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조용한 흐느낌'

책 속에서 읽는 마음

by 문성 Moon song Kim

책 속에서 마음을 읽을 때가 있다.

<The case for falling in love>, Mari Ruti의 책에서 발췌해서 옮겨적는다.



우리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불공평하며 자신이 결코 불굴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뭔가 완전하지 않은 듯한 이 느낌은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고, 알 수 없는 불만감이 일상의 저변을 흐르게 됩니다. 그 강도는 줄어들기도 하고 세지기도 합니다. 그것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 때도 있지만 펄펄 끓는 용암이 되어 우리를 집어삼키기도 합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 공허함을 '무'라고 불렀고 라캉은 '결핍'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조용한 흐느낌'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부르는 이름은 저마다 다를지 모르지만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내면의 공백에 대처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형태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백이 생기는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손 볼 수도 없습니다. 설령 손볼 수 있다 해도 그 공백을 없앨 방도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치르는 대가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를 상쇄할 방법을 찾는 것뿐입니다.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업적이란 알고 보면 이런 인간의 근본적 불안을 덜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큼 우리 존재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은 사랑에 미칠 때에야 비로소 온전함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꿈에 그리던 '그것'을 얻은 것만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문제가 많은 남자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는 무결점으로 보이는 이 남자를 숭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캉은 이런 사실에 대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것의 권위'를 부여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을 포착하려는 여러분의 레이더는 상당히 민감합니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찰나적 유대감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런 관계는 평범한 연애 몇 개를 합친 것보다 더 충만하죠. 관계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그 힘을 오래도록, 심지어는 수십 년 넘게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남자는 나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건드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멜랑콜리아, 즉 끝모를 애도와 상관이 있습니다. 때문에 연인이 우리의 '그것'을 되살리면 그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우리 존재의 감상적인 본질을 건드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욕망의 강도와 따라오는 희열이 멜랑콜리아를 압도하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멜랑콜리아는 언젠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남자는 우리 내면의 가장 감상적인 부분을 건드립니다. 그 이유는 최고의 기쁨과 최고의 고통이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남자에게 열중해 본 적이 있나요?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가슴이 찢어졌던 적이 있나요? 이런 연인이라면 정말 소중하죠. 평범한 데이트 상대와 여러분의 '그것'을 일깨워줄 남자의 차이를 여러분은 머지 않아 구별하게 될 것입니다. 첫인상에 좌우되어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은 무모하며 이런 욕망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흔히 치부되곤 합니다. '그것'의 끌림을 무시하라고 말하는 것은 욕망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요인을 간과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간에게 '타고난' 무언가가 있다면 이는 인간이 다른 이에게 '그것'을 찾아내는 엄청난 정확성입니다. 그것은 실낙원을 회복하려는 매우 인간적인 욕망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랑은 남자의 '그것'과 여러분의 '그것'이 만났을 때 일어납니다. 무슨19금 영화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그것'은 세상 어느 누구도 구사할 수 없는 미지의 언어를 구사합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그것'이 만나면 둘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런 느낌입니다. 어떤 이들은 소울메이트니 천생연분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사랑스러운 비유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신비롭게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그것'과 남자의 '그것'이 만나면 관계에 가속이 붙으면서 불꽃이 튄다고 했죠. 이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나쁜 소식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개성이 강한 두 무의식이 만나는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무의식은 이성적 계획에서 이탈하는 우리속의 작은 악입니다.


무의식은 반복됩니다. 우리는 매번 걸려들고 말죠. 프로이트는 이것을 '반복강박'이라고 이름 붙이기까지 했습니다. 이 강박에 사로잡히면 우리밖의 어떤 사악한 힘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플롯 안에 나자신이 갇혀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연애만큼 반복강박이 심하게 나타나는 곳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주 어려서 관계에서 배운 관계맺기 패턴을 끊임없이 작동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반복에도 의미가 있는 걸까요? 기차가 눈물젖은 정거장에 서는 것은 왜일까요? 그 대답은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습니다. 이런 괴로운 패턴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이 즐거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알고보면 상처받는 자신의 패턴을 극복하려고 처절하게 애쓰고 있는 겁니다. 이들은 반복이 해결로 이어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식으로든 상처를 입습니다. 상처의 깊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고통을 완전히 피해간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상처는 우리의 인성을 빚어냅니다.


반복강박에 관해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최대의 실수는 그 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과거와는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이성적으로 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수입니다. 어떤 관계든 반복이 우리를 제압하게 되는 때가 온다는 걸 인정한다면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잠자는 과거의 유령을 깨우지 않고는 친밀한 관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이 유령들은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 배고파합니다. 연애가 발전하면 묻어두었던 애환과 슬픔, 갈망과 분노가 자기를 봐달라며 별안간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멜랑콜리아도 함께 말이죠. 새로운 사랑의 하모니가 한동안은 이런 감정을 물리쳐주겠지만 이 감정들은 언젠가 고개를 내밀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모종의 협상을 시도하면서 유령에 용감히 맞서는 방법과 이런 감정을 일깨우는 연애에서 도망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후자를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늘 올바른 선택은 아닙니다. 나는 방복 강박에 관해서라면 조금 참아보라고 합니다. 자신과 연인에게 좀 너그러워질 것을 권하죠. 위기와 장애가 없는 관계란 없습니다. 우리는 다들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 무의식은 이런 문제를 촉발하는 남자를 고르는데 선수입니다. 한 남자를 내 삶 속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의 문제들까지 같이 초대하는 것이죠.


반복강박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반복과 감정의 폭력을 잘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구식연애의 패턴을 해결하는 데 기꺼이 참여하는 다정하고 배짱있는 남자라면 여러분은 운이 좋은 여자 입니다. 정말로 좋은 기회의 문턱에 서 있는 셈이니까요. 애정이 넘치는 관계 속에서 과거의 유령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을 재창조할 수도 있는 값진 기회가 됩니다. 때로 불투명함은 우리의 깊은 무의식까지 내려갈 수 있게 해줍니다. 과거가 여러분의 현재를 어떻게 좌지우지하는지를 똑똑히 살펴보게 하죠. 반복강박은 그렇게 하라고 여러분을 부추기는 장치입니다. 더 친밀한 관계 속으로 여러분을 떠미는 것이죠.


한 사람의 역사가 다른 이의 역사와 만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정서가 재편되지요. 하지만 그것은 생산적인 재편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고통스러운 패턴이 재현되는 순간이 곧 성장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순간들은 지진처럼 막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키지요. 이런 경험은 여러분이 그토록 조심스럽게 지어놓은 작은 집을 허물어뜨릴지도 모릅니다. 공들여 빚어놓은 내 정체성이라는 건물에 금이 갈 도 있고요. 그러나 이런 혼란이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너무 고집스럽고 너무 타성에 젖어버린 여러분의 내면을 다시 일깨울 수 있습니다.


관계의 어려움은 우리 존재에 고집스럽게 남아있는 모난 점들을 개선해나가게 만듭니다. 이 모난부분을 개선하기만 한다면 새로운 나는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랑과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오랜 패턴을 일깨울 수 있는 연인을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면 이런 패턴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나는 무결점의 인간이라고, 나는 연애하면서 혼란스러운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몇이나 될까요? 그렇다면 상대의 감정이 혼란스러울 때 조금 관대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요?


파괴적 패턴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그리고 지속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뒤로 미끄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무의식을 정복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무의식이 우리 행동의 동기가 된다는 걸 더 잘 인식하는데 있습니다. 무의식이 연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반복강박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우리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반면에 반복강박에 휘둘릴 때 우리는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정서적으로 경직된 상태가 되죠. 자신의 패턴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상황을 개선할 힘을 얻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밑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습니다.


'복잡한' 관계가 우리에게 더 좋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연인의 마음이 열려 있고 그가 여러분을 아낀다면, 우리 마음속 유령을 불러낸다는 이유로 그에게서 달아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그는 이유가 있어서 이런 일을 맡도록 선택된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감사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운이 좋다면 바로 그가 우리를 행복한 미래로 초대할 사람일 테니까요.



사랑의 실패는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삶의 영역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이별의 고통은 우리의 일상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우리를 무의식적 충동이 담긴 어두운 지하창고로 끌고 내려갑니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얻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상실로 인한 번민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죠.


반복강박은 고통스러운 연애 후에 우리를 또 다시 비슷한 연애로 데려가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배고픈 유령들이 우리를 나쁜 상대에게 데려갈 때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큰 고통을 견뎌낸 이들은 연애의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있습니다. 이들은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보다 두려움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과거의 고통을 평가하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나는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상처가 되는 과거는 현재에도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어려운 개인사와 싸우는 사람들은 황금빛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보다 사랑할 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극복해야할 구체적인 약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을 흔들어놓는 특정한 연애각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상태를 버틴 이들은 희망을 갖는 법을 압니다. 절망에 빠질 때 터널 끝에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통을 극복하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압니다. 그러므로 연습이 덜 된 사람들보다 더욱 성실하게 이를 극복합니다.


상처를 미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고통에 대한 우리의 습관적인 이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은 '불구'가 되어 그렇지 않았던 이들과 달리 편안하게 일상의 리듬에 적응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를 말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여러분 내면의 일부로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더 풍요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과거의 상처라면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분명 있습니다. 오히려 고통은 나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 사랑의 도박에 기꺼이 올인하게 합니다. 고통은 다시 회복할 정서적 유연성이 내게 남아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조용한 흐느낌'. 나의 '그것'과 꼭 맞는 상대방의 '그것'을 맞닥뜨려 불꽃이 튀겼었다.

내가 그리고 이글을 읽는 당신이 반복강박에서 유연해지기를 바란다. 나의 그리고 당신의 고통을 미화할 순 없더라도 우리가 고통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존중하고 관계의 밑그림을 새로이 그리기를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를 사랑하는 에너지를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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