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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Jul 09. 2020

고백

소중한 사람, 어머니

봄이 올 무렵 어머님과 함께 처음 떠나게 될 여행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어머님과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같이 가본 적이 없다. 평생 일만 하던 어머님과 모처럼 준비했던 여행이었다. 어머님께 찾아온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오랫동안 앓아온 척추질환으로 허리가 이젠 버티지 못하고  탈이 난 것이다. 수술 날짜까지 어머님은 극심한 통증을 견디며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수술받기 전날 어머님은 입원했다. 그날 저얇은 이불과 세면도구를 챙겨 어머님이 입원한 병실로 향했다.

"어머님, 제가 곁에 있을게요."

"아니여, 괜찮어."

"아니에요. 어머님, 오늘만이라도 있을게요."

"아니여."

어머님이 곁에 있겠다는 나를 말리며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이불을 넣어온 가방이 조금 찢어졌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렇게까지 거절을 하다니 어머님은 너무나 완강했다. 그런 상황이 지난 후에 아버님이 왔다. 어머님은 아버님께 나를 가리키며 고집을 피운다고 했다. 아버님은 언짢은 얼굴로 어머님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했다. 어머님 곁에 있어 주려 애쓴 것이 고집을 피운 것으로 비추다니 그 병실에 더는 있을 수 없었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찢어진 가방을 들고 병실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이튿날 아버님이 전화해서 잘못한 것 같다며 사과했다. 아버님께 왜 그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뭘 잘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속상했던 마음을 토로했다. 어머님도 전화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지만 속상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아버님도 남편도 일 때문에 많이 바쁘기도 해서 어머님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어머님께 미리 물어보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었다. 거절하는 것은 괜찮았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지나친 거부반응을 보였던 어머님의 태도였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어머님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충격을 받았다.


속상한 마음을 미뤄두고 어머님 수술 당일이라서 어머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어머님은 입술이 파랬고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얼른 이불을 덮어줬다.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님은 간병인이 돌봤다. 매일 병실을 찾아갔지만, 어머님은 그 무엇도 필요 없다며 괜찮다고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님이 아플 때조차 도움이 되지 못하다니.


일 년 후에 또다시 어머님은 무릎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받게 되었다. 어머님 허리 수술할 때의 상처가 떠올랐다. 그때의 상처가 너무 컸기에 병문안 가는 것조차 두려웠다. 간병인을 구해놓고 병문안만 조심히 다녔다.


어머님은 받지 않고 오로지 주기만 하는 사람이다. 선물도 용돈도 받지 않는다. 선물하면 돌려보냈고 용돈을 주면 오히려 배가 되어 되돌아왔다. 이유를 물어보면 아이들 키우느라 쪼들린다며 괜찮다고만 했다. 언젠가 생일선물을 돌려보냈을 때 어머님께 마음도 몰라준다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그 이후에는 선물을 받아줬다. 그렇지만 거절에 대한 상처가 쉽게 아물지는 않았다.


어머님은 퇴원 후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다시 김치, 식자재 등을 열심히 날랐으며 생일 음식도 변함없이 만들어 줬다. 회복되었더라도 허리, 무릎 수술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하는데 이전과 똑같이 늘 하던 일을 변함없이 했다. 그런 어머님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또한 그 무엇도 받지 않으려는 어머님이 서운하기도 해서 어머님 마음을 밀어냈다. 사실 어머님이 챙겨주는 마음이 헷갈려서 어머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어머님과 믿음으로 맺어왔던 관계가 모래성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이후 불편한 마음이 자리 잡아 어머님과 소통하는 것이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행동이 뻣뻣했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냉소적인 며느리로 변해갔다. 그렇게 벽이 생긴 채로 시간은 흘러갔다.


결혼 전부터 좋아했던 어머님.

생활 속의 모든 것을 챙겨줬던 어머님.

내 생일을 거대하게 챙겨줬던 어머님.

그런 어머님을 존경했던 나.

어머님과의 모든 것이 다 거짓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오랜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냈다. 그 이후로 도망간 내 마음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고백한다.


 '어머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일이 잊히지 않아요. 잊으려 애써봤어요. 그런데 허리 고쳐주는 병원만 보이면 자꾸만 그때가 떠올라요. 상처가 컸나 봐요. 어머님 곁에 있어 드리고 싶었는데. 수줍은 미소를 보이시던 어머님이었는데 그때 완강하게 거절했던 그분이 제 어머님 맞나요? 아직도 믿고 싶지 않아요. 저 사실은 어머님이 많이 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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