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무비패스로 본 <체실비치에서>
1.
다시, 브런치 무비패스가 시작되었다.
첫번째 영화 서치를 스쳐보내고 두번째로 만난 영화, 체실비치에서.
어톤먼트의 작가 이언 맥큐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소개에 궁금했다.
그가 묘사한 사랑은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영화를 보고는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2.
한쌍의 신혼부부가 있다.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지 호텔에 도착을 한 둘.
긴장과 떨림. 아직은 어색한 사이의 두 사람은 체실비치의 길고 긴 모래사장을 다정히 걸어왔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은 자잘한 진동을 일으키며 계속해서 균열을 만들어 결국은 더 이상은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만들고 만다.
뛰쳐나간 신부를 쫓아나온 신랑은 그들이 다정히 걸어왔던 체실비치의 끝에서 소리치고 싸늘하게 내뱉고 애원하고 절규하고 다시 붙잡는 손을 끝내 거절한다. 그들은 서로 등을 돌려 걸어간다. 함께 했던 두 사람의 모습은 그렇게 더는 잡을 수 없는 거리로 멀어져간다. 화면 밖으로 그리고 서로의 인생밖으로 사라지고 만다.
나는 그들이 어떤 절정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을, 그 두려움과 떨림을 지켜보며 누군가의 아주 내밀한 사생활 엿보는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그들이 어째서 그렇게 주저하고 실수하고 놓치고 다시 후회하고도 머뭇거리고 어정쩡하게 굴게 되었는지. 그 이유들은 그 순간순간 회상하듯 화면에 펼쳐진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그들의 사생활의 계보를 되짚어 훑듯이 들여다보고 또 그로 인한 그들의 번뇌와 고통의 순간들을 짐작하며 다시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엿보기를 이어나갔다. 2시간을 꽉 채우고 결국 그들이 화면밖으로 그리고 서로의 인생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3.
그러니까 그들은 정말로 우연히 맞닥뜨렸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그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둘이 서로밖에는 보이지 않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순간.
그런 순간은 결국 어색함조차 설레임으로 느낄 수 있는 데이트로 이어진다.
그리고 정말로 서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온전한 둘만의 시간으로
멀리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 혼자 기차를 타고 낯선 곳에 도착해 지도에 의지해서 몇 시간을 걷고 나서야 먼 발치에 있는 그를 발견하고 단숨에 뛰어오는 그런 순간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그런 순간들을 거쳐 결혼을 결심했고 서로를 사랑함을 알면서도 결혼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흔들린다. 앞날에 대한 기대와 불안. 주변의 기대와 걱정. 차츰 드러나는 우려와 불만. 딱 맞아 떨어지지 못하는, 완전히 드러내지도 못하는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림자들이 우려와 불만을 더욱 키운다. 서로에 대한 걱정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위축되고 상처를 주고 다시 내민 손을 끝내 잡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다른 이는 그 거절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고 만다.
그들의 모습은 각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한 어느 두사람의 이별이자
결국은 자신의 내밀한 그림자를 넘지 못하고 서로를 잡지 못하여 헤어지고 마는 모든 커플의 이별이기도 하다.
그들의 모습은 최초의 이별의 모습이자
무수히 많은 이들이 반복하고야 마는 이별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주 내밀한 누군가의 사생활을 엿보는 기분을,
사실은 나 자신의 내밀한 사생활이었던 이별의 순간들을
다시 한번 겪는 것과도 같은 기분을 맛보게 했던 것이다.
그들의 이별 속에는
첫 만남부터 이별의 순간까지
두 사람이 함께했던 모든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함께 균열을 일으키고
그들이 헤어진 체실비치의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가 부서져내리고 말았다.
그 엄청난 환희와 아름다움만큼 엄청난 고통과 슬픔으로.
나는 영화관의 어둠속에 조용히 앉아 그들의 환희와 슬픔을 말없이 지켜보며
내가 겪었던 환희와 슬픔의 순간들을 다시 겪어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영화를 통해서라도
사랑의 순간들을 그 환희와 고통을 맛보려 하는 것일까.
그 순간들이 스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간들을 잡아채고자?
그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는 것을 생생히 느끼게 하기 때문에?
연애는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이라고, 어른들만의 놀이와도 같은 것이라고,
더 이상은 즐거울 것이 없는 인생이라는 걸 알아버린 어른들의 유일한 즐거움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일본의 작가, 감우성과 손예진이 주연을 한 연애시대를 쓴, 그리고 결국은 자살을 한 소설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말로, 우리 어른들에게는 인생의 가장 지극한 즐거움은, 사랑이 주는 환희뿐일까. 그리고 그 환희의 댓가는 지독한 슬픔뿐일까.
여전히 나는 답을 하지 못한다.
체실 비치에서의 두 남녀를 보며 느끼는 사랑의 환희와 슬픔 속에서도.
어째서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의 환희와 슬픔을 찾는지. 어떤 이들은 평생을 그 하나의 기억으로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그 기억들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려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