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도 강력한 도발, 킬링디어

브런치 무비패스로 본 영화 <킬링디어>

by 문성 Moon song Kim

*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킬링 디어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를 보게 된 건 메일 한 통 때문이었다.

좀 더 분명히 말하면, 메일 속에 나의 시선으로 본 영화에 대한 글을 읽고 싶다는 문장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당신의 시선이 궁금하다는 말을 듣는 것만큼 기쁜 말이 또 있을까. 할일이 많았음에도 그 문장에 혹해서 답장을 보냈고 황금같은 토요일 저녁시간에 예매했다. 그리고 궁금해져 영화를 검색해보고는 괜한 짓을 한 것일까 뜨악해졌다.

복수극에 스릴러,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설명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토요일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뚱이로 극장에 앉아야할 텐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위안을 얻기보다는 긴장과 몰입으로 오히려 피로가 더 쌓일 수도 있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불길한 예감대로 2시간을 넘는 러닝타임 내내 긴장하고 몰입하고 있었다. 긴장을 더욱 높이는 간결하고 날카로운 음악, 꼭 필요한 것들만 세팅된 연극무대처럼 등장인문들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영화속의 집, 병원, 산책길 등의 공간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문들 역시 앞뒤 좌우없이 자신의 일상의 일부를 뚝 떼어놓아 그 부분만을 보여주는 듯 최소화된 표현과 행동까지 모든 것이 미니멀한 연극무대에서 최소한의 등장인물들이 최대한을 끌어내어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성공한 외과의사와 안과의사인 그의 아내. 상류층이라고 할 만한 고급주택의 안락한 생활. 이제 막 합찬단에 들어간 초경을 하는 딸과 긴 머리카락을 고수하는 아름다운 눈을 갖고 있는 어린 아들. 그림같은 완벽에 가까운 삶은 알 수 없는 눈빛에 어눌한 말투와 행동으로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소년이 끼어들며 삐걱대기 시작한다.

소년은 의사에게 계속해서 접근하고 불안과초조를 느낀 의사는 그와 거리를 두려 하지만 소년이 경고한 대로 아들이 사지마비를 일으키고 거식증세를 보이고 결국은 안구출혈까지 보게 되자 광기를 보이며 가족이 모두 다 죽이 전에 아들을 죽이고 만다. 소년의 경고는 수술대 위에서 죽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그도 역시 같은 댓가를 치러야한다는 복수심이기도 했다.

소년이 경고한 대로 쓰러지는 아들과 딸 그리고 그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애쓰다가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기력 속에 놓인 아내. 처음에는 소년에게 잘해주었다가 소년을 멀리하고 다음엔 소년을 감금폭행하고 죽이려다가 자신이 당면한 상황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터뜨리고 마는 의사의 모습이 결국은 소년의 분노와 복수때문이라는 영화의 설정 자체가 우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의료사고로 죽은 아버지와 상응하는 댓가를 치러야한다는 소년의 복수심이 저주와도 같이 의사의 아들을 쓰러뜨리고 딸을 쓰러뜨리고 그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거식증과 안구출혈의 수순을 밟는 그 과정 자체가 아무런 개연성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신경을 긁는 음악과 함께 이뤄지고 나는 그 불가해한 상황을 너무나 쉽게 납득하기를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의사와 아내, 그들의 자식들의 모습에 도대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인 내가 문제인 건가 혼란을 느낄 지경이었다. 불가해한 상황 속에 내던져지고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상황 속에서 말려들어가 반문을 하게 되는 불편함. 파국으로 치닫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하고 파국과 그 이후까지도 결국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속에 놓여있어야만 하는 상황.


관객으로서 더 없이 괴로운 그 상황이 사실은 우리가 종종 놓이곤 하는 삶 속의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영화관에 와서 그것을 다시 한번 밀도 높은 긴장감으로 맞닥뜨려야한다는 사실이 솔직히 불쾌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왜였을까. 어째서 그리도 기분이 나빴을까.

감독이 이피게네이아라는 그리스 비극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정보가 아니어도 우리는 매 순간순간 곳곳에서 그렇게 말도 안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그 비극을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타인에게 돌리고 복수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숱하다는 사실도 역시 알고 있다. 앱을 켜서 뉴스를 열어보기만 해도 그와 같은 말도 안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너무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생각지 못한 실수가 비극을 불러오고 비극적 상황이 닥치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피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 중 누군가는 복수극을 펼치기 위하여 당사자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죽임을 당하는 그런 일들은 오늘의 사건사고, 해외토픽의 한단짜리 기사만으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감독은 그와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비극을 간결하고도 밀도 높은 화면과 음악으로 관객 앞에 펼쳐보인다. 지극히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차마 떨치지 못하는 불안, 맞닥뜨리는 불행 앞에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무너지는 얼굴, 불행 앞에서 저도 모르게 터뜨리는 분노, 그 속에서 어떻게든 더 나은 살 길을 찾으려 헤매이는 초조함......

영화는 우리가 한없이 무너지는 순간순간들을 가장 적나라한 날 것의 모습으로 포착하듯 화면 가득 펼쳐내고 영화를 보내는 나 역시 그 감정에 휩싸여 여지없이 불안과 분노와 초조가 내 안에서 넘실대게 만들었다. 그 날것과도 같이 펄떡거리는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 있었으니 당연히 영화가 불쾌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를 곱씹어보다가 문득 그로테스크하고 기귀한 이미지들로 관람객들에게 불쾌함을 주는, 미의 기준에 대해서도 도발적으로 반문하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연이어 나 자신이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태도를 돌아보게 됐다. 영화는 이미 하나의 예술장르이고 작가의 생각을 펼쳐보이는 장이자 창조된 하나의 세계인데 나는 왜 영화는 언제나 즐겁고 편안한 것이어야한다고 여기고 있었나. 나는 망치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섬세하지만 강력하게 일상적인 것들을 쪼개어 갈라버리는 한 방.


다시금 곱씹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 한 방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킬링디어는 당신에게도 그런 섬세하지만 강력한 한 방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불쾌한 영화가 될까. 아니면 아름답고 섬뜩한 스릴러, 혹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재미있는 영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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