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pd 알멋 정기조 Dec 20. 2022

클래식 음악 감상법

연주가의 해석을 거친 곡이 리스너에 의해 다시 한번 재창조된다


클래식 음악의 레퍼토리는 실질적으로는 거의 한정되어 있습니다. 비록 여러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창작곡들을 발표하고는 있으나 거의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버리고 있고, 우리가 듣는 '클래식' 이라는 것은 보통 바흐(J.S.Bach; 1685~1750)부터 2차 세계대전 이전 정도에 만들어졌던 음악들 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정된 레퍼토리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많습니다. 발표된 지 2~3년만 지나도 '전통 가요' 소리를 듣는 대중음악에 비해,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는 클래식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클래식은 전혀 'Classic' 하지 않다


'classic' 이라는 단어를 '전형적인 고전 방식에 따르는 것' 이라고 정의한다면, 클래식 음악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혀 'classic' 하지 않습니다. 같은 곡이라도 아티스트나 악단에 따라 템포와 러닝 타임부터 다릅니다. 당연히 셈여림 등 곡 안의 세밀한 부분에서 많은 차이가 나타나죠. 


그것은 작곡가가 창조한 음악을 연주가가 새롭게 해석하여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클래식에서는 명곡도 있지만 명연주와 명음반도 존재하며, 어떤 연주가나 악단의 연주인지, 지휘자가 누구인지, 나아가 몇 년에 녹음된 레코딩인지까지도 구별하며 듣게 됩니다.


그리고 'best performance' 는 초일류의 특정 아티스트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면 그가 연주하는 대부분의 음반들이 당연히 최고의 명음반이 되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평가받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특정 작곡가, 심지어는 특정 곡에 '특화' 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특정 레퍼토리에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연주가들이 있죠.


한편으로는 'variation' 이 적기 때문에 각 연주들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내는 재미가 더 존재하게 됩니다. 대중음악의 경우 음반에 레코딩된 대로 그대로 라이브에서 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예 장르조차 다르게 편곡해서 연주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고, 특히 일렉트로니카 쪽에서는 아예 하나의 곡에 수십 개의 버전이 존재하기도 하죠.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각 개별 연주마다 특별히 다른 걸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들으면서 느끼기만 하면 되죠.


반면 클래식은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었지만, 고전주의 시대 이후에는 작곡가가 악보에 구체적으로 곡의 빠르기나 셈여림을 지정하고 음표를 하나하나 그려 넣었기 때문에 연주자의 운신의 폭이 좀 적습니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의 개별 해석이 곡에 하나하나 반영되어 이것이 미묘하면서도 계속적인 차이로 나타납니다. 때에 따라서는 연주자들의 실력 차이가 보이는 부분도 있죠. 따라서 리스너는 이러한 작은 차이를 하나하나 분별하고 느껴가며 듣게 됩니다. 


라흐마니노프(S.V.Rachmaninov) 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을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독자적 컬러를 입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리스너도 연주가처럼 독자적인 해석을 하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연주가뿐 아니라 리스너에 의해서도 이뤄집니다. 지면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쇼팽(F.F.Chopin) 의 '왈츠 Op.64-2' 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곡의 첫 부분인 테마 A를 연주할 때는 빠르기와 강약을 자주 변화시키면서 진행해야 한다.

② 'piu-mosso(더욱 동적으로)' 라는 음악 용어가 붙어 있는 테마 B는 간혹 아티스트들이 심하게 빠르게 연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너무 느려서는 안 된다.

③ 그 테마 B는 두 번의 반복으로 구성되는데, 그 반복 부분을 처음 연주할 때보다 두 번째 연주할 때 더 빠르게 연주해야 한다.

④ 'piu-lento(더욱 느리게)' 라는 음악 용어가 붙어 있는 테마 C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으로 부드럽고도 충분히 느리게 연주해야 한다.

⑤ 테마 C 이후에 테마 B (이하 테마 'B-2'라 한다) 가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 그 연결고리 부분은 잠시 멈추는 듯하게 템포를 많이 늦춰서 연주해야 한다.

⑥ 테마 B-2는 이전 테마 B 보다 더 빠르고 강렬하게 연주해야 한다.

.... (이하 생략) ...


이와 같이 까다롭게(?)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테마 A는 일상과 같다.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희로애락이 있으며 마치 인생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

②③ 테마 B는 뜨거운 사랑과 같다. 일상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뜨겁게 태운다.

④ 테마 C는 행복한 사랑과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하는 행복한 시절.

⑤ 지금까지의 테마 A~C는 옛 기억의 회상과 같다. 행복한 시절을 추억하다가 다시 현실에 눈을 뜬다.

⑥ 테마 B-2 (테마 B가 반복되는 부분)는 그 사랑에 대한 재갈구이다. 다시 만나고 싶다.

.... (이하 생략) ....


어떻게 보면 참 피곤하게 듣는다 싶을 정도인데, 사실 클래식 연주 대가들은 이렇게 정말 디테일한 부분에까지 신경을 씁니다. 러시아의 유명 피아니스트인 시쉬킨(Dmitry Shishkin)이 리스트(F.Liszt) 의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 를 연주하는 법을 직접 설명한 동영상을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마디 하나하나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죠.


- 멀리 있는 종소리가 리버브 되는 것 같이 여린박의 소리를 마치 울리는 소리처럼 연주할 것.

- 각 음표의 음들을 똑같은 볼륨의 소리로 연주하지 말고 다르게, 즉 몇몇 음에 포인트를 주며 연주할 것.

- 왈츠와 같은 춤을 춘다고 생각하고 너무 빠르게 연주하지 말 것. 

- 특정 부분은 페달을 떼고 연주하면 오히려 울림의 깊이가 깊게 느껴짐.

- 마치 손끝으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손목은 그저 지탱하고 손가락의 힘만으로 유연하게 움직일 것.

- 무작정 빠르게만 칠 생각하지 말고 마치 고양이가 뛰어놀듯이 경쾌한 스타카토를 구사할 것.

-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페달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파워풀한 연주가 되도록 할 것.


이러한 디테일한 해석을 연주자뿐 아니라 감상하는 리스너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문 연주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름의 해석을 해보는 것이고 그중에는 연주자 못지않게 몰입하게 되는 레퍼토리가 생깁니다. 위에서 초일류 연주가가 모든 곡을 잘 연주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리스너도 자신에게 맞는 레퍼토리에 대해서는 연주가들 못지않게 뛰어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다양한 연주자의 연주를 들으며 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방법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작곡가가 1차로 창조한 음악이 연주자의 2차 창조를 거쳐 리스너에게 전달되고 이것을 다시 리스너가 자신만의 음악으로 다시 재창조하여 곡을 해석하는 것, 이것이 클래식 음악의 고급 감상법인 셈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최적의 감상법은 본인이 직접 연주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연주자의 2차 해석과 리스너의 3차 해석이 동일해지니 훨씬 더 만족감이 높아지게 됩니다.



기술적인 클래식 음악 감상법


사족으로 기술적인 클래식 음악 감상법을 붙이면 헤드폰·이어폰보다는 스피커로 듣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글에서 언급했듯이 공간마다 그 조건에 맞는 리버브(공간 울림)가 생기는데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는 그러한 공간감을 느낄 수가 없고 오로지 레코딩 때의 조건으로만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스피커로 듣게 되면 본인이 있는 공간의 울림을 십분 활용하여 더 깊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 클래식 악기는 모두가 어쿠스틱 악기이기 때문에 원래 기본적으로 리버브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레코딩 음반의 경우에는 아무리 클래식이라도 이런 리버브를 많이 줄여서 레코딩할 수밖에 없는데,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에는 더욱더 공간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가 시끄럽거나 하지 않다면 스피커로 듣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때에는 평소보다 볼륨을 조금 높여 듣는 게 좋습니다. 클래식을 녹음할 때에는 악기와 마이크 사이에 거리를 비교적 이격시키는 것이 보통인데, 마이크를 너무 근접시키면 공간의 울림을 이용하는 어쿠스틱 악기의 특성상 그 소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모든 악기마다 마이크를 배치할 수 없기에 마이크 하나가 여러 악기를 커버해야 하는 부분도 있죠. 그래서 클래식 음악의 레코딩은 일반 대중 음악 레코딩보다 음량이 대체적으로 적은 것이 보통입니다.


이전 08화 언어와 음악의 상관관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