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그 얼굴

3장. 확인

by 문성 Moon song Kim

1.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그를 마주하는 순간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다. 찌푸린 미간과 싸늘한 눈빛. 굳게 다문 입술. 나를 보는 그의 표정이 웅변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꺼내지 말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그를 찾아온 날 탓하고 있었다.


“잠깐……,”


첫마디부터 목이 메었다. 침착하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얘기 좀 해.”


그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을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소리 없이 흔들렸다. 그의 어깨너머 텅 빈 복도까지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오후 햇살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침묵 속에 멈춰 있었다. 목이 조여들고 있었다.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끼익 어디선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가 정지된 시간에서 깨어난 듯 발을 뗐다. 나를 스치고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인문대 건물에서 나와 건물 오른쪽 끄트머리 내정 구석에 있는 벤치로 갔다.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곁에는 앉지 못하고 두어 걸음 거리를 두고 벤치에 앉았다.



이곳을 발견 한 건 내가 먼저였다. 인문대 건물 출입구가 중앙에 있기 때문에 건물 양 끝에 있는 벤치는 언제나 한산했다. 게다가 오른쪽은 음지라 대개가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치는 자리였다. 대학에서의 첫 학기.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돌았던 그때. 틈만 나면 여기에 앉아 시간을 보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가 옆에 앉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찾으러 들르곤 했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


심호흡까지 하고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여전히 떨렸다. 그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앞만 보고 있어도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리라는 걸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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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하나둘 건물에서 나왔다. 오후의 마지막 강의가 끝난 듯했다. 제법 많아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내정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무리 지어 제각기 떠드는 소리들이 웅성거리는 하나의 소리로 들렸다. 소음이 우리 입을 틀어막기라도 한 듯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형! 누나!”


익숙한 목소리가 소음을 뚫고 귓가에 꽂혔다.


“인우형! 연희 누나!”


정수가 건물 현관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반응하기도 전에 뛰어와 숨을 몰아쉬었다. 활짝 웃는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슬며시 눈을 돌렸다. 생기발랄한 정수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불편했다. 곁눈질로 훔쳐본 그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방학 잘 보냈어요?”

“어……, 그래, 너도 잘 지냈지?”


얼떨결에 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그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쩐지 그와 이 녀석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는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금방 탄로 나고 말 것이 뻔한.


“간만에 데이트하고 있던 거예요? 괜찮으면 나도 끼워줘요, 같이 저녁 먹으러 가요.”

“아, 그게, 할 얘기가 좀 있어서…….”


벌써 탄로 나고야 말았다.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리고 있는데 그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사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어색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는 것뿐이었다.


“괜히 방해했나 보다. 그럼 다음에 같이 먹어요. 저 먼저 갈게요.”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챈 정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는 듯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래, 나중에 보자.”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가 내 것 같지 않았다. 메마른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처럼 버석거렸다. 정수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서글서글한 녀석이었다. 고작 두 살 차이에도 깍듯하게 존댓말을 써가며 따르는 저 녀석을 나도 그도 귀여워했었다. 동생처럼 챙겨가며 셋이 함께 어울리곤 했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정수가 가고 나서도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기만 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우리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의 대답을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다시 말을 이어야 할까 그것조차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답해주기를 바라면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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