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패스로 본 영화 <스타이즈본>
시사회를 보고 돌아오자마자 여운이 사라지기 전 글을 쓴다.
어떻게 하면 이 여운을 더 잘 적어내려갈 수 있을까. 평상시라면 무엇을 써야할지 생각을 하고 적어내려갈 테지만 오늘은 무작정 창을 열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엔딩이자 클라이막스였던 레이디가가의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은 정적에 휩싸였고 눈물을 훔치는 손들을 어둠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정적이 채 사라지지 않은 상영관을 서둘러 빠져나오며 이런 식으로 복잡한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린 적이 꽤나 오랜만임을 느꼈다. 슬픔이 주는 무거운 카타르시스를 곱씹으며 10시가 넘어 군데군데 자리가 비어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다시 찾아보다가 벌써 세번째 리메이크를 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원작은 그 유명한 바버라 스트라이샌드가 나왔던 1976년의 영화였다. 락스타의 화려함과 마약과 술에 찌든 중독적인 나날들 그리고 스타에 대한 갈망이 너무나 잘어울리는 시대이자 비극적인 엔딩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1970년대라는 것을 알고 나자 영화가 더 명확하게 그려졌다. 덧붙여 레이디가가의 캐스팅이 바버라 스트라이샌드의 독특한 외모와도 어우러지는 절묘한 캐스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음악영화답게 영화를 보내는 내내 음악이 영상을 끌고 영상의 감흥을 증폭시키며 결국은 음악이 영상을 압도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마치 공연장에서 숨죽이며 공연을 지켜보듯이 그와 그녀의 숨소리와 대화, 마이크 앞에서 숨을 들이키고 건반을 힘차게 두드리며 질주하는 목소리에 끌려가게 만든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이름이자 공연장에서 연호되는 이름을 가진 락스타.
마이크에 대고 힘차게 노래부르는 순간 그 자체로 별처럼 빛나는 그는 그러나 마이크를 떠나면 술병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알콜중독이자 집으로 들어가기를 꺼리고 떠도는 외톨이. 술병의 술이 다 떨어져 우연히 찾은 드랙퀸들의 술집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외모때문에 평가절하되고 드랙퀸들 속에서 노래하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노래와 매력에 반해 같이 한 잔을 하러 갔다가 결국은 유명세로 인한 해프닝으로 편의점 앞에서 주저앉아 그녀의 손을 냉동콩봉지로 찜질을 해준다.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레스토랑의 직원으로 생활을 책임지느라 피곤에 찌든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녀의 민낯과 자신의 명성과 생활에 무덤덤하다 못해 지쳐버린 그의 허탈한 표정. 그들의 첫 만남은 지극히 현실적인 순간이었음에도 그들의 노래로 인해 지극히 비현실적인 충만함으로 채워진다.
그의 초라한 시작, 애리조나 촌구석에서 부모를 잃었던 어린 아이였을 때나 락스타가 된 현재나 그의 공허를 알아차린 그녀가 아무도 없는 편의점 앞 주차장에서 그녀는 노래를 부른다. 자기 자신을 그리고 그를 위로하는, 공허를 넘으리라는 다짐과도 같은 그 노래. 그 노래는 그들의 현실을 그 짧은 순간 충만하게 채워주고 결국 그들이 끝까지 하게 하는 시작이 되었다.
그 노래는 결국 그가 그녀를 전용기로 모셔와 자신의 공연에 서게 만들고 그녀는 결국 수많은 관중앞에서 자신의 곡을 부르며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의 순간 그녀가 주차장에서 불러주었던 노래는 그와 그녀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듀엣 곡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Anp6lGHKZw0&list=RDfPgs3qq9CGs&index=4
그들은 결국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 속에서 그녀는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곁에 그녀를 서게 해주었고 그녀는 나란히 그리고 결국은 앞으로 나서서 더욱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혼자 받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스포트라이트를 단독으로 받게 되는 그 순간은 그녀가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고백하는 노래였다. 그 절절한 고백으로 가득 찬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녀는 그 무엇보다도 빛나며 압도하고 결국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oo86mlxZvA&index=5&list=RDfPgs3qq9CGs
그는 그녀의 뒤에 선 채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술과 마약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결국은 그래미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그녀의 가장 절정의 커리어를 망쳐버리고 알콜과 마약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재활시설로 들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그를 기다리며 자신의 사랑을 놓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의 콘서트에 다시 그를 세워 조금이라도 그를 재기하게 하려 했지만 결국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그가 죽고 홀로 남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결국 그를 추모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다.
그를 잊어가던 이들이 그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그를 주목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를 떠올리며 노래를 부른다.
그가 재활시설에서 돌아와 그녀외에는 다른 사랑이 없으리라는 고백을 하던 그 순간,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그가 만든 그 가사와 그 멜로디로 다시 세상을 떠난 그에게 고백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Pgs3qq9CGs&index=1&list=RDfPgs3qq9CGs
나는 다시금 영화를 되짚으며 그들이 부른 노래들을 찾았고 레이디가가의 유투브계정에서 이 노래들을 찾아내 이 글을 쓰는 내내 들었다. 영화속에서 그들이 나눈 사랑의 무게는 픽션이지만 그들이 순간순간 그려낸 그 감정들을 함께 했기에 그 감정들은 더 이상 픽션이 아니었다. 내 안의 여러 감정들을 흔들어 깨우고 결국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묵직하게 남은 여운때문에 무거운 카타르시스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무엇.
사실은 그런 무거운 카타르시스를 갖고 싶지 않아 슬픈 영화를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었던 나로서는 영화로는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묵직한 슬픔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이 영화를 권해야할지 모르겠다. 나와 같은 묵직한 여운이 좋을 수도 싫을 수도 있기에.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속의 음악들은 충분히 마음을 울린다는 것. 더불어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의 역시 너무나 현실적인 얼굴들로 삶의 가장 초라한 순간과 빛나는 순간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그려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