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의 시작은 대개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과 같은 정석적인 코스로 통합니다. 하지만 도시의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본질적인 매력을 탐구하고자 하는 여행자에게 페르 라셰즈(Père-Lachaise) 묘지는 반드시 거쳐야 할 성지와도 같습니다. 이곳은 쇼팽, 에디트 피아프, 락의 전설 짐 모리슨 등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이 영면해 있는 거대한 야외 조각 공원이자 파리에서 가장 고요한 사색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엄숙한 공간 속에서도 유독 기묘한 전설을 간직한 채 매일 수많은 방문객을 불러모으는 묘비가 하나 존재합니다. 바로 19세기 저널리스트였던 빅토르 누아르(Victor Noir)의 동상입니다. 이 동상 앞에 서면 누구나 당혹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동상의 특정 부위가 유독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제의 사촌과 저널리스트 : 비극적 종말이 불러온 혁명의 불꽃 이야기는 1870년 1월의 차가운 파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22세의 혈기 왕성한 기자였던 빅토르 누아르는 그의 편집장인 파스칼 그루세(Paschal Grousset)를 대신해 결투의 조건을 협의하러 나선 길이었습니다. 당시 편집장 그루세와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사촌인 피에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Pierre Napoléon Bonaparte) 사이에는 신문 지상을 통한 격렬한 비방전이 오갔고, 명예를 중시하던 시절인 만큼 이는 결국 '결투'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달았습니다.
누아르는 단지 결투의 세부 사항을 전달하러 간 대리인(Second)이었으나, 피에르 보나파르트의 저택에서 벌어진 논쟁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었습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보나파르트 왕자가 권총을 꺼내 누아르의 가슴을 저격했고, 이 청년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허망한 죽음은 단순히 개인의 비극을 넘어, 당시 황실의 독재에 강한 반감을 품고 있던 민중에게 거대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 운집한 20만 명의 인파는 Liberté(리베르테, 자유) 를 외쳤으며, 누아르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제2제국 붕괴를 가속화하는 역사의 결정적인 '불쏘시개'가 되었습니다.
쥘 달루의 리얼리즘 :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빚어낸 생명력 누아르가 사후 20년 뒤 페르 라셰즈로 이장될 때, 프랑스의 전설적인 조각가 쥘 달루(Jules Dalou)가 그의 Gisant(지장, 죽은 자가 누워 있는 모습을 재현한 동상)을 제작하게 됩니다. 달루는 누아르가 총에 맞아 쓰러진 그 찰나의 순간을 소름 돋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바닥에 툭 떨어진 '높은 원통형 모자'인 실크햇(Silk hat), 셔츠의 섬세한 구김, 그리고 가슴에 선명하게 남은 총알 탄흔까지 완벽하게 재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동상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바지 가랑이 사이에 도드라진 신체 부위입니다. 조각가가 왜 이토록 특정 부위를 강조했는지는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생명력에 대한 찬사라는 예술적 해석과 작가 특유의 리얼리즘적 기행이라는 비판이 공존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디테일이 훗날 파리에서 가장 관능적이고 기묘한 전설을 탄생시켰다는 점입니다.
마모된 청동 : 사랑과 다산을 갈구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언제부터인가 파리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 동상의 특정 부위를 문지르면 임신에 성공하거나 연애 운이 상승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미신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로 동상을 자세히 관찰하면 청동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여 Oxydé(옥시데, 산화된) 되어 검푸른 빛을 띠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부위들은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Entrejambes(앙트르장브, 다리 사이): 불임 해결과 다산을 기원하며 만지는 부위로, 가장 심하게 마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어에서 '앙트르장브'는 말 그대로 '다리 사이'를 의미하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명력이 시작되는 지점을 상징합니다.
Bout des pieds(부 데 피에, 발끝): 새로운 Amour(아무르, 사랑)을 찾는 이들이 정성스럽게 어루만지는 곳입니다.
입술과 코: 잃어버린 연인과의 재회를 꿈꾸는 이들이 입을 맞추거나 어루만지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2004년, 묘지 관리 측이 동상 보호와 엄숙함 유지를 위해 펜스를 설치했으나 파리 여성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혀 결국 철거했습니다. 이는 이 장소가 단순한 묘역을 넘어 인간의 간절한 소망이 투영되는 해방구임을 증명하는 일화입니다.
파리지앵의 시선 : 죽음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생명의 예찬
묘지라는 가장 차갑고 엄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품위 없는 일로 비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단절 앞에서 '생명'과 '사랑'이라는 가장 뜨거운 가치를 갈구하는 인간 본연의 생존 본능입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L'art de vivre(라르 드 비브르, 삶의 예술)의 또 다른 이면일지도 모릅니다.
정치적 비극의 희생양이었던 한 청년이 150년이 흐른 지금, 수많은 이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사랑의 수호신'으로 재탄생했다는 사실은 파리 특유의 낭만적 서사를 완성합니다. 인위적인 마케팅이 아닌, 민중의 믿음과 예술가의 파격적인 리얼리즘이 만들어낸 이 기묘한 성지는 파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는 도시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마치며 페르 라셰즈의 수많은 묘비는 슬픔의 기록인 동시에 삶의 연속성을 증명하는 장치들입니다. 빅토르 누아르의 묘비 앞에 서서 그 반짝이는 구두 끝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이 가진 사랑에 대한 열망이 죽음이라는 거대한 장벽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파리의 이면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젊은 기자가 잠든 곳을 방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가 간직한 기묘한 전설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생명력과 사랑의 기운을 불어넣어 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