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만들어 내는 노랫말에는 공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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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시가(詩歌)' 라고 하여 노래는 곧 시였고 문학이었습니다. 시인은 시를 통해 OO의 세계를 '노래하였다' 고 표현했죠. 이후에 노래가 음악으로서 시에서 분리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노래에는 시와 같은 '문학성' 이 존재하였습니다.
그럼 시에게 존재하는 문학성이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몇 가지를 꼽아보면, 먼저 ▲시인은 '시적 자아' 를 만들어 자신의 생각을 '시적 정서' 로 표현합니다. 기쁨, 슬픔, 그리움, 번민 등이 그렇죠. 또한 ▲풍자와 반어·역설 등의 소위 '시적 기법' 과 비유·강조 등의 '수사법' 이 동원된다는 것, 그리고 ▲심상이라고도 하는 '시적 이미지' 가 표현된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수사법(修辭法; figure of speech) : 어떠한 생각을 특별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기술. 비유법·강조법·변화법이 있음.
*심상(心像; image) : 감각 기관의 자극 없이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상(像). 시각·후각 등 5감각적 심상과 2개 이상의 감각이 복합된 공감각적 심상이 있음.
무엇보다 시에 존재하는 '다의성', 즉 한 단어가 2개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 때문에 시를 듣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활발한 지적 활동을 하며 시적 세계를 상상하게 됩니다. 시의 문학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노래 역시 그러한 특징을 거의 그대로 갖습니다. 이는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고맥락 문화' 하고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노래는 솔직화법이 대세인 듯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소위 '돌직구' 로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아무래도 같은 고맥락 문화권인 중국의 한자에 대한 중요도가 낮아지고 저맥락 문화권인 서구의 영어 등이 더 익숙해지면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20C 말 이후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성향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 이성적이고 보수적인 모더니즘에 반발하여 생긴 사상적 흐름. 기존의 틀을 거부하고(해체주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상대주의) 것이 주요 특징. 다만 최근에는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도 일어나 재보수화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음.
물론 이래저래 폼 잡으며 돌려 말하는 것보다 직설적으로 찔러 말하는 것이 훨씬 시원시원합니다. 사회의 부조리를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꼬집지 못하고 돌려 말하는 신문 사설에 비해 대놓고 대통령도 저격하는 댓글이 얼마나 시원합니까. 특히 과거 록이나 힙합 등 여러 음악의 장르에서 미덕처럼 여겼던 '앙가주망' 을 생각해 보면 답답한 노랫말보다는 때로는 욕설도 마다하지 않는 노랫말이 더 공감과 효과가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 때문에 부작용도 생겨났습니다. 우선 ▲노랫말에서 문학성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노랫말을 다의적으로 해석하는 여지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고, 이는 노랫말에 대한 공감과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직설적으로 들어오는 노랫말에 공감이 되지 않으면 듣는 사람은 노래의 메시지에서 분리됩니다.
이게 심화될 경우 ▲노래는 노랫말의 기능을 잃고 마치 기악 연주곡과 다를 바 없는 음악이 됩니다. 일례로 우리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된 노래를 듣는다고 하면, 메시지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수의 목소리를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스페인어 칸시온을 들을 때 무슨 뜻인지 모른 채 스페인어 특유의 굴러가는 R 발음 등을 마치 악기 또는 사운드 이펙트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죠. 이는 좀더 과장하면 노래에서 인간이 분리가 되고 노래가 '물상화' 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상화(物象化; reification) :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것으로 이해되고, 이로써 인간 자체나 인간의 활동·능력 등이 주체의식과 의지가 없는 사물(物)처럼 되어가는 현상.
또 하나의 부작용은 ▲노래의 본령은 경시되고 주변 장식거리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노래의 생명력이나 공감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언가 연관되거나 연상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범한 노래보다 내 아이가 태어날 때 흘러나왔던 노래, 연인이 나를 위해 불러줬던 노래 등 스토리가 연관된 노래들이 오래도록 깊게 기억에 남죠. 그런데 과거에는 이러한 연상이 (위와 같은 개인적인 이벤트가 따로 없다면) 노랫말에 담긴 스토리에서 비롯됐는데, 지금은 노랫말들은 뒷전이고 가수의 의상·춤이나 또는 삽입됐던 영화·드라마·광고 등에 결부되는 모양새입니다. 노래 자체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 이슈를 만들지, 어떻게든 인기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상의 BGM으로 삽입할 지에만 골몰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사실 요즘 시장 상황을 보면 좀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노래와 잠재적 경쟁관계인 타 멀티미디어들의 범람, △디지털 음원화 되면서 과거처럼 앨범이 아니라 싱글 위주로 콤팩트하게 출시되는 음반, △유튜브 등을 통한 능동적인 감상 환경, △전반적으로 침체되고 수익성이 나지 않는 음반 시장 등을 감안하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와 노랫말로 어필하는 게 어찌 보면 생존 전략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꼭 음반 시장만의 문제겠습니까. 다른 시장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프로 또는 장인 정신에 입각하여 조금 손해 보거나 돌아가더라도 묵묵히 본령을 지켜나가는 산업이나 가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여 본질을 외면하는 소인배 같은 영업·마케팅 전략 때문에 더욱 이런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죠.
음악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주 수입을 위해 대세에 따른 음악들을 다작으로 내놓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가수들이나 엔터 회사들 먹고살기 쉽지 않거든요. 뭐 장르에 따라서는 일렉트로니카 같이 노랫말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본령을 잃지 않고 때로는 깊은 고민과 노력으로 내놓는 노랫말들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치 공장처럼 틀에 맞춰 노래를 찍어내고 있죠.
소재의 획일화 문제도 있습니다. 아무리 직관적이고 소비적인 시대라고 하지만 노랫말들의 소재도 스펙트럼이 너무 좁습니다. 흔히 나오는 게 뮤지션의 경험을 담은 노래라고 하는데, 솔직히 그 인생이 별로 특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진짜 인생 일대 전반을 쭉 고민해서 담지도 않습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일들을 가사로 풀어낸 정도죠. 공통분모도 별로 없는 남의 인생에 크게 공감이 가지도 않을 것을 말이죠.
결국에는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노래를 만들어 내다 보니 노랫말도 별 고민 없이 생각나는 대로 풀어내는 그런 모양새라는 것입니다. 앞서 노래의 문학성 얘기를 했는데, 시인들이 이렇게 별 고민 없이 시를 풀어내지는 않을 겁니다. 단어 하나하나까지 지웠다 써가며 만들어 낼 텐데 말이죠. 이 와중에 노래는 더 빨리 소비되고 잊혀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 근본에 단기적이고 획일화된 음악 시장 마케팅 전략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