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
"오셨구나, 어서와요. 엄마 아프신건 어때요? 좀 괜찮으신가?"
"아, 그게요......"
웃으며 대답을 하려다가 난데없이 눈물이 흘러내려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식당아주머니는 얼른 모른 척 해주었지만 아마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이따금 들르던 동네손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 것뿐이었는데 말을 잇지 못하고 울어버리는 손님이라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눈을 뜨자 엄마는 영문도 모르고 언니의 부축을 받고 앉아 얌전히 돈가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 엄마를 데려온 건 몇년 전이었다. 다리가 불편해 멀리 나서는 게 힘들어진 엄마가 집 근처에서도 외식하는 기분을 즐기게 해주고 싶어서 동네를 돌다가 찾아낸 작은 돈가스가게. 주인아주머니는 친절하면서도 상냥하셨고 근처 여자대학의 학생들이 주손님이라서 그런지 깔끔하면서 양도 푸짐해서 엄마가 만족스러워하는 게 흐뭇했었다. 엄마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무얼 먹고 싶냐고 물으면 멀리 갈 것 없이 여기에 오자고 하곤 했었다. 한참이 지나고 엄마와 다시 들렀을 때 엄마에게 아는 척하는 아주머니덕에 엄마가 내가 없을 때에도 이따금 이곳에 와서 돈가스를 먹고 가셨다는 걸 알았다. 해방도 되기 전에 태어난 엄마에게 이곳의 일식돈가스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근사한 한끼였을까. 그랬다면 좋겠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이곳을 혼자 찾아오지 못했다. 엄마가 집 앞에서 길을 잃어버린 날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엄마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나는 이따금 외식기분을 내러 이곳에 왔고 그 와중에 엄마가 기억을 잃는 데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었다. 어버이날이니 언니와 같이 엄마에게 무얼 사드릴까 고민하는데 엄마는 "나 돈가스 좋아하잖아." 여전히 돈가스를 고집하셨다. 지난주에도 엄마와 같이 왔는데. 그날의 엄마를 본 아주머니가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신 것 같다고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을 때 그때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을 뿐이었다.
엄마는 돈가스가 나오자마자 "오랜만에 먹는다, 돈가스. 그치?" 하고 나를 보며 물었다. "응, 맛있겠다." 하고 엄마가 열심히 돈가스를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너무 열심히 먹기에 몇 조각을 뺏어먹고 눈이 마주치면 웃는다. 언니와 나는 엄마가 돈가스를 다먹는 걸 기다렸다가 일어선다.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배웅해준다. "어머니, 또 오세요. 반가웠어요." 우리도 환히 웃으며 인사하고 가게를 나선다. 엄마를 앞세우고 걸으며 언니가 묻는다. 아까 왜 울었느냐고, 나는 다시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린다.
나는 엄마가 판정을 받은 날부터 서서히 절망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믿고싶지 않은 판정앞에서 의연하게 알겠다고 말했지만 가족들에게 그래도 괜찮을거라고 엄마는 잘하고 있다고 했지만.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지만. 절망에 점점 눈이 멀어 어째서냐고 분노하고 억울하다고 원망했다. 모든 것에 화가 났다. 내가 갖고 있던 어려움들은 더욱 커지고 이미 오래전 화해했다고 믿은 어린 시절의 지나온 상처들도 일어났다. 사소했던 문제들은 부풀어 올랐다. 웃음도 생기도 잃고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다. 가족들이,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상처 입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무감각했다.
그렇게 절망 끝에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준 상처들을. 그리고 그 상처로 나 역시 아파하며 헐떡이고 있었다는 것을. 잘못된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초조하게 목이 졸리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든 책임을 다해야한다고 잘해야 한다고 아등바등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은 무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는 것을. 너무너무 도망치고 싶었다는 것을. 너무너무 죽음이 두려웠다는 것을. 제발 나를 도와달라고 손을 잡아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는 것을. 그제야 나가떨어져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기를 쓰고 있었던 무언가를 놓았다. 두려움에 덜덜 떨며. 내가 준 상처들에 미안하고 괴로워 몸부림치며. 몇날 며칠을 울면서 웃는 연습을 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는 것.
순간순간 칼날에 스치듯 아프다. 자잘한 파도가 밀려오듯 문득문득 절망에 빠지는 순간,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안으로 빠져들지 않으려 눈을 감는다. 심호흡을 하고 나를 다독인다. 자꾸만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나에게 속삭인다. 내가 나약하더라도 괜찮다고. 내가 틀려도 괜찮다고. 내가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상처받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웃을 수 있기를. 두려움을 걱정으로 화로 원망으로 돌리지 않고 용기를 내어 말한다. 겁이 나요. 무서워. 두려워요. 눈물이 나면 울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며 웃는다. 괜찮지 않지만. 조금 일찍 겪는 일이야.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야. 그래도 나는 매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차분히 스스로를 다독인다. 다시 크게 심호흡을 하며 조금 가벼워진다. 나는 그렇게 절망 대신 나약함을, 눈물을, 웃음을, 삶을 택한다. 사랑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