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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가장 Aug 11. 2020

때론 미련을 버릴 필요도 있다.

7년 만에 전화번호를 지웠어요.

"여보, 나 오늘 아버지 전화번호를 지웠어."


얼마 전, 휴대폰의 연락처를 정리하다가 7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그간 전화번호를 지우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전화번호를 볼 때마다 망설이며 지우지 못했다. 지우지 못했다는 것보다는 지울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아내 또한 1년 전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지울 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지우지 못했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화번호를 지우면 왠지 아버지에 대한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난 아주 오랜 기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전화번호 지울 용기를 내지 못했다.


추억이나 좋은 기억들이 아버지와 많지 않아서 더 아쉬움이 남아서 그런 걸까?


전화번호를 지우는 삭제 버튼을 누르고 난 후 너무나 허무한 감정이 들었다. 너무도 간단하게 1초 만에 삭제 버튼을 누르고 순간 아무 생각도 없었다.

© ujesh, 출처 Unsplash, 전화번호 삭제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면서 우리는 삶을 산다. 추억을 먹고사는 삶이지만, 때론 버리지 못하는 미련 때문에 과거에 얽매여 살기도 한다.


추억에도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이 있고 그런 추억을 회상하며 사람들은 작고, 큰 아쉬움에 미련을 갖는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혹은 이렇게 하면 이럴 수 있었을 텐데”


인생에서 후회라고 하기도 그렇고 미련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에 반응과 반복을 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예를 들어, 신발을 구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보통 신발을 구입하려고 맘을 먹는 순간부터 신발이라는 브랜드와 타인의 신발만 계속 눈에 들어온다. 신발을 사려고 백화점이나 아웃렛의 여러 상점을 방문한 후, A브랜드의 구입을 결정하면 B브랜드 신발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렇게 고심 끝에 A브랜드를 결정해서 구입한다.


고민 끝에 구입한 신발이지만, 신발을 신고 매장을 나오는 순간 B브랜드를 신고 있는 사람의 신발이 더 좋아 보인다. “그냥 B브랜드 신발 살 것을.”하며 아쉬움에 미련을 남긴다.


돈 만원만 더 보탰으면 살 수 있었겠지만, 미련만 남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도 미련이 남아서 그 남자, 그 여자의 집 앞에서 맴돈다. 세상의 모든 슬픈 음악이 나의 노래, 나의 이야기로 들린다.


그 순간 마치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마음 아파 속상해서 울기도 한다.


요즘 트로트가 대세인 대한민국에서 기존 가수 이외에 과거 유명한 연예인들이 트로트 가수에 도전하는 ‘보이스 트롯’이라는 방송이 인기 중에 있다.

MBN 보이스 트롯 내용 중 일부

얼마 전 본선 2라운드 경연에서 개그맨팀이 가수 김태화 씨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를 열창하는 것을 보았다.


삶에 대한 독백처럼 쓰여 있는 가사를 하나씩 맛있는 음식처럼 음미하며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 해졌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은.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러버린 세월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노래를 듣는 동안 심사위원도 참가자들도 눈물을 흘렸다. 각자의 눈물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삶의 아쉬움과 자신이 살아온 삶에 애환이 투영되었기 때문은 아녔을까?   


우리의 삶은 분명 미련과 아쉬움의 연속인 것 같다.


그렇다고 무엇인가의 아쉬움에 얽매여 슬픔 속에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삶 가운데에 과거 속에서만 헤매면 현재의 삶과 시간을 마음껏 줄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남는 것에 대해서는 끊어 버려야 하는 용기도 때론 필요한 것 같다.


일상의 여유와 쉼이 필요할 때, 마음속에 끝내지 못한 숙제 때문에 내 삶을 힘들게 하지는 말자.


마음이 조금 더 자유로운 일상 속에서 살고자 원한다며, 지우지 못했던 전화번호를 지우는 것처럼 미련을 버릴 용기를 내어 보면 어떨까?


그것이 현재의 내 삶을 조금 더 완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미련을 버릴 용기를 같이 내어 보아요.


그렇게 하면 조금 완벽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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