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패스로 본 영화 <명당>
1. 명당을 보러 가면서도 그닥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관상이라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 뒤를 이어 비슷한 포맷의 영화, 궁합은 실망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당에 명당이 앞선 두 영화와 다른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오래되어 더 이상은 현실에 맞지 않는 무엇이라고 여겼던 것을 새로운 소재로 끌어와 신선함을 주었던 것은 두번 세번째가 되면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첫번째의 포맷을 답습하면 오히려 더더욱 뻔하고 지루하다는 야유를 받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는 위험이 존재하기까지 한 상황에서 이 영화는 무얼 보여줄 수 있을까. 결국 추석을 겨냥한 가벼운 킬링타임무비 아닌가. 나는 무비패스로 지금까지 보아온 영화들 중에서도 이 영화에 가장 까다로운 관객이 되어 상영관에 앉았다.
2. 영화가 시작되고 길과 가옥, 산맥과 물줄기가 드러나는 땅의 모습을 조망하며 멀어지는 오프닝시퀀스는 의구심을 잠시 멈추고 그 풍경 자체를 들여다보며 사람이 어딘가에 산다는 것, 그 어딘가가 삶을 얼마나 좌우할 수 있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영화는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영리한 선택이라고 내심 인정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권력의 횡포와 그로 인한 갈등, 피해자들의 모습이 몇몇 장면으로 단편적인 스케치로 지나치는 게 도식적으로 여겨져서 못내 영화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가늠하는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3. 그러다 백윤식과 김성균의 연기가 펼쳐지는 순간 의구심을 잊고 어느새 영화의 이야기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백윤식이 만들어내는 인물의 아우라와 그것을 팽팽하게 받치는 김성균이 만들어내는 인물의 성격은 그에 대립각을 세우는 신예배우의 왕의 머뭇거림까지도 설득력있게 만들어주며 화면을 그리고 화면너머의 나의 의구심까지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립이 격앙되는 순간순간을 설득력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조승우의 연기였다. 그는 차분하지만 내면의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그들의 강렬한 대립의 진폭을 확장시켰고 유재명은 거기에 인간적인 온기를 더해 무심히 감싸안으며 그들의 대립이 실제로 있었을 것만같은 현실성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그것에 힘을 얻어 지성이 날뛰어도 문채원이 더욱 차가워져도 그들의 연기가 충분히 그럴만 하다고 여겨지는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4. 지성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가고 결국 엔딩에 지성과 조승우가 대립하며 보여주는 그 광기에 가까운 뜨거움과 깊은 절망에 가까운 차가움은 예상했던 도식을 벗어나지 않은 상업영화임에도 묵직하게 때리는 무엇이 있었다. 인간의 욕심에 대해 섣불리 냉소할 수 있는가. 나 역시 그 욕심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사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원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물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배우의 연기가 영화적 도식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영화였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영화의 전개와 결말이 읽힘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심지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묵직한 한 방이 있는. 문득 영화에서 이 이상의 무엇을 바랄 필요가 있나, 이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연휴를 함께 보내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