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확인
2.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뭐든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바뀔 즈음 그가 일어섰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이 어제와 꼭 같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를 쫓았다. 어제처럼 그를 보낼 수는 없었다. 달음질치다시피 그를 쫓는데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내정을 가로질러 계단을 내려갔다. 문화관을 지나 도서관으로 이르는 길목에서야 간신히 따라잡아 손을 뻗는 순간 그의 어깨너머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지혁 오빠가 길모퉁이에 서 있었다. 손을 들어 인사하려다 멈칫하고 있었다.
싸늘한 그의 얼굴도 울먹이는 내 얼굴도 보았음에 틀림없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 고개를 돌려 눈길을 피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고 그를 잡고 있었다. 잡아야 했다. 근원 모를 수치심보다는 그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우선이었다.
“내 말 좀 들어줘.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목소리가 아직도 떨렸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서너 걸음 더 가서 멈춰 섰다. 그의 팔에 닿았던 손이 허공에 있었다.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손을 거뒀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만큼 더 멀리 물러나버릴 것 같았다. 우리 곁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갔다. 그 길에 멈춰 선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으로 몸을 틀더니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발을 옮겼다. 나무들 뒤로 솟은 작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서너 걸음 뒤에서 그를 따랐다.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그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서서 반대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곳이 궁금해서 올라왔다는 듯이 언덕 반대편을 내려다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도 자연대에서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따라 사람들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도 우리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채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길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아무렇지도 않은 저 사람들의 세계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한숨을 쉰 걸까. 그가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마, 많이 생각해봤어, 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내 귀에도 제대로 들리질 않았다. 그에게 들렸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무표정하게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이 다시 찌푸려졌다. 손이 떨리는 게 보일까 치마를 그러쥐었다.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야기해야 했다. 메이는 목을 쥐어짜서라도 마음을 전해야 했다.
“나, 지금도 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