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보

1장. 그날

by 문성 Moon song Kim

3.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담담함을 넘어 무표정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힌 게 전부였다. 직감하고 있었다. 어떻게 대답하든 결과는 같으리라는 것을. 나는 멀쩡했다. 정신을 잃지도 않았고 미치지도 않았다. 다만 가슴속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려앉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러면 곤란하다는 듯 그가 고개를 돌렸다.


눈물을 멈추려고 이를 악물었는데도 눈물이 들어차 시야가 흐릿했다. 화가 났다. 제멋대로 인 내 눈물에. 고개 돌린 그에게. 어찌할 바를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그는 정말 나랑 헤어지길 원하는 걸까. 내가 싫어진 걸까. 그냥 싫어질 수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어쩜 이리 차가울까. 왜 입이 떨어지질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얽혀 들고 있었다.


갑자기 건너편에서 웃음이 터졌다. 끝자리 커플이 깔깔대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맞은편 소파를 비워두고 소파 하나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남녀의 뒷모습이 퍽이나 다정해 보였다.


드라마라도 찍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가장 행복한 장면을 그리고 우리는 가장 불행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는 차고 나는 차이는 것이었다. 정말로 차이는 거라면 신파조로 매달리며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느니 담담히 헤어져주는 게 낫겠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구질구질하든 말든 그렇게라도 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탁탁탁. 탁탁 탁탁탁. 그가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손이 푸른빛 감도는 두꺼운 유리판 위를 일정한 박자로 오르내렸다. 탁탁탁. 탁탁 탁탁탁. 그건 무의식적인 습관이었다. 지루하거나 흥미를 잃어버리면 손이 닿은 어딘가를 두드리곤 했었다. 그는 이미 내가 어떻게 대답할 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탁탁탁. 탁탁 탁탁탁. 탁탁탁. 탁탁 탁탁탁.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가 빨라졌다.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탁탁탁. 탁탁 탁탁탁. 탁탁탁. 탁탁 탁탁탁. 네가 대답할 차례잖아. 곤란하게 만들지 마.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야. 자존심이 꿈틀 했다.


“그래.”


이 순간을 잘 넘겨야 한다고 더 이상 멍청하게 앉아있으면 안 된다고 부추기고 있었다.


“그러자. 친구로 지내자.”


그제야 다시 나를 쳐다보는 그에게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다른 동기들하고 지내는 것처럼 그렇게 돌아가는 거다.”


그가 다짐했다.


“처음 봤을 때처럼. 몰랐을 때처럼.”


다짐이 아니라 통보였다.


“넌 내가 없었더라면 더 잘 살 수 있었을 거다. 멋지게 살아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다시는 안 볼 사람 같았다.


“그렇게 말하지 마. 나 너 만난 거 후회해본 적 없어.”


두려웠다. 그는 나와 함께한 시간을 후회하는 걸까. 설마.


“후회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정말로 남남이 되고 마는 걸까. 목이 메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잖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천천히 말을 이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끊었다.


“어쨌든 앞으론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다.”


‘절대’라는 단어가 묵직하게 가슴을 때렸다. 그는 그런 단어를 쓰지 않았었다. 절대, 완전히, 반드시, 내가 그런 단정적인 단어를 쓸 때마다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단정할 수 있냐고 반문하곤 했었다. 이제는 그가 단정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의 무게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지 같은 건 없었다.


가슴속에 내려앉아 있던 그 무언가에 금이 가고 있었다. 갈라지고 갈라져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잘디잔 조각들이 끝을 알 수 없는 밑바닥으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아주 작은 티끌 하나까지 남김없이 그러모아 맞춘다 해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는 전과 같이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어이 눈에 눈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전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가 알아차릴까 봐 눈을 비비며 깜박거렸다. 눈에 티끌이 박히기라도 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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