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는 천산산맥을 끼고 있는 도시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택시를 타고 두어시간 안에 2500m의 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택시가 달릴수록 산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경사로 속으로 들어섰다. 짙푸른 침엽수림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곳은 카작 사람들이 즐기러 오는 휴양지 같은 곳이라고 겨울엔 천연 썰매장으로 쓰인다고 했다. 2500m 표지판이 위치한 곳에서 택시에서 내려서는 다시 리프트를 타고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없이 리프트로 향했다.
첫 단계 리프트는 20분 정도였다. 두번째 단계는 15분에서 20분 정도. 마지막 세번째 단계 리프트도 역시 그 정도 걸렸는데 그냥 보기에도 허술해보이는 판자에 가까운 1인용 의자와 단 하나의 철제난간에 의지해서 오르는 것이었다. 표가 아깝기도 하고 언제 또 이곳에 와서 이걸 타볼까 싶어 세번째까지 올라탔지만 리프트 아래에는 안전망조차 없어 떨어지기라도 하면 가파른 경사 아래로 영영 굴러떨어져 버리고 말 것 같아 벌벌 떨며 철제난간을 붙드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 흐린 날씨가 두 단계를 오르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조금 더 지나자 앞뒤 분간이 안될 정도로 짙은 안개속에 갇혀버렸다. 안개 속으로 리프트가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있었다. 기형도가 쓴 안개라는 시가 떠올랐다. 모든 것을 집어삼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공간 속에 혼자 앉아 있는 느낌은 기묘했다.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기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옷이 젖어들고 눈은 그칠 생각은 하지 않는데 왕복 두시간이 넘도록 안개 속에 갇혀 추위에 떨고 있자니 차라리 리프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거대한 자연에 또 한번 압도당하고 나도 모르게 사람의 온기를 찾고 있었다. 리프트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택시로 뛰어들어 옷을 갈아입고 뜨거운 차를 마시고 날듯이 달려 산맥을 내려오면서 그제야 아쉬워 고개를 돌렸다.
안개에 휩싸인 천산산맥. 그 풍경 속에 내가 있었던가. 꼭 꿈속이었던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