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패스로 본 시사회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한 입 베어물고 우물거리며 팸플랫을 읽던 참이었다. 티켓을 받아들고 티켓에 적힌 러닝타임이 8시부터 10시 반, 두시간 반에 육박하는 긴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는 지체하지 않고 영화관 앞 맥도날드로 들어가서 허기를 채우려고 빅맥을 시키고는 그제야 찬찬히 팸플릿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그래도 영화를 볼 여유를 갖고 싶어 짬을 내 영화관을 찾았는데 실화라는 것 알고는 영화가 만만치 않을 것같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1967년 디트로이트 시를 배경으로 한 흑인폭동. 소요사태 와중에 일어난 알제모텔의 세 발의 총성으로 시작된 사건. 결국 3명의 흑인이 죽고 피해자와 목격자가 가해자로 뒤바뀌고 가해자로 지목된 백인 경찰들이 법적 공방끝에 무죄로 풀려나기까지 영화는 그날밤 사건에 연루되었던 이들이 어떠한 과정으로 그 현장에 서게 되었는지 또 그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얽혀들었는지 카메라로 복기하듯 재구성해 보여준다.
백인경찰들이 폭동이 일어난 시를 어떻게 훑고 다니는지 그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은 그들이 얼마나 백인우월주의를 당연시하고 있었는지 흑인들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인한 차별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성실한 노동자였던, 이제 막 발돋움하려던 가수였던, 친구들과 어울리던 장난기많은 젊은이였던 흑인 청년들이 소요사태 속에서 모텔로 찾아들고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몰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거나 누명을 쓰거나 외상후장애로 사회로 복귀하지 못하게 되는 모습들 속에서 백인우월주의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인한 차별이 어떻게 개개인의 삶을 제한하고 망가뜨리는가를 실감해야 했다.
모두 벽을 보고 서서 손을 대고 있으라는 명령으로 모텔에 있던 흑인 청년들은 무기력하게 등을 보인 채 그들의 처분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그 와중에 한 명씩 다른 방으로 끌고 들어가 취조를 하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들은 너무도 쉽게 사람을 죽이고 또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죽이고 또 죽인다.
2차세계대전에서 공수부대원으로 참전을 하고 돌아온 흑인장교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경찰들에게 군인일리가 없다는 부정과 경멸을 당하고 어린 백인여자애들과 함께 있었으므로 순진한 백인여자애들을 매춘으로 내몬 포주라고 여겨져 구타를 당한다. 그때 백인 경찰들을 바라보던 그의 눈.
그날밤을 지켜보았던, 심지어 연방의 군대와 경찰들에게 협조를 하고 있었던 흑인경비원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목격자에서 용의자로 둔갑하여 취조실로 끌려가고 그가 보았던 것들을 설명하고 흑인으로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인해 결국은 범인일 것이라는 유추와 함께 감옥에 갖힌다. 영문을 모른 채 끌려와 백인중년인 두 명의 취조형사의 비아냥과 협박에 가까운 취조에 말문이 막혀 그들을 바라보던 그의 눈.
영화 속의 그 어떤 장면보다도 그들의 눈이 기억에 남았다. 결국은 경찰들을 법정에 세우고는 증인석에 앉아 그들과 함께 배석한 변호사들의 여전히 너무나 당연하게 백인우월주의가 깔려있는 질문에 시달리는 그들을 보면서, 결국은 무죄로 판결이 나서 웃으며 법정을 나오는 백인경찰들을 바라보는 그들을 보면서, 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실제 사건의 종결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현재 삶을 보면서, 나는 또 다른 디트로이트의 흑인들을 생각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그리고 여전히 싸우고 있는 할머니들,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여전히 사과받지 못한 어르신들, 4.3사건으로, 5.18로 고통받았던 이들과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유족들......최근에도 미투 이후에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까지. 영화는 때로는 현실의 단면을 잘라 피가 뚝뚝 흐르는 그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의 눈 앞에 들이밀어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당신은 이걸 보아야한다고.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저 위의 디트로이트 포스터에 적혀있듯이. 물론 그 목소리를 들을지 듣지 않을 지는 우리가 선택해야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