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패니즈 터치가 가미된
작년 9-10월 첫 교토 여행 중 가장 기대했던 일정 중 하나였던 VELROSIER에서의 런치. 교토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어서 어느 맛집을 갈까 폭풍 검색을 하다가 작년에 미슐랭 2 스타를 새로 받은 재패니즈 차이니즈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국내 후기는 거의 없었지만 가격이 상.당.히 괜찮아서 뭐 이 정도면 큰 리스크는 없겠지, 하고 고민도 없이 예약했다. (현재는 가격이 좀 오른 것 같다. 그래도 미슐랭 2 스타인 점을 감안했을 때 아직 꽤(?)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중식을 좋아하는데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희소한 재패니즈 차이니즈라니 매우 호기심이 생겼고, 게다가 일본에서 미슐랭 2 스타라니 맛도 보장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찾다 보니 일본 미슐랭은 대체 뭘 기준으로 뽑는지 기준이 명확하지도 않고 오히려 타베로그가 훨씬 맛집에 대한 공신력이 있다는 몇몇 의견들을 접했다. 하지만 난 어차피 경험이 많지도 않은 사람이니 일단 미슐랭을 믿어 보기로.)
그나저나 교토에서 방문할 레스토랑들 알아보면서 가이세키류는 아예 눈 밖이었다. 교토는 특히 가이세키류(?)가 유명한 것 같은데 그냥 여러 후기 사진들만 봐도 딱히 끌리지가 않는달까. 개인적으로 일본 가정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기서 파생된 비선호도인 것 같다.
토요일 런치로 예약을 해두었는데, 잠깐 이야기를 새자면, 마침 이 식당 근처에 있는 요즘 매우 핫한 휴먼메이드 매장에 오전 11시부터 신상 드롭 일정이어서 식당 방문 전 이곳에 들렀다. 대기하고, 대기표 뽑고 (그래서 사실 대기 먼저 하는 게 의미가 없다), 또 구매하려고 줄 서고 기다리는데 (대기순보다 신분상승한(!) 번호표를 뽑음), 나보다 전에 입장한 사람들이 하도 안 나와서... 예약 시간은 다가오는데 매우 초조해졌고... 게다가 기다리는 와중에 어느 중학생(?)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남학생과 부모님이 와서 어머님이 내 앞, 남학생이 내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이 학생은 이 브랜드가 뭔지도 잘 모르고 아~~~무 생각도 없이 맹하게 따라온 것처럼 보였는데 어머님이 너무나도 극성스럽게 학생에게 현금 쥐어 주시면서 너 사고 싶은 거 사라면서, 아니다, 너 혼자 사이즈 잘 고를 수 있겠냐며 걱정하시더니 너 들어올 때까지 엄마가 매장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줄 서서 대기하는 와중에 코치를 엄청 하시고... 그러더니 셋 중 먼저 들어간 걸로 보이는 아버님이 어머님이 찜해 둔 아들 옷을 구매하셨는지 '아빠가 니 옷 샀대!' 라며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 아무런 생각도 없어 보이는 학생한테 30만원은 되는 이 유행템을 그렇게도 입히고 싶어서 저렇게 극성이시라니... 쇼핑에 1도 관심 없어 보이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는 나는 또 왜 여기 탑승해 있나... 난 또 왜 이 나이에 이 유행템을 굳이 사겠다며 젠지와 중국인들과 함께 여기에 서 있는가...' 현타도 살짝 왔으나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포기는 안 하고 끝까지 기다렸고 ㅋㅋ 결국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다행히 시간 내 입장했으나 시간이 촉박해서 구매 후 쫓기듯 구매 후 식당으로 달려갔다. (어차피 살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고 무난한 니트 하나 구매했다.)
식당으로 가는데 워낙 길치라 지도 보면서도 헤매고 (마음이 급하니 더 헤맨듯한…) 예약 시간보다 한 십분 정도 늦은 것 같다. 도착하니 이미 다른 손님들은 착석한 상태였고, 유일한 외국인이자 1인 손님으로써, 뒤늦게 자리에 착석했다. 나머지 손님들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주류 주문이 필수라기에, 일단 샴페인 한잔 주문했다. 런치라 그런지 대부분 티를 주문한 것 같긴 했으나.
보아하니 모든 음식을 손님에게 동시에 서빙하는 시스템이어서, 초반에 다른 손님들과 속도를 맞추느라 내 음식이 빠르게 서빙되었던 것 같다. 물론 그만큼 나도 속도를 맞췄고. 아, 그런데 좀 의아하고도 불편했던 게, 메뉴지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 무슨 음식이 나오는 것일지 전혀 예상할 수도 없었고, 오로지 서버의 설명에 의존해야 했는데, 이게 또 안습이었던 게... 두 명이 번갈아가면서 서빙을 해주는데 한 명의 영어는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나머지 한 명은... 들으면서 '아 이 분의 설명의 절반은 그냥 날아가는구나...' 싶을 정도로 다 이해하기 힘들었고... 가뜩이나 미슐랭 레스토랑이니 재료 설명도 긴데 나중에는 다 기억도 안 나고, 꽤나 답답했던 거다. (온라인에도 메뉴가 없다.) 차라리 요즘 트렌드(?)인 것처럼 보이는 주재료만 적힌 심플한 메뉴지만 줬어도 괜찮았을 텐데... 전혀 예상을 할 수 없는 코스 전개였다. 그래도 파인 레스토랑이고 명색의 미슐랭 2 스탄데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한 정책을 고수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메뉴는 좀 알려주는 게 좋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식사 내내 들었다.
그래서, 어차피 메뉴지도 없으니 자세하게 쓸 수도 없고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식사에 대한 간단한 후기를 남기자면:
1. 양이 진짜 어.마.어.마.하게 많다. 나도 여자치고 꽤 잘 먹고, 그 여느 레스토랑에서 코스를 먹으면 남기지 않고 다 먹는 편인 데다가 물론 여기서도 일단 다 맛을 보았고 거-의 남기지 않았으나, 진짜 역.대.급으로 배부른 식사였다. 정말 말 그대로 이 식사 후에 '먹는 거에 질렸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어휴, 이제 나이를 먹은 건지 이렇게 과하게 먹는 건 좀 별로인 것 같다. (갈수록 점점 심플하고 간단하게 먹는 중요성을 느끼는 중.)
메인이 언제 나오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미 배가 터질 것 같았는데, 뭔가 또 음식이 준비되고 있길래 '설마 디저트겠지... 디저트겠지...' 하면서 노려보듯 키친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헐... 이제야 메인인 돼지고기였다. (아니 손님 중에 진짜 ㄱ자로 굽으신 할머니도 계셨는데... 진심 이 코스 어떻게 드신 건지...?) 배가 어느 정도로 불렀냐면, 나오자마자 며칠 뒤 예약해 둔 애프터눈티 일정을 바로 취소했고, 걸어서 2시간 넘는 아라시야마를 왕복으로 걸어갔다 왔다. (덕분에 교토의 시골스런 거리들, 관광지가 아닌 진짜 거주지들 여기 걸어가면서 다 본 듯.) 숙소 돌아오니 8시가 훌쩍 넘었다. 원래 밤에 일 때문에 교토에 온 친구와 잠깐 만나려고 했는데, 난 체력 소진으로 결국 호텔방에서 기절했다.
2. 음식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맛이었다. 솔직히 뭐 하나가 기가 막히게 맛있다, 이런 건 못 느꼈고... 뭐랄까 그냥 전반적으로 크게 호불호타지 않겠다,라는 느낌? 일단 뭐 재료들은 좋은 거 썼을 텐데, 맛 자체가 뭐 엄청 새롭거나 튀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일본식으로 이렇게 중식을 풀어낸 게 좀 참신한 포인트라면 포인트랄까. (예를 들어, 베이징덕 스타일로 나온 디쉬가 있었는데, 이게 베이징덕 스타일로 요리한 오리가 아닌 해파리 아니면 다른 생선류(?)였다. 하지만 역시 베이징덕은 베이징덕으로 먹는 게...)
3. 디쉬가 나오면 재료와 먹는 법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데, 설명을 놓치는 부분들이 있다 보니 정석(?)대로 못 먹고 옆 테이블 보다가 '아 저렇게 먹는 거군!' 하고 깨달은 점이 몇 번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너무 배부르다 보니 그냥 내 정신이 나갔던 듯하다...
아,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 전반적인 교토 음식 후기에 막 엄청난 극찬들이 없는 것 같아 누가 보면 나 원래 기본적으로 먹는 거 안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아니다... ㅠㅠ 맛있는 거 먹는 거 좋아하고 분명 교토에서 엄청 맛있는 것들도 있었는데 단지 이러한 파인레스토랑에서 접하지 못했을 뿐이다. (기대치가 너무 컸던 걸까? 아니다, 진짜 기대치와 별개로 그렇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