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전사, 광주에 바치는 소시민의 헌사

깨어있는 시민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by 문성 Moon song Kim

혼자 택시운전사를 보았다. 광주에서 저런 일 있었는지 몰랐다며 일행에게 속삭이는 양옆의 사람들 가운데에서 대학 3학년 때가 떠올랐다.

광주에서 열린 5.18.기념식에 함께 가자고 후배들을 설득하려고 갖은 애를 쓰던 그 때. 아무도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해서 살갑게 말을 붙이고 어르고 달래며 꼬시다가 결국 과방 옆 베란다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어버렸던 게 기억이 났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실 때는 신나게 따르던 후배들이 같이 가자고 할까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던 모습에 씁씁해하면서 웃었던 것도 떠올랐다. 나는 21세기를 살면서 80년대 정서를 갖고 있다는 놀림을 받곤 했다. 결국 단 한 명의 후배와 같이 금남로에서 5.18. 전야제 행사를 함께 했다.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무대위에서 넘실대는 횃불과 같이 일렁이는 물결처럼 움직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었다. 가슴이 미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송강호가 광주역에 모인 사람들을 헤치고 박수를 받으며 광장으로 들어가 주먹밥까지 받던 그 순간의 기분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광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에 들어와서 현대사책을 접하고 나서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전두환과 노태우는 사면을 받았을까. 어떻게 김대중은 용서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들은 아직도 광주를, 전라도를 빨갱이집단으로 몰까.그리고 왜 이 일들을 알고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을까. 나와 같이 자세히 알게 되고도 관심이 없거나 전라도에 편견을 갖고 있는 이들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사진만으로도 글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어째서 세상은 이리도 무심하고 태연하게 돌아가는 걸까.


그때 그 마음이 택시운전사 천만이라는 말에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속삭이던 그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보였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몰랐을까.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어떻게 아직도 광주를 폭도로 모는 전두환이 저렇게 뻔뻔하고도 의기양양하게 살고 있지. 영화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해주는 걸까. 영화가 그 어떤 진실보다도 힘이 센 걸까. 이 관심이 영화관을 나서고 나면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내려지고 나면 또 다시 너무도 쉽게 사그러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송강호가 부끄러움을 버럭 화를 내는 것으로 되받아치며 광주지역 택시운전기사들과 대거리하는 장면을 보며 문득 또 다른 순간들이 떠올랐다. 활동가가 되어 곁에서 함께 하거나 가장 앞에 서서 문제를 지적하고 표적이 되고 결국 경찰서에 가거나 재판을 받았던 사람들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던 순간들. 나는 그들처럼 그것을 업으로 삼을 수 없었다. 그리고 광주는 알고 있었어도 한국사회에 소수자는 그들만이 아니었고 미전향장기복역수, 철거민, 청소아주머니들, 성소수자, 내가 몰랐던 일들은 그들 앞에서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질문은 다시 나를 향했다. 그래도 사회를 바꾸는 일에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하며 제안을 받았던 활동가로서의 길을 끝끝내 택하지 못했다. 한편으론 앞서 대학을 졸업하면서 각자의 직업을 갖고 사는 선배들이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자신의 삶에만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생각했었다.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라는 내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잊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모든 사람이 앞으로 나설 수도 없고 나서야하는 것도 아니라면 참여하는 소시민이 되겠다고.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내가 참여하는 소시민으로 일조한 것 같아서 참 행복했었다. 그가 죽었을 때 광화문한복판 노제 행렬을 따르며 반문했었다. 그가 말하던 깨어있는 시민이 되고 싶었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했던 걸까. 이명박때에는, 박근혜 때에는, 세월호참사에는, 매주 나가던 촛불집회 때에는, 생각은 자꾸만 꼬리를 물고 영화에 몰입하는 걸 방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의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눈물이 줄줄 흐르는 걸 참지 못했다.

송강호가 순천에서 국수를 꾸역꾸역 흡입하고 결국 차를 돌려 광주로 돌아가는 순간이 영화적 정점이었지만 그 장면보다 유해진이 어여가 라고 말하는 게 내 마음을 훨씬 더 후벼팠다. 나는 그 순간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피해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피해자가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실제로 광주사람들이 피해자로서 그런 일을 겪고도 그 어느 지역보다도 높은 민주적 의식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껴왔기에. 그래도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그들이 문자 그대로 피로 댓가를 치른 덕분이라는 것을 유해진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요란한 자동차사고 소리로 그의 마지막을 짐작케하는 그 상황에서 새삼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광주는 언제나 마음이 미어지고 결국은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게 되는 곳이었고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마음을 주게 되고 발길을 멈추게 되는 곳이었다.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눈물을 닦고 일어나는 걸 보면서 설사 영화개봉이 끝나고 관심이 식는다 해도 이렇게라도 5.18.이 많은 관심을 받고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돌아보게 하는 그 역할을 그 누가 무시할 수 있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김기춘도 문화계에서도 영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영화계가 좌파투성이라는 말을 해가며 드잡이하려고 했구나 싶었다.


그 순간 문득 또 하나 깨달았다. 미술은 영화처럼 강력한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장르지만 나는 미술속에서 그런 작품들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택시운전사와 같은 영화가 하는 역할을.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 어느 문화의 작품들을 공부하고 사랑하든 그런 작품들에 주목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미술 속에서의 그런 작품들을,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내야겠구나, 마음먹었다. 주목을 받지 못해도, 목청을 높이지 못해도. 나는 내 자리에서 깨어있는 소시민이 되어 조금 더 나은 사람 사는 세상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직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앞으로도 버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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