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스른 달콤한 꿈들_엄마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
1. 풍선들.
풍선들을 엄마에게 안겨줘야겠다고 생각한 건 우연이었다.
매듭의 기획자로 꽃망우리 마을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남은 것들. 해가 지고 부스를 정리하며 남은 물건들 중 쓸만한 것들을 기증하고 나자 누구에게 주기도 버리기도 애매한 것들이었다. 새벽부터 헬륨가스를 채워넣어 띄운 풍선들은 축제분위기를 톡톡히 내주었지만 서서히 가라앉아 저녁무렵이 되자 이미 수명을 거의 다한 상태였다.
신기하게도 그럼에도 풍선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끌었다.
풍선을 보자마자 뛰어든 건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생, 중고생, 심지어 어른들까지 풍선에 욕심을 냈다.
풍선을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는 건 애교에 가까웠다. 풍선을 하나 달라고 무턱대고 요구하는 아이의 엄마, 풍선을 언제 나누어주느냐며 당연히 나눠줄 거라고 생각하는 천연덕스러운 아이들. 분명히 남을테니 자기가 가져가겠다는 중고생들. 이렇게 많은데 하나만 달라는 뻔뻔한 어른들.
처음에는 웃으며 부스 운영이 끝나면 드리겠노라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오시라고 했다. 그러다 풍선을 달라는 끊임없는 요구들에 지치고 말았다. 나중에는 부스를 운영해야 해서 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고 하고 있었다. 점점 내려앉는 풍선들에 이걸 준다고 해도 결국은 금세 버려지고 말 쓰레기를 주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는 아슬아슬 머리위에 떠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끝까지 욕심을 냈다. 나는 이제는 궁금할 지경이었다. 아마 들고 가면 얼마 안 가 쪼그라들텐데 아니 그러기도 전에 들고 다니는 게 너무나 번거로워 귀찮아질 텐데. 어째서 사람들은 이렇게 풍선에 욕심을 내는 걸까. 왜 그리 갖고 싶은 걸까.
해가 떨어지고 몸이 떨릴 정도로 추운 가을밤 공원에서 부스를 정리하면서 남은 풍선들을 모았다. 하늘높이 날아오를 듯 가벼이 떠오르던 풍선들은 이제 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중력의 힘을 거스를 수 없다는 듯이. 난 풍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며 풍선들의 한데 묶어 들었다. 부스를 다 정리하고 무거운 발을 끌며 공원을 나섰다. 그대로 터트려 쓰레기봉투에 넣을 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아직은 바람이 빠지지 않아 쪼그라들지 않은, 그것들을 버릴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엄마에게 그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모두가 욕심내며 갖고 싶어하자 더더욱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싶어졌다.
축제를 준비한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고 일어날 때까지도 풍선들은 내 가방 곁에 떠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머리맡을 아슬아슬하게 맴도는 풍선들을 그러쥐고 택시를 탔다. 아직은 달콤하게 떠 있는 알록달록한 캔디같은 풍선들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택시에서도, 길가에서도, 모두가 풍선들을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 떠 있는 잠깐의 꿈들을 보듯.
2. 엄마는 웃었다.
풍선들 속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풍선 묶음을 들고가 엄마에게 선사했다. 엄마는 웃었다. 풍선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알고 있었다. 금세 다시 물어보리라는 걸.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리라는 걸. 금세 이 순간을 잊으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겨주고 싶었다. 잠시라 해도. 잊혀진다 해도. 순간순간은 우리에게 남는다. 그것을 어떠한 것으로 남기느냐는 우리의 몫임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풍선들이 가라앉기 전에. 쪼그라들기 전에. 쓸모없는 고무조각이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전에. 이토록 달콤한 색색으로 중력을 거스르고 떠 있는 꿈들을. 사람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이제는 간신히 엄마의 얼굴 높이에 버티고 있는 아름다움을. 그 잠깐의 아름다움을 엄마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그 잠깐의 아름다움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그 잠깐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리고 누리게 해주었음에 고마워하며 정리해주고 싶었다. 내 하루하루도 이 잠깐의 꿈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엄마의 하루하루도 풍선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웃으며 풍선을 껴안고 풍선들 속에서 사진을 찍었다.
부서지는 가을 햇살 속에서.
3. 당신의 2018년 가을 어느 날 아침.
2018년의 어느 가을 날,
햇살이 쏟아지던 아침을,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