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특성이 음악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혹시 독일어권(게르만어) 노래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독일어,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이런 나라들인데, 같은 유럽이어도 프랑스어(샹송)나 이탈리아어(칸초네), 스페인어(칸시온) 등에 비해 별로 알려진 노래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바흐와 베토벤, 모차르트 등 최고의 음악가들을 배출한 이쪽 문화권에서 왜 그런 걸까요?
문제는 독일어가 발음이 좀 어렵고 둔탁하여 노래로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음절 별로 분리해서 발음하는 등 활음조가 부족하고, ▲끝소리 거센소리화 현상 등으로 거친 발음이 많으며, ▲움라우트 같이 발음 자체가 어려운 음운이 있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단어 여러 개가 띄어쓰기 없이 길게 붙어 있는 복합어가 많기도 하죠. 물론 편견일 수도 있지만 다른 언어들에 비해 발음이 좀 거칠거나 강하고 끊어읽기가 많다는 것은 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주) 물론 언어의 발음은 각 나라 현지인들은 쉽고 외지인들은 어려운 부분이 존재합니다. 한국어의 된소리는 외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하죠. 하지만 한국어는 장·단음과 성조(억양)를 거의 구별하지 않고, 이중모음이라고 해도 한국어의 ㅚ·ㅟ 는 독일어의 움라우트와 달리 단모음에 가까운 등 비교적 발음이 단순한 편이라고 생각됩니다.
*주) 독일에서는 거의 근세까지도 스스로 독일어를 비문명 언어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러한 부분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중음악 쪽에 있어서는 영미권의 영향력이 엄청나서 독일어 노래들이 기를 못 펴는 것도 있겠습니다만, 결국에는 독일어의 특성이 음악과 노래에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많은 독일어권 가수들이 모국어보다는 영어 등으로 많이 곡을 발표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모국어로 여러 노래를 만들기 위해 타 언어권에 비해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활음조(euphony) : 발음을 쉽고 매끄럽게 하기 위해 소리에 변화를 일으키는 음운 현상. 연음 법칙, 모음조화, 자음 동화, 매개 자음이나 모음 삽입 등이 있음.
*끝소리 거센소리화 현상(말음 경화; Auslautverhärtung) : 독일어에서 음절 끝에 오는 자음을 거센소리(경음)로 발음하는 현상. [b]·[d]·[g]·[v]가 각각 [p]·[t]·[k]·[f] 로 발음됨.
*움라우트(Umlaut) : 변모음 현상 중 하나로 독일어에서 [a]·[o]·[u]가 각각 [ε]·[œ]·[ʏ]로 변화한 것이며 각각 ä, ö, ü 로 표기함.
*복합어(합성어; Kompositum) : 2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 예컨대 독일어로 FIFA 월드컵은 'Fussball-weltmeisterschaft' 라고 쓰는데 이는 fussball(축구), welt(세계), meister(전문가 또는 스포츠 선수권자), -schaft(단체 또는 팀)의 4개 단어가 결합한 것임.
이런 이유로 이쪽 게르만이나 노르만 쪽에서는 성악보다 기악(instrumental)이 발달했습니다. 과거 초기 바로크 시대까지는 음악이 주로 이탈리아 쪽에서 발달했는데, 이는 당시에 성악과 교회 음악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고 이탈리아어가 이렇게 사람의 목소리로 음악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상당한 강점이 있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주) 이러한 강점은 한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감정 표현에 강점이 있는 것을 육지와 바다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반도(半島) 국가의 특성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흐 이후의 천재적인 작곡가를 중심으로 음악의 중심이 독일 쪽으로 넘어왔고 그 이면에는 기악의 발달이 있었습니다. 마치 시각장애인들이 청각과 촉각에 상당히 민감한 것처럼 성악으로 표현하기 어렵기에 기악으로 더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바흐 이후 독일어권에서 대단한 음악가들이 수도 없이 배출된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미 팝과는 다르게 독일이나 북유럽 쪽에는 익스트림 메탈과 같은 하드 락이나 트랜스·하우스 같은 일렉트로니카가 상대적으로 발달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 장르는 메시지와 딕션이 중요한 힙합 등과 달리 보컬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 얘기도 해볼까요? 프랑스 대중음악(샹송)은 과거에 영미 팝 못지않게 대단한 월드 파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장 자크 골드만(Jean Jacques Goldman), 파트리샤 카스(Patricia Kaas), 엘자(Elsa) 등 국내에도 상당히 많이 알려진 샹송 가수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샹송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사례가 극히 줄어들었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잘 나가는 스페인어 칸시온 등을 따라하는 지경에 이른 모양새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프랑스가 그동안의 문화적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나머지 변화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한몫하는 게 리에종 같이 소리에서도 미적 감각을 중시하는 프랑스어의 특징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프랑스어의 미적 특성과 특유의 앙가주망 정서 등으로 노래를 만드는 데 있어 굉장히 강점이 있었으나, 최근의 빠르고 강한 비트의 음악과 특히 선명한 딕션을 강조하는 힙합 등에 있어서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에종(liaison) : 프랑스어에서 일어나는 연음(連音) 현상으로, 단어 마지막의 묵음이었던 자음이 뒤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단어가 올 때 되살아나서 발음되는 것. 리에종은 프랑스어로 '연결' 이라는 뜻임.
*앙가주망(engagement) : 음악에서는 사회 참여 의식이 담겨 있는 노랫말을 뜻하며 프랑스의 철학자 샤르트르(J.P.Sartre)로부터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음. 샹송은 전통적으로 이런 앙가주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음.
어떻게 보면 이러한 장르의 음악에 있어서는 앞서 언급한 독일어권 언어보다 더한 핸디캡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원래부터 샹송은 록 쪽으로는 좀 뒤처졌었는데, 최근의 댄스·힙합 쪽에서도 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최근의 샹송 중에는 노래 진행 중간에 스페인어로 스왑(?)하는 경우도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어에도 유사한 핸디캡이 있는데 바로 받침이 있는 음절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어는 대부분 (우리말 식으로는) '자음+모음' 으로 구성되어 있고 っ, ん 외에는 받침 역할을 할 수 있는 음소가 없습니다. 모음도 'あ·い·う·え·お' 다섯 가지만 있고요. 이렇게 받침을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발음이 부드럽지만 한편으로는 발음의 리듬감과 다양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언어에 있어 우열을 가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적어도 표현력 하나만 놓고 보면 한국어는 최상위권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굉장히 변화무쌍하죠. ▲음운 변동 현상도 많고, ▲의성어·의태어가 많고, ▲상대와의 관계까지 따지는 높임말의 존재, ▲고맥락 문화권의 언어라 같은 의미라도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해석이 되고, ▲양성 모음과 음성 모음 등의 의미 분별, ▲다양한 어미의 사용, ▲과학적 글자 한글을 통한 손쉬운 조어력까지 그야말로 스펙트럼이 엄청납니다.
*고맥락 문화(higher-context culture) :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저맥락 문화와 달리, 말을 하는 맥락이나 상황 등까지 고려하여 상대방의 뜻을 유추하는 것을 중요하게 쓰는 문화권을 말함. 이럴 경우 같은 단어와 문장이라도 내포하는 메시지가 다양해지게 되고 비언어적인 표현도 중요하게 받아들이게 됨.
최근 K-Pop의 영향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로 한국어의 우수성이 K-Pop에 영향을 미친 점도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다시 한국어와 한글의 세계화를 낳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