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패스로 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1. 무비패스로 영화보기
6개월동안 10편 이상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글에 혹해서 이전에 써두었던 브런치 글 중에 하나를 보내고는 잊고 지낼 즈음 공지를 받았다. 우선은 무비패스를 받았고 6개월에 열 편 이상의 시사회에 초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지만 역시 아무일 없이 며칠이 지나고 나도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시사회 초대장을 메일로 보낸다는 것, 메일을 확인하고 응모신청버튼을 클릭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 그리고 클릭을 하더라도 선착순으로 신청을 하는 적정인원에 들지 못하면 역시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첫번째 시사회 초대 메일을 한참 후에야 발견하고 나서였다. 어쩐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을 빼고 메일을 기다렸다가 메일이 오자마자 클릭질을 해야지만 영화를 볼 수 있는 건가. 배터리가 닳는 게 싫어서 동기화를 해두지도 않고 알림설정을 해두지도 않는 나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어렵겠군. 마음을 비우고 몇 번의 기회가 지나고 또 어느날 우연히 메일함을 열었다가 메일이 온 걸 확인하고 신청버튼을 눌렀다가 시사회초대가 확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날짜와 장소는, 하고 그제야 확인을 하며 아, 무비패스로 시사회를 관람하는 것도 꽤나 노력과 정성을 요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화요일 저녁 8시 잠실. 평일 늦은 저녁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영화관까지 찾아가 2시간 넘는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몸이 무거웠고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이렇게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도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2.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영화도 좋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시간에 맞춰 영화관에 뛰어올라가며 혹시라도 늦을까봐 초조해하는 것이. 그 초조함이 과제나 수업 혹은 약속이나 일때문이 아니라 영화라는 작품을 위한 것임이. 표를 끊고 어둑한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찾으며 하나씩 흘러가는 예고편들을 감상하며 이제 보게 될 영화에 조금씩 더 기대가 부풀어오르는 것이. 툭 극장안의 불이 일시에 꺼지며 예고편이 끝나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새삼 영화의 시작에 집중하게 되는 그 작은 긴장감이.
영화는 이미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본에서 영화가 크게 히트를 한 다음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한국에서 리메이크를 했고 손예진과 소지섭이 주인공이라는 것도.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순한 눈매의 아이와 서투른 아빠 소지섭 그리고 사진 속의 엄마 손예진이 등장하자마자 짐작을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줄거리는 익숙하다못해 뻔하게 여겨졌다. 조금은 서툴고 어색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남녀 주인공과 그들의 사이를 이어주고 또 나아가게 하는 천진난만 하면서도 속깊은 아이. 그들을 둘러싼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다정한 주변 사람들. 잔잔한 따스함은 조금씩 어긋나고 갈라져 무겁게 내려앉고 끝내 슬픔과 고통이 더해지는 클라이막스는 결국 그 이면을 되짚는 것으로 여운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일본영화, 소설이 원작임에도 그보다 이전의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아이가 학예회에서 진심을 전하는 그 순간, 기어이 울게 만드는 그 장면에 상투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게 좋았다. 동시에 곁눈질 하지 않아도 나 외에도 눈물을 흘리고 훌쩍이는 사람들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들, 골목길에서 우산을 쓰고 스쳐가는 그 순간, 체육시간에 반 아이들 속에서 서로를 의식하며 긴장하는 그 순간,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기 너머로 말을 건네던 그 순간,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며 말을 꺼내던 그 순간. 커다란 화면 속 그 뻔하디 뻔한 순간들에 나는 문득문득 나의 그 뻔하디 뻔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 순간들을 내가 같이 겪고 있는 듯 얼굴이 화끈하고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고 울컥 목이 메였다. 상투성의 힘은 강하다던 그 말을, 대중예술의 힘을 이야기하던 언젠가예술철학 강의시간에 들었던 어떤 교수의 호언장담을, 내가 증명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 상투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상투성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또 헤어지고 다시 또 살아가지..." 하고 힘을 빼고 담담히 말을 이어가는 영화였다. 영화의 나직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조금은 심심했지만 풍성한 녹음과 빗줄기, 햇살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나머지를 채워주었다.
3. 초록이 가득한 풍경 그리고 상투적이지만 따뜻한 이야기가 주는 위안
이 두 가지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특히 나무의 다채로운 녹색을 사랑하는 내 취향때문이다. 광고를 위해서 어떤 감정이라도 이용하는 짧은 cf에서조차, 상투적임에도 따뜻한 감정들에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마는 절대로 외면하지 못하는 내 성격때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맥락에서 이 영화를 보러 간 것이,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영화를 보고 할 수 있는 말은 무한하겠지만 그 말들은 결국 좋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 누구든 자신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을 위한 것이리라.
나는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에 절실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투적이라도 다정한 말들이 주는 따뜻함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짙푸른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는 철길을 걸으며 손을 맞잡은 그들에게 얻은 위안을 다른 누군가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