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밀접한 학문 관계에서 최근 일렉트로니카 단골 레퍼토리까지
고대에는 천문학과 음악이 일맥상통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태양과 달을 비롯한 천체의 움직임에 일정한 조화의 법칙이 있고 이러한 조화로운 운동 속에 각각 고유의 음악을 발(發)한다는 것이었죠. 플라톤(Platon)은 이에 대해 '눈으로 천문학을 연구하는 것처럼 귀로 음악을 듣는 것이고 이 둘은 서로 쌍둥이 과학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리고 둘은 수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플라톤뿐 아니라 피타고라스 등 당대 여러 철학자들이 공유한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중세까지 그대로 이어졌는데 5~6C에 살았던 보에티우스(A.Boethius) 역시 <음악의 원리(De Institutione Musica)> 라는 저서에서 음악을 측량이 가능한 예술이라고 하였습니다. 소리에서 발생하는 수를 다루는 기술 또는 학문이 음악이고, 사물 서로 간의 조화 속에서 소리의 차이와 일치를 고찰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죠. 이에 따르면 음악은 인간이 아니라 우주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주의 조화를 탐구하는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학문이 됩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음악에서 인간은 분리되었고, 음악가는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발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음악가들이 만든 음악은 절대적인 자연의 음악을 최대한 모방하는 것이 목표였고, 나아가 듣는 사람의 감각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인간의 몸으로 소리를 내어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음악의 본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세까지는 악기마저 거의 쓰이지 않았죠.
이러한 사상 때문에 음악은 다른 학문이나 예술과 달리 바로크 시대에 이를 때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발전하지 않고 정체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것 같은 천문학과 음악이 천년 이상 아주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우주에 대해 굉장히 관심도 많고 하지만 사실 우주에 대해 인간이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태양계의 가장 끝에 있는 행성인 해왕성을 발견한 게 채 200년이 되지 않았고(1846), 우리 은하 밖에 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겨우 100년 전의 일입니다(1923). 우주의 크기는 우리 은하보다도 93만 배나 더 크다고 하니 우주는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우리 은하 : 지구와 태양이 속해 있는 은하. 크기는 약 10만 광년(94.6경 km, 1경=10,000조). 이는 태양계의 크기(180억 km)보다 5,000만 배 이상 큰 것임.
*우주의 크기 : 현재까지의 과학적 성과에 따르면 약 930억 광년으로 추측되며, 이는 km로는 8,798해 km(1해=1억 조)가 됨.
*주) 명왕성은 2006년 태양계 행성에서 제외되고 왜행성으로 분류되었음.
*주) 천문학자 허블(E.Hubble)은 1923년 안드로메다 성운(은하) 안에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이 우리 은하보다 훨씬 먼 위치에 있다는 걸 발견하여 우리 은하 외부에도 은하가 있다는 걸 입증하였음.
그렇다 보니 현대에 여러 관측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우주는 지구 밖에 있는 거대한 세계라기보다는 그저 우리 눈에 보이는 천구에 있는 천체 또는 별자리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 아니면 고대부터 있었던 신화와 연결되었죠. 그래서 클래식 음악 중에서 우주를 직접적인 소재로 한 음악이라면 1918년에 초연된 홀스트(G.Holst)의 '행성(The Planet), OP.32' 외에는 거의 떠오르지 않는데, 사실 이마저도 우주보다는 우주에 얽힌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구(天球, celestial sphere) : 관측자를 중심으로 하여 둥글게 보이는 밤하늘 또는 가상의 구(球).
그도 그럴 것이 뭔가 실체나 감각이나 구체적으로 떠올려지는 게 있어야 음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데, 도대체 우주라는 공간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느낌인지 당시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우주를 소재로 음악을 만드는 것은 마치 백지 위에 아무렇게나 붓으로 그리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생상스(C.Saint-Saens)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Op.40' 의 경우에는, 똑같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대상인 망자(죽은 자)를 소재로 했더라도 죽음에 대한 느낌이나 해골과 유령에 대한 판타지, 무덤과 묘지에 대한 느낌 등을 어느 정도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묘사적으로 작곡이 될 수 있었습니다만 우주는 그와는 다르다는 것이죠. 밤하늘에 점처럼 보이는 작은 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1970년대 들어 전자악기를 활용한 음악들이 여럿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우주가 소재로 본격적으로 쓰이게 됩니다. 전자악기 자체가 전기(電氣)적인 것이고 이런 태생적 특성 때문에 전기회로나 자기장, 로봇 등을 소재로 한 음악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우주도 소재의 하나로 검토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때쯤 되면 우주에 대한 많은 정보가 대중에 알려지고, 특히 1969년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후 우주에 대한 관심이 급 증가했던 것이 원인입니다.
이런 '우주음악' 의 등장에는 초창기 전자음악 뮤지션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먼저 '크라프트베르크' 가 'Kometenmelodie(혜성 노래, 1974)', 'Spacelab(우주연구소, 1978)' 라는 개별 곡을 통해 우주를 음악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다만 우주음악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아니고 개별 트랙 정도에 삽입된 정도였습니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 '발전소' 라는 뜻의 독일의 전자음악 그룹으로 전자음악을 처음으로 히트시켜 대중으로 끌어들인 전자음악과 신스팝의 선구자 그룹.
반면 비슷한 시기에 '장 미셀 자르' 는 우주를 아예 간판으로 내건 앨범 'Equinoxe(춘분, 1978)' 를 1,000만 장 이상 팔릴 정도로 빅히트시켰습니다. 이후에 1986년에 우주선의 도킹을 테마로 한 'Rendez-Vous(랑데부, 1986)' 도 다시 한번 크게 히트했습니다. 특히 'Rendez-Vous' 앨범은 아예 우주비행사(R.McNair)가 우주선에서 색소폰으로 연주한 것을 녹음해서 음반에 협연 형식으로 싣겠다는 엄청난 계획이 있었으나, 그 우주선(챌린저 호)이 발사 직후에 폭발하여 불발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정식 발매 앨범에는 그 우주비행사를 추모하는 곡('Last Rendez-Vous(Ron`s Piece)')이 실렸습니다.
*장 미셀 자르(Jean Michel Jarre) :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전자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뮤지션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중음악가로 '전자음악의 대부' 라 불림. 8,000만 장의 앨범 판매, 250만 명이 넘는 동시 콘서트 관객 등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에는 그의 음악인 'Rendez-Vous 4' 를 편곡한 'Rendez-Vous 98' 이 거의 공식 테마곡처럼 쓰이기도 했음.
독일의 전자음악 그룹인 '쿠스코' 도 빼놓을 수 없는데, 1981년 우주왕복선 콜롬비아 호의 성공적 비행에서 영감을 받은 'Planet Voyage(1982)' 앨범 역시 여러 우주음악에 지대한 영감을 준 앨범입니다. 특히 이 앨범은 우주음악의 범위를 태양계 밖으로 크게 확장시켰는데, 'Milky Way(은하수)', 'Ursa Minor(작은곰자리)', 'Swan(백조자리)', 'Andromeda(안드로메다 자리)' 같은 트랙들이 있었습니다.
*쿠스코(Cusco) : 과거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의 이름에서 따온 독일의 뉴에이지 및 세미클래식 계열 전자음악 그룹.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끌어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BGM으로 많이 쓰였음.
또한 이 앨범은 앞선 우주음악에 비해 록 음악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데, 덕분에 록으로 우주를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여러 아티스트에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록 사운드로 표현된 우주음악 중 대표적인 것이 'Alan Parsons Project' 의 'Sirius' 나 'Europe' 의 'The Final Countdown' 같은 곡이고, 이후에 게임 '스타크래프트(Starcraft)' 의 OST에서도 록 사운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현재는 일렉트로니카 쪽으로 계승되어 하위 장르인 테크노, 트랜스, 하우스 등에서 어마어마한 우주음악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일렉트로니카 전문 사이트인 'Beatport' 를 기준으로, (중복 수록이 좀 있다는 걸 감안해도) 'universe' 와 'andromeda' 가 각각 150곡 가까이 검색될 정도입니다.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 전자음악의 여러 장르를 포괄하여 통칭하는 말로 주로 2000년대 들어 쓰임.
*테크노(Techno) : 1990년대에 하우스(House)와 함께 인기를 끌었던 일렉트로니카의 하위 장르. 멜로디 라인은 가급적 배제하고 단순하고 강력한 비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주제를 반복하는 것이 특징.
*트랜스(Trance) : 테크노에서 발전된 형태로, 좀더 빠른 비트와 적극적인 멜로디 라인 사용, 그리고 말 그대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며, 특히 Intro-Breakdown-Climax-Outro 의 기승전결 4단계를 따름.
*하우스(House) : 1980년대에 유행했던 디스코(Disco)를 대체하여 만들어졌으며, 말 그대로 클럽에서 춤을 추기 위해 만들어진 강한 비트의 전자음악을 가리킴.
일렉 쪽에서 우주음악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 음악을 만들 때 우주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유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가사가 거의 없는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 이고 설령 보컬이 있더라도 별 의미 없는 단어 반복 정도 하는 게 보통이라는 점, 또한 ▲멜로디 라인의 중요성이 상당히 낮고 리듬과 비트의 반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우주음악의 문법은 상술한 선배 전자음악가들부터 만들어진 것이죠.
*주) 우리나라는 이름에서도 의미를 찾을 정도로 좀 관념적인 성향이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무의미한 단어 수준의 가사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큽니다. 덕분에 국내의 일렉트로니카, 특히 보컬은 거의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일렉을 만드는 뮤지션 입장에서도 편해집니다. 예컨대 'Fatali' 의 'Mother' 라는 트랜스를 듣다 보면 '왜 이 음악이 '엄마'지?' 라는 물음을 갖게 되고 그러면 뮤지션은 어렸을 때 엄마와의 어떤 기억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지겠죠. 하지만 우주음악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이 음악이 그 많은 하늘의 별 중에서도 '시리우스(sirius)'인가?' 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죠. 뮤지션이 제시한 리듬과 비트를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적어도 일렉트로니카에 있어서만큼은 우주는 굉장히 활발하게 쓰이는 소재이고 그만큼 대중에 잘 알려지는 우주음악도 이쪽에서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