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맘 Apr 11. 2022

어쩌다 정원, 어쩌다 사장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닌 어쩌다 마주쳐도 운명일거라

초저녁, 정원에 물을 주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다 정원에 물을 주고 있지? 나는 어쩌다 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지? 나는 어쩌다 사업자를 내고 가게를 운영하게 됐지? 어쩌다가 도대체 어쩌다가.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 참꽃마리가 피어있다. 작년엔 그토록 찾아 헤매도 보이질 않아 들판에서 퍼올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더랬다. 그런데 올해는 정원 밖에 덩굴꽃마리가 찾아오질 않나, 심지어 여긴 버려둔 화분인데 참꽃마리가 찾아왔다. 뒤켠에 숨겨두었던 버려진 화분을 다시 정원으로 들여왔다. 꽃마리가 자리를 잡은 이상, 이 아이가 정원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릴 적 기억에만 남아있던 꽃마리를 다시 알아보기 시작한 때부터 내 삶이 조금씩 바뀐 것처럼.


정원에 물을 주는 일은 결코 집중할 수 없다. 자꾸만 한눈을 팔게 되니 말이다. 다시 물을 주기 시작했으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틀림없는 원평 소국이다. 작년에 입구 돌담에만 심어두었던 소국이 여기에 터를 잡다니, 반가워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다 어제 잡초를 매다 실수로 끊어먹은 또 다른 곳의 원평 소국이 떠올랐다. 다시 자리 잡았을까? 두근두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찾아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들시들하다. 뿌리를 다쳤나 보다. 무자비했던 나의 괭이질을 후회하며 다시 방금 만난 원평 소국에게로 돌아갔다. 주변의 덩굴풀이 곧 집어삼키기 직전이라 가까운 곳의 잡초를 조금 매주었다. 그리고 사진으로 남겼다. 멀리까지 날아와 찍은 원평 소국의 점. 너도 어쩌다 정원 안의 식구가 된 거네?


점, 오늘 새로이 만난 식물들의 점은 내가 찍어온 여러 점들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 점이란 그저 ‘열심히 혹은 일단 살았음’, ‘꾸준히 혹은 일단 걸었음’ 정도를 의미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때마다의 점들이 연결, 또 연결되어 지금에 이르렀겠지, 여기로 흘러왔겠지 생각할 뿐이다. 어찌어찌 나의 점들은 나를 긍정적인 곳으로 이끌어왔다고 끄덕여본다. 지금 정원에 물을 주면서 식물들을 만나고,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잎사귀를 재보며 이토록 살아있음을, 풍요로움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정원에 선 지난해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 어디에 무슨 꽃을 심었고 어디에 무슨 씨앗을 뿌려놓았는지 나만 아는, 이제는 어쩌다 정원이 아닌 조금씩 나의, 우리의 정원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낯선 이들의 발걸음도 쉽게 눈치챌 수 있지 않겠나. 이 또한 한 해동안 부지런히 찍어둔 점들이 연결된 것이라 믿는다. 우연의 일치 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닌 운명 같은 만남. 또 무엇을, 무엇과 어쩌다 마주치게 될지 몰라 인생을 재미있다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겹 복사꽃 아래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