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았다.

2장. 불면

by 문성 Moon song Kim

2.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 같았다. 누워 있으면 가라앉는 것 같고 앉아 있으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고 앉아 있다가 다시 눕기를 되풀이하다가 나중에는 엉거주춤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날이 새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창밖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푸른빛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방안이 창밖보다 더 어두웠다. 나 하나만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안을 서성대기 시작했다. 방 안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다시 거실로 어디 한 군데에 머물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왜 그러니?”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나를 잡았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엄마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안방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 새벽에 일어나서 뭘 그렇게 찾고 있어?”


곁으로 다가와 물어도 대답하지 못하고 멀거니 서 있기만 했다.


“약 찾니? 어디 아파?”


손을 뻗어 이마를 짚는 순간 울음이 터졌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올랐다.


“왜 그러니? 많이 아픈 거야? 어디가 아픈데…….”


엄마의 손길이 왜 나를 더 서럽게 만드는 건지 몰랐다.


엄마가 거실 서랍장에서 약상자를 찾는 사이 울음을 멈추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울음소리가 온 식구를 깨우고 말 것 같았다. 쉽사리 잦아들질 않았다. 자꾸만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고 숨을 멈췄다가 들이쉬었다. 약을 찾는 엄마의 뒷모습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돌아서던 그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어째서 그 앞에서는 이렇게 울음을 터뜨리지도 못했을까. 지금 여기에서 흐느끼는 내가 바보 같았다.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무는데 엄마가 돌아서며 타이레놀을 내밀었다. 순순히 받아 들고 엄마가 따라주는 물과 함께 약을 삼킨 다음 방으로 들어가 이불속에 몸을 웅크렸다. 엄마 뱃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기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가 뱉던 말들, 그가 보인 표정들, 그가 하던 행동들, 그 모든 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되살아나 지금 이 순간과 뒤엉켰다. 방안에 내려앉은 정적이 그의 침묵이 되었다. 이불자락 너머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어른거리다가 나를 외면하고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이 성큼성큼 창밖으로 사라졌다. 어제 그대로 아니 어제보다도 강렬하게 되살아나 나를 미치게 했다. 떠올리지 않으려는 노력 같은 건 소용없는 짓이었다.


멈추고 싶었다. 되돌리고 싶었다. 급기야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짚어가며 나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했어. 그러자고 자존심을 세우지 말아야 했어. 왜 그러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말아야 했어. 바래다준다는 걸 거절하지 말아야 했어…….


솔직하게 굴었다면,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면, 자존심 따위는 접고 그를 붙잡았다면, 달라졌을지도 몰라, 이렇게 끝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자책은 가정이 되고 가정은 기대로 비약했다.


그를 찾아간다면, 내가 노력하겠다고 한다면, 다시 시작해보자고 한다면, 받아들여 줄지도 몰라,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날지도 몰라,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 다시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가 나를 향해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보고 싶었다. 웅크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움직이는문성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