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사랑으로 빚어낸 영화적 순간들
루카 구아다니노는 현대 영화계에서 가장 관능적인 세계를 구축해 온 감독이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눈에 먼저 남는 것은 화면의 색과 질감이지만, 끝까지 마음에 남는 것은 결국 인간의 욕망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찌꺼기들이다. 팔레르모에서 태어나 에티오피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문화와 장소가 끊임없이 바뀌는 삶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마음, 곧 욕망을 들여다보는 예술가가 되었다.
다문화적 성장, 감정의 층위를 만든 배경
1971년 8월 10일 팔레르모에서 태어난 구아다니노는 알제리 출신의 어머니와 시칠리아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생후 한 달 만에 에티오피아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디스아바바 기술학교에서 역사와 이탈리아 문학을 가르쳤고, 가족은 에티오피아 내전을 피해 1977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언어와 종교, 풍경 속에서 자란 경험은 그의 영화 세계를 다층적으로 만들었다. 9살 때 어머니에게 받은 슈퍼8 카메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히치콕의 〈사이코〉,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들이 그의 첫 영화 학교였다. 화면은 감각적이고 장면은 자극적인데, 정작 인물들의 감정은 섬세하고 복잡하게 포개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엌에서 태어난 영화들
구아다니노를 이야기할 때 요리를 빼놓기 어렵다. 피에몬테 집에는 세 개의 주방이 있고, 그중 하나는 페이스트리용, 또 하나는 정원에서 기른 허브와 식초를 보관하는 방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주방 한쪽에서 작은 냄비로 요리를 하며 “감각을 다 써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음식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감정이 점화되는 장치다. 〈아이 엠 러브〉에서 엠마가 안토니오의 새우 요리를 맛보는 순간, 엠마의 삶은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복숭아 장면 역시 욕망이 얼마나 우발적이고, 또 얼마나 아름답게 치욕스러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의식처럼 작동한다.
욕망의 삼부작, 그리고 그 이후
구아다니노는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스스로 “욕망의 삼부작(Desire Trilogy)”이라 부른다. 세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규범과 도덕의 경계에서 흔들리지만, 그가 말하는 욕망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라 “삶을 더 강렬하게 느끼고 싶어 하는 상태”에 가깝다. 욕망은 그에게서 “위험을 감수할 만큼 누군가에게 끌리는 순간, 생각보다 오래 타오르는 불꽃”이다.
〈아이 엠 러브〉: 억눌린 삶을 깨우는 열망
〈아이 엠 러브〉(2009)는 밀라노 섬유 재벌가에 시집온 러시아 여성 엠마(틸다 스윈튼)가 아들의 친구이자 요리사인 안토니오(플라비오 라펜티)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관계는 외도라기보다는 엠마가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기억해 내는 과정에 가깝다. 구아다니노는 이 영화를 “자본과 계급을 위해 감정을 봉인해 온 사람들이 더 이상 거짓으로 살 수 없게 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에게 욕망은 파괴적인 충동이 아니라, 오랫동안 눌러 두었던 자아가 더는 숨을 쉴 수 없을 때 터져 나오는 ‘삶에 대한 열망’이다. 엠마의 선택이 윤리적으로 옳으냐를 판단하기보다, 관객이 그 감정의 진실성을 먼저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구아다니노식 연출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첫사랑의 ‘섞이고 싶은’ 감각
2017년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마 그의 영화 중 가장 널리 사랑받은 작품일 것이다. 1980년대 북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17살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24살 올리버(아미 해머)의 여름을 천천히, 그리고 잔인할 만큼 섬세하게 따라간다. 구아다니노는 이 영화를 “게이 영화”로 부르는 것을 경계하며, “편견 없이, 냉소 없이 욕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에 관한 영화”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욕망은 단순한 설렘을 넘어 “누군가와 완전히 섞이고 싶다”는 감각으로 표현된다. 그는 “욕망은 느리게 타오르는 불”이라고 설명하는데,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 역시 조금씩 쌓이는 시선, 스침, 거리감 속에서 서서히 온도를 높여간다. 마지막에 아버지가 건네는 “아프더라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구아다니노가 관객에게 던지는 인생론이기도 하다.
〈챌린저스〉: 경기장이 된 욕망의 전쟁터
〈챌린저스〉(2024)는 구아다니노의 영화 중 가장 팝하고, 가장 스릴 있게 욕망의 역학을 다룬 작품이다. 세 명의 테니스 선수 타시(젠데이아), 패트릭(조시 오코너), 그리고 아트(마이크 파이스트)는 13년 동안 사랑과 우정, 경쟁과 질투 사이를 끊임없이 가로지른다.
그는 “이 영화에서 경기는 단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게임이고 유혹이고 우정”이라고 말한다. 테니스 코트는 형광빛 조명과 폭발적인 전자음악, 과감한 카메라워크 덕분에 욕망과 권력이 부딪치는 전장처럼 보인다. 승부욕, 성적 매력, 인정 욕구가 뒤엉키며 욕망이 얼마나 복합적인 힘인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퀴어〉: 가장 개인적인, 가장 날것의 사랑
버로스의 미완성 소설을 원작으로 한 〈퀴어〉(2024)는 그가 “가장 개인적인 영화”라고 부르는 작품이다. 1950년대 멕시코시티에서 미국인 작가 리(다니엘 크레이그)가 젊은 유진(드류 스타키)에게 일방적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그린다.
구아다니노는 10대 때 처음 이 소설을 읽고 30년 넘게 영화화를 꿈꿨다며, 버로스가 이 소설을 오랫동안 숨겨둔 이유를 “자신이 얼마나 감상적이고 연약한 존재인지 드러낼 용기가 없어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욕망은 서로를 향해 공평하게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절박한 갈망, 혼자만 사랑하고 있는 듯한 불균형 자체가 욕망의 핵심처럼 보인다.
거장들의 ‘스토커’, 그리고 연인들
구아다니노의 라이프스타일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 그는 스스로를 “마스터 영화감독들의 스토커”라고 부르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장 르누아르, 에릭 로메르 같은 거장들의 집과 세트, 촬영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며 배웠다고 회고한다. 로마 유학 시절에는 베르톨루치의 친구였던 배우 라우라 베티가 주최하는 파티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며, 말 그대로 문하생처럼 거장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자신은 늘 영화감독과만 사랑에 빠져왔다”고 말할 만큼, 사적인 관계에서도 영화라는 세계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연인이자 동료가 이탈리아 감독 페르디난도 치토 필로마리노다. 두 사람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인이자 동료로 함께했고, 필로마리노는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서스페리아〉의 세컨드 유닛 감독으로 참여하며 구아다니노의 세계를 함께 구축했다. 필로마리노가 자신의 영화에서 정치적 스릴러 속 인물의 고독과 정체성을 집요하게 파고들 듯, 두 사람은 ‘감정과 욕망을 오래 응시하는 시선’이라는 공통된 매력을 공유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가 아닌 공간까지 설계하는 사람
구아다니노는 감독이자 동시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어린 시절 꿈이 건축가였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크레마 집을 스스로 리노베이션 한 것을 시작으로 Studio Luca Guadagnino를 설립했고, 이후 Yoox(육스)의 창립자 페데리코 마르케티의 레이크 코모 저택과 밀라노 아파트 등 여러 공간을 디자인했다.
그의 인테리어에는 실크 벽지, 석회 플라스터, 블랙 레더 핸드레일, 20세기 디자이너 가구와 맞춤 제작 서가가 겹쳐져 “시간이 여러 겹으로 쌓인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는 “영화 세트는 인물을 설명하는 평면적 공간, 인테리어는 실제 삶을 담는 입체적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둘 다 결국 감정을 환기시키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하나의 작업으로 본다. 그래서일까. 〈아이 엠 러브〉의 빌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여름 집, 〈퀴어〉의 멕시코시티는 모두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남는다.
화면으로 느끼는 욕망의 촉감
구아다니노의 영화를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빛과 재질이다. 〈아이 엠 러브〉의 밀라노 저택은 차가운 대리석과 붉은 패브릭, 따뜻한 조명이 섞여 ‘완벽하게 세팅된 삶’을 상징하고, 엠마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는 갑자기 야외의 흙, 초록, 자연광이 화면을 점령해 버린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35mm 필름 특유의 부드러운 입자 위에 토스카나의 여름빛, 과수원과 호수, 수영장 색이 얹혀서 영화 전체가 한 편의 긴 기억처럼 느껴진다.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뿐 아니라 손등, 목덜미, 땀에 젖은 셔츠 천처럼 욕망을 스치고 지나가는 디테일에 집요하게 머문다.
〈챌린저스〉에서는 테니스 코트가 형광빛 조명과 빠른 패닝, 오버헤드 쇼트와 함께 욕망과 권력이 부딪히는 전쟁터로 재구성된다. 반대로 〈퀴어〉의 멕시코시티는 일부러 인공적인 세트처럼 보이게 찍힌다(실제로 세트장이기도 하다). 네온과 그림자가 과장된 그 도시에서 리의 취기 어린 시선과 환각, 3부의 바디 호러는 욕망이 현실 감각을 어떻게 비틀어 놓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구아다니노 영화의 음악, 욕망의 또 다른 언어
구아다니노의 영화에서 음악은 화면만큼이나 욕망의 결을 드러내는 도구다. 〈아이 엠 러브〉는 존 애덤스의 기존 곡들을 통째로 가져와 구성한 영화로, 감독이 “감정의 닻”이라고 부를 만큼 음악에 의지해 만든 작품이다. 밀라노 도심을 여는 〈The Chairman Dances〉의 리듬부터, 마지막을 밀어 올리는〈Harmonielehre〉까지, 미니멀하면서도 폭발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엠마의 욕망이 깨어나는 순간들을 밀어 올린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수프얀 스티븐스의 세 곡,〈Mystery of Love〉, 〈Visions of Gideon〉, 〈Futile Devices〉 덕분에 한층 더 깊은 여운을 얻었다.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 낮게 깔린 목소리는 엘리오의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감싸 안으며, 영화가 끝난 뒤까지도 마지막 장면의 벽난로 앞 시간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만든다. 고전 피아노와 80년대 팝, 이탈리아 라디오 음악이 섞인 배경음들은, 여름 한 철의 사소한 순간까지 모두 음악과 함께 기억 속에 각인되게 한다.
〈챌린저스〉에 이르면 음악은 욕망과 경쟁의 박동 그 자체가 된다.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커스 로스는 이 영화에서 특유의 어둡고 느린 전자음 대신, 클럽에 가까운 하이 임팩트 테크노를 들고 나왔다. 반복되는 비트와 점점 조여 오는 신스 라인은 경기 장면뿐 아니라 침실, 호텔 룸까지 이어지며,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과 유혹, 질투를 하나의 긴 트랙처럼 엮어낸다.
〈퀴어〉의 음악 역시 같은 듀오가 맡았지만, 방향은 훨씬 몽환적이고 불안정하다. 레즈너와 로스는 피아노, 신스, 노이즈와 오케스트라를 섞어, 리의 취기와 불안, 집착을 층층이 쌓인 소리로 표현한다. 브라질 음악가 카에타누 벨루소가 참여한 오리지널 곡 〈Vaster Than Empires〉까지 더해지며, 멕시코시티의 네온과 리의 내면 풍경이 음악 안에서 한 번 더 뒤섞인다. 그 덕분에 〈퀴어〉는 시각적인 영화일 뿐 아니라, 귀로도 욕망의 흔들림을 따라가게 만드는 작품이 된다.
욕망을 통해 마주하는 자아
구아다니노의 영화는 단순히 “예쁜 화면의 아트무비”가 아니라 욕망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라는 초대장에 가깝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수많은 LGBTQ+ 청년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용기를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처럼, 그의 영화는 성 정체성에 상관없이 “내 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메시지를 건넨다.
〈아이 엠 러브〉의 중년 여성, 〈챌린저스〉의 선수들, 〈퀴어〉의 리처럼 그의 인물들은 모두 사랑과 욕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감정을 억누르고 안전한 선택만 하도록 강요하는 시대에 구아다니노는 오히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느끼고 사랑하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조금 더 솔직하게 사랑하고, 덜 겁내며 욕망하고, 내 삶을 내 식대로 살아보고 싶어진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더 솔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