 즐기는 모습에 내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비가 그쳐서 근처 관광지를 돌았다.


다 둘러본 후 근처 번화가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에 가서 저녁으로 오코노미야키를 먹었다. 어머님도 맛있다고 했다. 어머님과  추억을 남기게 되어 기뻤다. 맛있는 저녁을 끝으로 여행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너무나 아쉽게도 큰아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갑자기 어머님은 큰아들한테 자전거 사라며 돈을 건네줬다. 아들한테 할머니의 마음이니 받으라고 했다.


역시나 어머님은.

여행조차도 손자를 챙기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홀로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지내는 것이 걸려서.

힘들었을 손자 마음 어루만져주려고.

그 손자 불편하지 말라고 자전거도 사주고.


아쉬운 마음으로 큰 아들을 보낸 후 어머님과 함께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자 큰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갑자기 펑펑 우는 것이 아닌가. 남편과 함께 아들 자취방으로 쏜살같이 갔다. 집에 갔는데 가족과 헤어지니 감정이 북받쳤다며 큰아들은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홀로 적응하느라 나름대로 마음고생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동안의 생활을 어찌했는지 또한 힘들었던 이야기부터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 즐거웠던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밥을 지으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빨래를 하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청소를 하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극한의 외로움을 느꼈으리라.  부모님 걱정할까 봐 괜찮다고만 했던 아들은 직접 마주한 가족 앞에서 감정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동생과 함께 자던 날 동생이 보고 싶을까 봐 잠든 동생의 얼굴을 보고 또 봤다고 했다.  가족의 온기가 많이 그리웠던 아들에게 힘내서 잘 이겨내자며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한참을 곁에 있어준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와 보니 어머님이 옷도 안 갈아입고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너무 걱정되어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여행의 마지막  걱정을 끼치다니 너무 죄송했다. 어머님과 마지막 밤을 함께 자고 일어나 보니 어머님은 침구와 가운을 원래대로 정리해 놓았다. 한국 욕 먹이면 안 된다면서.


히로시마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마음이 이상했다.

인생은 늘 기쁨과 슬픔, 아쉬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애틋한 아들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머님께는 순수한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엔 또 챙겨주는 여행이라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려왔다. 내 어머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래도 어머님과 함께 나름대로 여행을 여유롭게 즐겼다. 바람과 비, 나무와 열차를.

어머님과의 여행은 편안했다. 어머님의 적극적인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종종 어머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야겠다.


한평생 가족만을 위하여 살아온 삶

그렇게 사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어머님

어머님은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한결같았으며

캥거루족 인생으로 사는 것이

때로는 버거웠지만

어머님의 깊은 사랑 표현이었음을

이토록 넘치는 사랑을 받아서

충분히 행복했노라고

어머님의 그 여정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정이었음을


'어머님께 한없는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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