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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pd 알멋 정기조 Nov 22. 2022

산속의 임시 수도, 경기 광주 '남한산성'

탁 트인 도시 전망과 다양한 문화재가 공존하는 서울권 제일의 트래킹 코스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유산 중 하나, 산성(山城)


산성은 동서고금 여러 나라에서 활용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이를 역사적으로 가장 잘 활용했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때 당대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당나라의 대군을 안시성에서 격퇴한 '안시성 대첩' 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고구려는 건국 도읍지가 '오녀산성' 이었을 정도로 산성을 가장 잘 활용한 나라죠. 그리고 백제와 신라도 산성을 많이 활용했는데 우리 국토의 80%가 산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 안시성 대첩(645) : 당나라 태종이 직접 이끈 30만 대군을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물리친 전투. 당시 승전을 이끈 안시성 성주의 이름은 정사에는 전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후 야사에서 '양만춘' 으로 전하며, 고려 이후의 문헌에 의하면 당시 전투에서 당 태종이 눈에 화살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전함. 안시성의 위치는 현재 중국 요령(辽宁; 랴오닝)성 해성(海城; 하이청)시 성리(城里; 쳉리) 부근으로 추정됨.


평소에는 평지성에서 살다가 전란 때에는 산성으로 들어가 농성하며 버티는 방식이었는데, 왜냐하면 산성이 평지성보다 방어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험준한 산의 지형이 적의 진입부터 어렵게 하고, ▲높은 곳에서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는 쉽고 반대로 적은 아군의 움직임을 보기 어려우며, ▲지형 특성상 아군의 활·대포의 사거리가 길어지고 반대로 적군의 사거리는 줄어들고, ▲적의 공성추·발석차 등 공성 병기의 사용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하며, ▲보통 성벽을 높게 쌓을 필요가 없어 적의 공격에 일부가 부서지더라도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었습니다. ▼평소에 평지성과 산성 두 곳을 운영해야 하여 자원과 노동력의 소모가 있었고, ▼전란 시 청야 전술을 쓸 수밖에 없어 전후 복구에 막대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자원 소모가 심했다는 거죠. 그러나 워낙 전란이 많았던 우리나라였기에 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남한 지역에만 1,000개가 넘는 산성이 있을 정도입니다.

 * 청야 전술 : 퇴각할 때 주변에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식량과 군수물자를 불태우거나 없애는 전술.


'남한산성' 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대체하는 3개의 대체성(북한산성, 남한산성, 강화도) 중 하나였습니다. 그만큼 규모도 큰데, '남한지' 의 기록에 따르면 성벽 안둘레가 17리 반(약 7.87km), 바깥둘레가 20리 95보(약 9.1km)에 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 내부 면적만 212만 6,637㎡(64만 3,308평)로 서울 올림픽공원(43만 8,000평)의 1.5배 가까이 됩니다.

 *주) 1척=20.81cm(주척), 1보=6척, 1리=360보 적용.


규모도 규모지만 '삼전도의 굴욕' 을 겪은 뒤에도 다시 재건하여 상당 부분 온전한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 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14년에 우리나라 산성 중에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 삼전도의 굴욕(1637) :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3번 무릎 꿇고 9번 땅에 머리를 박음)를 한 사건. 우리 역사 상으로는 치욕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삼궤구고두례는 원래 청나라에서 황제를 대하는 통상적인 예법이었다고 함.




산성과 도시 번화가, 슬리퍼와 등산화가 공존하는 팔색조 같은 공간


보통의 산성도 주변의 주민들이 다 대피하려면 어느 정도 '자립' 의 기능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물며 만인지상인 국왕이 머무는 곳이라면 더하겠죠. 그래서 산성 내부에 여러 시설을 갖춰놓는 게 필요합니다.


가장 핵심이 되는 공간은 역시 왕이 머물던 '남한산성 행궁(사적 제480호)' 입니다. 문화재 번호까지 붙어 있지만 사실 이곳은 2011년에 복원된 시설입니다. 병자호란 전부터 오랫동안 보존해 있던 원래 행궁은 허망하게도 일제 나쁜 놈들이 불태워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현재 남한산성의 최고 랜드마크는 '수어장대(보물, 舊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입니다. 남한산성 서쪽 포스트인 청량산 정상(497.1m)에 위치한 웅장한 건물로 현존하는 남한산성 내 건축물 중 가장 크기가 큽니다. 이곳은 남한산성을 수비하는 군영인 '수어청' 의 대장이 부대를 지휘했던 곳인데 최근(2021년 12월)에 보물로 승격됐습니다. 그 외에 함께 보물로 승격된 '연무관(舊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호)', 백제 시조 온조왕의 사당인 '숭렬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 산성의 가장 높은 곳인 남한산(522.1m) 정상 부근에 있는 '봉암성' 등이 주요 포인트입니다.

 * 수어청(守禦廳) : 조선 후기 중앙 군사조직인 5군영 중 하나.


하지만 그보다는 남한산성은 팔색조 같은 매력을 지닌 것이 더 특징입니다. ▲둘레길 1코스처럼 슬리퍼를 신고도 갈 수 있을 만큼 평이한 코스가 있는가 하면, 외곽 코스 중에는 숨을 참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코스도 있습니다. 또한 ▲걷는 내내 잘 보존된 산성의 성벽과 관문을 만나게 되지만, 그 너머로는 서울의 중심 번화가인 송파·잠실 쪽의 전경이 펼쳐집니다. 특히 서울 시내 쪽인 서문 전망대와 서쪽 성벽은 손꼽히는 해넘이 명소입니다.


한편으로 ▲산성 안쪽에는 행궁과 수어장대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와 망월사·장경사 등 10개의 사찰 등이 있어 단순한 등산 코스 이상의 재미를 주며, 성곽에 있다는 16개의 암문(비밀통로)을 찾는 '숨은 X구멍 찾기' 의 재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조선시대부터 이 지역은 '효종갱' 으로 대표되는 맛집 거리였는데, 지금도 여러 맛집들이 입구에 빼곡히 들어서 있습니다.

 * 암문(暗門) : 성곽의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비밀 출입구.

 * 효종갱(曉鐘羹) :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 이라는 뜻의 조선 최초의 배달 음식. 새벽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서울 사대문 안의 양반가에까지 배달이 됐다고 함. 사골 국물에 된장 양념으로 무친 시래기를 넣고 끓여낸 뒤 전복, 해삼, 소갈비 등 을 넣어서 완성하는 영양 만점 국으로 조선시대에는 국보다 건더기가 많을 때 '갱' 이라 표현했음. 단, 조선 제17대 왕 효종과는 관련이 없음.


주)

아쉽게도 현재는 남한산성 주변에 효종갱을 판매하는 집은 거의 없어진 상태입니다. 과거에 했던 집들도 전부 백숙이나 한정식 등 고급 요리만 취급하고 있더군요. 아쉬울 따름입니다.


남한산성 행궁
수어장대
연무관
숭렬전
효종갱 (이원일 셰프)



가는 방법도 사통팔달, 몇 번을 가도 각기 다른 재미


남한산성은 굉장히 넓어서 접근하는 코스도 여럿인데, 가장 쉽고 많이 이용하는 방법은 산성로터리까지 자가용 또는 버스로 접근해서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사실상 남한산성 내부 한가운데까지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인데, 길이 좁아 주말에는 접근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꽤 주차공간은 확보되어 있습니다.


① '슬리퍼 코스', 남한산성 둘레길 1코스


산성로터리에서 북문(전승문) → 서문(우익문) → 수어장대를 거쳐 남문(지화문) 을 지나 산성로터리로 돌아오는 약 4.3km의 구간입니다(남한산성 둘레길 1코스). 전 구간이 콘크리트 포장이 된 완만한 경사로여서 말 그대로 슬리퍼 산책이 가능합니다.


이 구간은 남한산성의 랜드마크인 수어장대와 산성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서문 전망대를 지나며, 동문을 제외한 3개의 문을 모두 경유하여 가장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메인 코스입니다. 다만 이 구간은 옹성이나 암문 등 산성으로서의 진면모를 보기에는 많이 부족한데, 그래서 서문 근처에 있는 5암문을 지나 약 270m 거리에 있는 연주봉옹성을 꼭 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코스에 있는 유일한 옹성과 유이한 암문입니다. 다른 하나의 암문인 6암문수어장대 근처에 있습니다.

 * 옹성(甕城) :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에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 성벽. 옹성 안으로 진입하려는 적군에게 포위하듯이 공격할 수 있게 하여 방어력을 높이는 것으로 원형, 방형, ㄱ자형 등 형태가 다양함.

 

주)

원래 1코스는 수어장대에서 영춘정 방향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이 구간은 현재 공사 중으로 진입 불가인 데다가 포장도 안된 급경사의 계단길입니다. 대신 안쪽으로 나 있는 콘크리트 포장로를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남한산성 서문 (우익문)
남한산성 서문 전망대에서 본 서울 시내
남한산성 남문(지화문)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의 해체 전 모습 - 현재 해체 공사 중


② 진짜 산성을 만나는 남한산성 둘레길 5코스


산성을 크게 도는 둘레길 5코스는 길이도 길고 길도 비교적 험하지만 대신 옹성이나 암문, 외성 등 성곽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북문이나 남문, 또는 동문(좌익문)에서 시작해서 산성을 크게 한 바퀴 도는 7.7km 구간인데, 1코스와 겹치는 구간을 제외하면 북문-동문-남문을 연결하는 코스가 됩니다.


남문에서 동문 사이에는 4개의 옹성이 있어 '옹성의 길(둘레길 4코스)' 라 불리며 암문도 5개나 있습니다. 7남문으로 나가 제1남옹성을 거치면 검단산(536.4m)과 망덕산 정상(498.9m)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도 있어서 등산 애호가들이 이쪽도 많이 찾습니다.


반면 동문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장경사를 거쳐 남한산성의 외성봉암성 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봉암성은 산성의 최고봉인 남한산 정상 부근에 있고, 근처에 벌봉(515m) 정상도 바로 앞에 있어 지나치기 어려운 포인트입니다. 외성은 복원이 좀 덜 되어 있으나 그만큼 한적한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 남한산성 외성 : 인조 때 쌓은 본성(또는 원성이라 함) 외에 동쪽 외곽에 있는 봉암성·한봉성을 말함. 지대가 높은 동쪽의 방어를 보강하고자 숙종 때 축조함.


남한산성 동문(좌익문)
남한산성 옹성 (장경사신지옹성, 제2남옹성)
남한산성 암문 (제2암문, 제11암문)
봉암성 (남한산성 외성)
남한산 정상 (봉암성 부근)


대부분의 관광지가 그렇지만 이곳도 주말마다 주차 때문에 몸살을 앓습니다. 산성로터리 앞은 오전 좀 지나면 벌써 주차장이 만차 상태에 이르며, 진입로가 2차선이어서 인근 진입로까지 꽉 막혀서 버스도 진입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결국 자가용이든 대중교통이든 진입이 극악이고 주말에는 오전 일찍, 아니면 오후 4시 이후에야 좀 여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아예 산 밑에서부터 산성으로 올라오는 등산 코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경우 남한산성의 4대문이 중간 목적지가 됩니다. 가장 가까운 코스는 ▲서울 송파구 마천·거여동 쪽에서 서문(우익문)으로 올라오는 코스입니다. 서울 쪽이라 교통이 편리하여(지하철 5호선 마천역) 등산로로 가장 애용되는 코스인데 거리도 상당히 가깝습니다(최단 1.7km). 다만 가까운 만큼 경사가 심해 사실 이쪽은 올라오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코스로 좋습니다. ▲하남시 고골계곡 들머리에서 북문(전승문)으로 가는 코스도 2km 정도로 짧아 많이 이용되는데, 이쪽은 북문에서 봉암성 및 남한산 정상 쪽으로 길게 트래킹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성남시 남한산성공원 들머리에서 남문(지화문)으로 가는 코스 거리가 1.6km로 가장 짧고 코스도 가장 평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등산 애호가들은 이배재 들머리에서 남문(지화문)으로 가는 6km 코스도 많이 이용하는데, 거리가 길지만 중간에 망덕산(498.9m)과 검단산(523.9m) 정상을 경유해 가기 때문에 등산가들에게 매력적인 코스입니다. ▲광주시 검복리 주차장 근처 큰골 들머리에서 동문으로 가는 코스 남한산성의 외성(봉암성·한봉성) 쪽으로 접근이 가장 용이한 코스입니다.


산성로터리 앞 주차요금은 주말 기준 5,000원으로 좀 비싼 편이지만, 시간 구애 없이 종일 주차이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자동차는 요금 무료입니다. 행궁 입장료(어른 2,000원)도 경기도민에게는 무료입니다.



[연계 여행 정보]

- 최적 시즌 : 9월 말(남한산성문화제), 10월 중순 이후 단풍철

- 연계 여행지 : (서울 송파) 롯데월드(어드벤처, 콘서트홀, 아쿠아리움, 키자니아 등), 스타필드 위례

                     (경기 성남) 한국잡월드, 성남아트센터, 율동공원, (경기 광주) 화담숲


- 교통 : 서울역에서 31.5km, 동서울터미널에서 16.4km, 인천공항에서 88.2km

                     (~산성로터리) 지하철 8호선 산성역 이동 후 버스 편, 편도 20분  *주말에는 상당 소요

                     (~송파 방면; 서문) 지하철 5호선 마천역에서 도보 10여 분,

                                잠실역(2호선), 천호역(5호선), KTX수서역 등에서 버스 편(남한산성 입구 정류장)

                     (~성남 방면; 남문) 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버스 10여 분,

                                 복정역, 모란역(8호선), 이매역(수인분당선) 등에서 버스 편(남한산성 입구 정류장)


- 먹거리 : 효종갱, 산성소주(이상 향토 음식), 남한산성 보양거리 및 백숙거리 등의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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