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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가장 Aug 07. 2020

상처에 매몰되지 말자.

가로등 불빛이 너무 싫어요.

"전 가로등 불빛이 너무 싫었어요"


어둠 컴컴한 길가에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나는 유난히 싫었다. 이유도 없이 싫었다.

© sveninho, 출처 Unsplash, '가로등 불빛'

어릴 적, 엄마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시면 내가 잠들기 직전에야 집에 돌아오셨다. 당시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셨고, 고생하는 엄마가 언제 돌아 오실까를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마치 그림을 그릴 때 소실점(*소실점 : 물체를 입체로 그릴 때 기준)을 잡는 것처럼 엄마의 모습이 보일 것 같은 골목길 끝점을 바라보며 집 앞 가로등 불빛 아래서 항상 서 있었다.


왠지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가로등 불빛 아래의 골목길을 지나서 엄마가 일하는 곳을 찾아갔다. 식당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확인 후, 안심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 가로등 불빛만 생각하면 자동으로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곤 했다.


엄마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 “내가 너희들만 아니면 집 나가서 편히 혼자 살 수 있는데.”라는 말을 하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되면 그랬을까 이해도 되지만, 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엄마를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큰 두려움이었다.


떠날 것 같은 엄마를 기다리는 그 시간 전봇대의 불빛이 나와 항상 함께 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함께 해 주던 그 불빛이 왜 그렇게 싫었던 것인지.

© carlosjonayss, 출처 Unsplash. '골목길 끝'

그리고 그 골목길의 끝은 왜 그렇게 멀었던지.


그땐 그것이 상처 인 줄도 몰랐다. 성인이 된 순간에도 심리 교육을 받기 전까지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었지만 말하지 못했던 가슴 아픈 기억.


내 과거와 아픈 기억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일일이 설명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기억으로 상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데도 눈시울과 함께 내 마음속에서 아련한 기억으로 순간 떠오른다.


굳이 상처를 끄집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내 주변에도 “굳이 잘 살고 있는데, 비싼 돈 들여서 교육받고 왜 울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지인도 있다.


그러나 그 짧은 기억을 꺼내고 나누고 치유받다 보니 응어리 진 상처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


그 상처를 통해 내가 그 상황과 나의 엄마를 계속 원망하고 비난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처에 매몰이 되면 삶에 좋은 유익한 것들은 벼룩이 내 간을 조금씩 갉아먹듯 조금씩 닳아 없어질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말하지 못하는 아픔과 상처를 마음속에 하나씩은 숨기고 산다.


분명 상처인데 상처가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전혀 모르고 살 수도 있다. 혹시 ‘진짜 상처와 가짜 상처’를 구분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해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보이는 부분만 ‘후시딘 연고’을 바르면 쉽게 치료가 되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는 드러내지 않은 이상 쉽게 치료가 안 된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는 무겁게 오래 간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상처 없이 키우고 싶은 엄마 마음으로 상처엔 후, 후시딘 / 동화약품 홈페이지 사진 일부


정성현 저자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라는 서적에서는 마음의 상처가 흉터가 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무늬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 상처에 누군가 귀를 기울여 주면 그 상처가 아름다운 무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상처에 너무 매몰되지 말자.’ 그렇다고 상처가 무서워서 피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 상처를 잘 극복하고 마음이 한 단계 성장하면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나이가 들어 피부에 상처가 나면 회복 속도가 더딘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나이 들면 회복이 더디다. 상처 받았다고 동굴을 찾아서 계속 매몰되어 들어가면 회복될 기회도 놓치고 마음은 죽어갈 것이다.


가로등 불빛이 싫다고 전봇대 등불 전원 버튼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모두 끌 필요도 없다.


하나하나 그 상처를 상대하다 보면 내가 지쳐 쓰러지게 될 수 있을 테니.


상처 받았다고 미워하는 마음을 크게 키우지 말고, 전원 버튼을 모두 끌 필요 없으니 그냥 당당하게 걸어 나아가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내 상처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상처 또한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가로등 불빛아. 이제는 너 싫어하지 않을 거야.”


상처를 상처로 남기지 말고, 아름다운 무늬로 남겨 보는 인생으로 살아가 보자.


“완벽하지 않은 인생. 그렇게 살아가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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