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2장. 불면

by 문성 Moon song Kim

1.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모든 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앞에 있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그래서 이제 어찌 되는 건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이 거짓말 같기만 했다.


지금껏 헤어지자고 한 적이 있던가. 미친 듯이 기억을 헤집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딱 한 번 헤어지자는 말이 나온 적이 있긴 있었다. 그것도 내 입에서.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사소한 장난이 다툼이 된 끝에 나온 말이었다. 내뱉자마자 아차 했었다. 굳어버린 그의 얼굴을 보면서 해서는 안 될 말이었음을 깨달았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아무리 되짚어 봐도 그게 전부였다.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는 순간에도 헤어지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보지 않았다. 헤어질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갓 스물에 만났다. 서로가 첫사랑이었다. 헤어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사라져 버린 이 순간까지도.


거리가 어두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는 걸까.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 내일을 맞이하려는 걸까. 저들에게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또 다른 이들을 만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게 흘러가던 내 일상은 내가 선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내 앞을 지나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저절로 눈길이 아래로 향했지만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지나쳤다. 바쁘게 움직이는 다리들 밑에 짓밟힌 광고지들이 보였다.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힌 광고지 한 장이 내 발치까지 밀려왔다. 너덜너덜하다 못해 찢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나마 온전한 부분도 발자국으로 뒤덮여 새카맸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처참했다.


발을 뗐다. 일초라도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종종걸음이 달음박질이 되고 있었다. 정류장에 다다르자 버스가 막 정류장을 떠나고 있었다. 기를 쓰고 뛰어가 버스를 따라잡았다. 버스와 같이 달리며 버스 옆면을 주먹으로 쾅쾅 두들겼다. 타지 못하면 큰일 날 것처럼 매달려 버스를 세우고 숨을 헐떡이며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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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서 대문에 열쇠를 꽂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가물가물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움켜쥐던,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와 밀려드는 바람에 눈을 감던, 몇몇 순간만 어렴풋이 머리를 스칠 뿐이었다.


집안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했다. 현관에 서서 신발을 벗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던 언니가 “늦었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인사했다. 나 역시 “응”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TV 위 시계가 11시를 알리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안방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불을 켜자 방안에 있던 모든 게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옷장이 활짝 열려 있었다. 책상 위에도 이불 위에도 고르다 만 옷들이 널려 있고 화장대 위에도 화장품들이 뚜껑도 제대로 닫히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를 만날 채비를 하고 나가기 직전 난장판 그대로였다. 다시 불을 껐다. 어둠 속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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