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로 본 <어느 가족>
1.
브런치 무비패스로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하기 전 꽤 오랜동안 영화관에 발길을 끊었더랬다.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기보다는 압도적인 현실의 스펙터클에 압도당해서 영화관을 찾을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티비화면과 신문지면을 매일이 아니라 매 시간마다 갈아치우는 굵직한 뉴스들 속에서 종종 거대한 파도 속에 떠밀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었다. 파도 속에서 그래도 헤엄쳐보겠다고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우연히 떠밀려온 부표를 마주치듯 버스를 장식한 포스터들과 티비나 컴퓨터에서 나오는 영화의 예고편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테스트해보곤 했다. 저 포스터가 마음을 끄는지 아닌지. 저 예고편이 재미있게 느껴지는지 아닌지. 저 예고편 너머 본편이 궁금한지 아닌지. 물론 마음을 끄는 포스터도 있었고 재미있는 예고편도 본편이 궁금한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영화관까지 가게 한 영화가 없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 굳이 비현실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비현실이 그려내는 현실이 나에게 와 닿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는 영화를 무겁게 보지는 말자 좀 더 가벼워지자는 마음에 조금은 충동적으로 브런치무비패스를 신청했더랬다.
그리고 몇 편의 영화를 지나 만난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는 비현실이 현실을 더욱 오롯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비현실이 현실보다도 더욱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어느 가족>을 보며 새삼 영화가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그 어떤 현실의 이야기보다 진심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예술이 갖는 힘이란 바로 그런 것임을, 그래서 그 앞에서 울고 웃고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영화들이 있었음을 곱씹고 있었다.
2.
여기 중년의 사내와 어린 소년이 있다. 그들은 추운 겨울 두툼한 옷을 입고 장을 보는 사람들 속에서 한눈에도 허름한 옷으로 쇼핑몰을 훑고 물건을 훔친다. 그들이 사는 곳은 낡은 물건으로 들어찬 지금 당장 철거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폐허에 가까운 재래식 주택.
낮에는 오로지 할머니 한 명만이 사는 것으로 보이는 그곳에 사실은 그 중년의 남자와 어린 소년이, 유흥업소에 다니는 젊은 여자가, 다림질을 하며 맥주를 입에 달고 사는 중년의 여자가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은 음식을 나누어먹고 곁에서 몸을 누이는 그야말로 한 식구인 셈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사내와 소년이 훔친 물건을 챙겨 고로케를 먹으며 집으로 가는 중에 만난 소년보다도 어린 소녀는 이미 며칠 째 그곳에서 웅크리고 있었고 그들을 결국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고 고로케를 쥐어주고 젊은 남녀의 싸움박질을 뒤로 하고 그 소녀를 데려온다.
언제부터 그곳에 놓여있는지도 모를, 곧바로 쓰레기장으로 직행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물건들로 가득 찬 좁은 집에서 그렇게 할머니와 젊은 여자, 중년의 남자와 여자, 어린 소년과 그 보다도 더 어리다 못해 여린 소녀는 같이 밥을 나누어 먹고 잔다. 함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참견을 하고 다투고 걱정을 하고 곁에서 지켜보며 울고 웃는다.
일상을 나누는 곁에서 함께하는 그리고 서로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들. 영화는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조용히 그리고 단호히 묻는다. 그들을 가족이라고밖에 달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3.
작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있던 소녀가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을 건낸 순간. 소년이 하교하는 아이들을 지나치며 소녀를 챙긴 순간. 그들이 함께 수영복을 사가지고 돌아와 목욕을 하다가 소녀가 자신의 화상자국과 같은 화상자국을 발견하고 중년의 여인의 팔을 쓰다듬어주는 순간. 그리고 소녀가 오던 날 입고 있던 옷을 불태우고 사랑하면 때리는 것이 아니라 안아주는 것이라며 소녀를 꼬옥 안아주던 순간. 그들은 눈을 마주보며 웃었고 그 따뜻함은 화면을 넘어 나에게도 전해졌다.
여름밤의 하나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소리로 즐기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던 그들은 어느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은 기차를 타고 바다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훔친 수영복을 입은 소녀 외에는 누구도 수영복이 없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파도가 밀려드는 해변에서 폴짝이는 뒷모습은 그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오래도록 지켜볼 수 있도록 화면이 정지했으면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었다.
4.
그러나 할머니의 죽음 이후 노인의 연금과 훔친 물건들로 버텨온 그들의 일상은 너무나 당연히 아주 작은 균열에도 무너져내린다. 아주 조금 자신감을 갖게 된 소녀가 슈퍼마켓의 과자봉지에 욕심을 낸 순간, 소년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음을 직감하고 대신해 붙잡히고 결국 가족 모두가 경찰에 붙잡혀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유괴범이자 시체유기범으로 감옥에 들어간 중년의 여성. 그녀는 심문을 받는 피의자가 되어 자신을 마주한 이에게 말한다. 어린 소녀를 버린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였다고. 죽은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 묻은 것은 유기가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것에도 돈이 드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고인과 함께 하고자 했던 선택이었다고.
화면 너머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자고 또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그 속에서 울고 웃고 서로에게 어깨를 내주고 곁을 지켜주는 것이 가족이 아니면 뭐냐고, 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이냐고. 어떻게 살아야지만 가족인 거냐고. 그 여리디 여린 소녀가 정말로 집에 가고 싶다고 했을리가 없다고 헛웃음을 짓던 그녀의 독백은 화면을 뚫고 나와 마음을 쿵 내려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감옥에, 중년의 사내는 작은 아파트에, 젊은 여자는 자신의 집으로, 소년은 다른 소년들과 함께하는 사회복지기관에, 소녀는 어머니의 집에 돌아가고 결국 소녀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홀로 베란다에 웅크리고 앉아 혹시 올지도 모를 누군가를 기다린다. 말간 눈으로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로 영화가 끝이 나고도 오랜동안 그들의 얼굴이 머리속을 떠돌았다. 지금 글을 적고 있는 와중에도 화면 너머를 응시하며 독백하던 중년 여자의 얼굴에 흐르던 눈물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그리는 가족의 모습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