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

1장. 그날

by 문성 Moon song Kim

4. 그가 손을 내밀었다. 깜박이던 눈이 저도 모르게 멈췄다. 자리가 끝났음을 알리는 제스처였다. 내게는 악수를 하고 끝내거나 악수를 하지 않고 끝내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에는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내 손을 감싸는 커다란 손이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보드랍고 따뜻했다. 이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 감촉도 사라지고 말 것이었다. 놓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끝나야 하는 걸까. 도대체 왜.


“왜 헤어지자는 거니.”


그가 한숨을 쉬며 손을 놓았다.


“헤어지고 싶으니까 헤어지는 거 아닌가?”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냐는 말투였다.


“내가……, 싫어졌니? 다른 사람……, 좋아하니?”


뭐라도 잡고 싶었다.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런 것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하지?”


말문이 막혔다. 그의 미간에 또다시 주름이 잡혀 있었다. 다른 이유가 있다 해도 헤어지기로 한 마당에 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이었다. 내가 버둥거리거나 말거나 우리는 이미 끝나버린 것이었다. 나는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 채 그가 그어놓은 경계밖에 있었다.


그가 테이블에 놓여 있던 잔을 들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그때까지 레모네이드가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달칵 소리를 내며 내려놓은 잔은 거의 비어있었지만 내 것은 그대로였다. 얼음이 다 녹아서 넘치기 직전이었다. 유리잔 주둥이에 가득 맺혀 있던 물방울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잔의 표면을 따라 흘러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흘러내리는 물방울 개수를 셌다. 눈물이 따라 흘러내릴 것만 같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


“더 할 얘기 없으면 그만 가자.”


고개를 들자 그가 대답을 듣지도 않고 일어섰다. 내가 가방을 들고 일어서기도 전에 계산서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서둘러 쫓아갔을 때에는 벌써 계산을 끝내고 커피숍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내가 커피숍에서 나왔을 때에는 커피숍 앞에 서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집으로 갈 건가? 그럼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줄게.”


제안하면서도 내 얼굴은 보지 않았다. 언제나 헤어질 때면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집까지 바래다주곤 했었다. 우리 집이든 그의 자취방이든 대문 앞까지 동행하는 게 우리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잊어버린 건지 무시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또 한 번 그의 경계 밖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있었다.


“아니. 괜찮아. 혼자 갈게.”

“바래다줄게.”


가차 없이 밀어내고는 이제 와서 선심을 쓰고 있었다. 내게는 그것조차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권한 뿐이었다.


“아니야. 그냥 혼자 갈게.”

“그래, 그럼.”


그가 선선히 대답했다. 홀가분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안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부러 그와 눈을 맞추고 또 한 번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냐고 화를 내고 싶었다. 나라고 못할 것 같으냐고 야멸차게 따귀라도 날리고 돌아서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질린다면, 날 싫어하게 된다면, 혹시라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된다면, 차라리 이대로 헤어지는 게 나았다.


“잘 가.”

“너도 잘 가라.”


그가 돌아섰다. 오가는 사람들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 앞으로 누군가 지나칠 때마다 숨바꼭질하듯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며 멀어졌다. 금세 사람들 속에 묻혀 뒤통수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의 뒤통수마저 사람들 속에 묻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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