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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본 박물관] 르네상스와 "뮤지엄" 용어의 등장

공공재로서의 뮤지엄museum

by 문성 moon song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12304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12304

1. 뮤지엄의 어원이 된 뮤제이온(기원전284년) 이후 뮤지엄, 박물관의 개념을 확장한 결정적인 순간들을 맞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지나야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의 자리를 기독교가 대신하면서 인간적인 성취들은 종교적인 것들에 우선수위를 내주어야했기에. 예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술적 성취에 관계없이. 그 가치의 우선수위에서 종교적인 유물들, 교회를 장식하거나 종교성을 드러내는 예술작품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의 권위에 일조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주로 성서나 성물 등 종교적 유물이나 종교적 작품들을 수집하거나 권력층은 희귀하거나 호사스러운 작품들을 수집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르네상스와 함께 뮤지엄museum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다.

2. 르네상스와 뮤지엄museum이라는 용어의 등장
뮤지엄museum이라는 용어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로렌조 디 피에로 메디치가 자신의 수집품들을 정리해 서술한 저작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메디치가의 일원으로 피렌체의 군주이자 상인, 시인이기도 했다. 본인이 어려서부터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공부한 인문주의자이자 학자와 작가, 예술가들의 후원자였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서적뿐 아니라 그림, 조각, 주화, 도자기, 로마, 비잔틴, 페르시아, 베네치아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고 그것들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뮤지엄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었다. 더불어 학자와 작가들, 예술가들을 후원해 연구를 독려하고 직접 학교를 만들고 대학을 후원하기도 했다. 나아가 학자와 에술가들에게 일거리를 찾아주면서 그들이 작품을 통해서 르네상스를 일으키도록 한 주역이었다.
로렌조가 가문의 화가이자 친구로 삼았던 보티첼리를 비롯해서 소년시절부터 그 재능을 알아보고 양자로 삼아 후원했던 미켈란젤로, 역시 재능을 알아보고 스포르자가문에 추천해 후원을 받게 해주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우리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이들을 외에도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을 지원했다. 그는 지금도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과 개성을 작품으로 성취할 수 있도록 해준 진정한 후원자로 인정받고 있다.

로렌조 메디치의 예술가 후원이 더 궁금하시다면,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12304


이쯤 되면 로렌조 메디치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 (이 흉상 역시 그가 후원했던 베로키오의 작품이기도 하다.)

783px-Verrocchio_Lorenzo_de_Medici.jpg?type=w773

By Andrea del Verrocchio - National Gallery of Art.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54357


로렌조 메디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싶다면,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A1%9C%EB%A0%8C%EC%B4%88_%EB%8D%B0_%EB%A9%94%EB%94%94%EC%B9%98&oldid=16031480
로렌조 메디치에 대해 좀 더 풍부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Lorenzo_de%27_Medici&oldid=714841832
한국어로 된 로렌조 메디치와 그가 살던 당시 피렌체와 르네상스를 전반적으로 읽어보고 싶다면,

(르네상스 문화 예술에 대한 메디치가문의 역할에 관한 article)
http://mahan.wonkwang.ac.kr/nonmun/2006non/16.htm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한 것은 그의 인문주의적 관심과 그것에 바탕을 둔 수집과 연구, 작품들의 소장과 그것을 보며 토론하고 자극받으며 새로운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학자와 예술가들에게 그의 소장품을 전시한 것이었다. 결국 수집, 보존, 전시, 연구까지 일련의 활동들은 그 자체로 박물관의 활동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로렌조 메디치가 뮤지엄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 로렌조 메디치가 뮤지엄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이전과 비교하면 의미심장하다.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중심이 옮겨온 시대에야 비로소 인간의 성취에로 관심이 옮겨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은 고대그리스와 로마가 최고의 기준이 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아직 예술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 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위한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로렌조 메디치가 성당에 들어갈 그림을 후원하며 적은 글에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집과 가문을 고귀하게 하고, 성당과 예배소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비용으로 후원한다'고 적은 걸 보면, 우리는 여전히 아직은 예술은 권력의 상징이자 선전의 수단을 넘어서지 못했음을 확인한다. 작품이 다른 무엇과 독립되어 그 자체만의 가치를 획득하는 건 아직은 먼 일이었다.
이후로도 그와 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물을 정점으로 희귀품이나 예술작품 등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것이 귀족과 군주, 권력자나 부호들에게 유행했고 이는 각 나라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 캐비닛cabinet, 분더캄머wunderkanners, 갤러리gallery 등- 지속되게 된다.

그렇다면, 박물관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쓰이게 된 때는 언제였을까? 다음에서는 박물관이 공공의 용어로 쓰이게 된 시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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