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아닌 의지

4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by 문성 Moon song Kim

3. 시도 때도 없이 방문이 열렸다. 누군가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여다보고 누군가 방안에 들어와 머리맡을 오갔다. 나중에는 일부러 인기척을 내는 듯했다. 매번 자는 척하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방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돌아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침내 다가와 어깨를 흔든 건 엄마였다.


“아파도 학교엔 가야 하지 않니.”


엄마가 한숨을 쉬며 방을 나설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아빠가 들이닥쳤다.


“도대체 학교는 어쩌고 그러고 있냐.”


못마땅한 목소리로 추궁해도 돌아보지 않았다.


“안 들리는 거야?”


목소리가 높아졌다.


“휴학했어요.”


어쩔 수 없이 한마디를 뱉자 곧바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어디서, 어디서 제멋대로, 제때 졸업할 생각은 안 하고, 학교 다니면서 취업준비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어차피 결석 일수가 많아서 휴학하는 게 나았어요.”


내 대답은 내가 듣기에도 밉살스러웠다.


급기야 손바닥이 날아왔지만 그대로 웅크린 채 손이 날아오면 날아오는 대로 맞고 또 맞았다. 화를 이기지 못한 손찌검은 엄마와 언니가 뜯어말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것으로 일단락이었다. 누구도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역시 방을 나서지 않았다. 볼일을 보는 것도 허기를 달래는 것도 집이 빈틈을 타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정적 속에 며칠이 지났다. 방안은 모든 게 멈춰 있었다. 창밖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만이 시간이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또다시 소리 없이 날이 저물고 방바닥에 늘어지는 그림자를 지켜보며 복도에 늘어지던 그림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를 찾아간 순간을 되짚고 있었다. 끼익 그날처럼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다짜고짜 팔을 잡아당기며 오랜만에 둘이서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고 성화를 부렸다. 뿌리치려고 하자 팔짱을 끼는 걸로도 모자라 손목까지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날 끌어내야겠다고 작정한 눈치였다. 결국 실랑이를 포기하고 언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언니는 그와 헤어졌다는 걸 짐작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우연히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그와 마주친 것이었다. 모른 척 지나치고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누구냐고 꼬치꼬치 물어봤다. 아무리 캐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나에게 질려 손을 들고는 침묵으로 보아 그가 남자 친구임이 확실하다고 놀려댔다. 이따금 남자 친구는 잘 있냐고 넌지시 근황을 묻곤 했다.


매번 웃음으로만 답했다. 그의 존재를 아는 언니에게는 물론이고 그의 존재를 모르는 엄마 아빠에게도 당연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잘 알고 있는 과 사람들에게도 그와의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그와의 일을 자세히 털어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둘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아끼고 아껴두었다가 남몰래 곱씹어보며 은밀한 즐거움을 맛보곤 했다. 그렇게 둘만의 일들이 내 안에 쌓여갈수록 입을 여는 게 두려워졌다. 입을 열면 더 이상 둘만의 것이 아닌 게 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말 것 같았다. 허공 속에 사라져 없었던 일이 돼버릴 것 같았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입을 다물어서라도 내 안에 붙잡아두고 싶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휴학을 안 하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 마음이 복잡할 땐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게 좋은데.”


언니가 말을 꺼냈다.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하고도 얼마가 지나고 난 후였다. 젓가락질하다 말고 언니를 쳐다봤다. 언니는 반찬으로 향한 눈길을 돌리지도 젓가락질을 멈추지도 않았다. 애초부터 반찬 이야길 하고 있던 것처럼 “여기 반찬 참 맛있네, 그치”하고 덧붙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고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고? 내가 반문하고 있었다. 괜히 언니가 집은 시금치 무침을 따라 집어 입에 넣었다. 씹어도 맛이 느껴지질 않았다. 원래 시금치 무침 맛이 어땠는지도 기억나질 않았다. 씹고 있던 턱이 뻣뻣하게 당겨와 그냥 삼켜버렸다. 목이 콱 막혔다. 시금치가 넘어가다 말고 목구멍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이야말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 순간이었다.


“하긴 생각이 있으니까 휴학을 했겠지, 너도 성인인데 알아서 잘하겠지.”


언니가 내 대신 대답이라도 하듯 혼잣말했다. 그것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우리가 나눈 대화 아닌 대화의 전말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언니는 내가 먼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만 나도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각자 길을 가는 사람들처럼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머릿속으론 반문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잡히질 않았나. 정말로 아무것도 잡히질 않았던가. 그와 헤어지고 돌아온 직후 며칠간은 그랬다. 자세를 바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는 아니었다. 결국은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갔다. 휴학을 하고 가족을 모른 척하면서까지 방안을 지키고 있었다. 모든 걸 내팽개치고 방구석에 처박힌 것은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이었다. 순전히 내 의지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를 생각하는 것밖에는 무엇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그가 돌아올 리 없었다. 우리가 헤어졌다는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계속해서 이렇게 지낸다면 앞날에 마이너스면 마이너 스지 플러스가 되지는 않으리란 것 또한 뻔한 일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를 생각하는 것밖에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밖으로 끌어내려는 언니의 노력은 거꾸로 나를 더욱더 안으로 밀어 넣은 셈이었다. 언니와 저녁을 먹은 다음날부터는 아예 가족을 모두 피하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아빠와 언니가 출근하고 엄마가 집안일을 하느라 분주한 사이 집을 나섰다. 저녁에는 다들 피곤에 지쳐 잠자리에 들 즈음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렇게 하면 하루 종일 얼굴을 볼 새가 거의 없었다. 혹여 마주치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으러 다녔다거나 영어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다녀왔다고 둘러댔다. 아빠는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가시지 않았지만 엄마와 언니는 그나마 안심하는 눈치들이었다.


사실인즉슨 길거리를 쏘다니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막상 대문을 나서면 갈 데가 마땅치 않았다. 학교를 제외하고 떠오르는 곳이라고는 동네에 있는 구립도서관 정도가 전부였지만 대기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열람실에 앉아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영어공부나 아르바이트 따윈 안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무작정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 것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다리가 아프면 길가에 보이는 벤치나 버스정류장에 잠시 앉았다가 일어섰다. 배가 고프면 또 길가에 보이는 편의점이나 분식점에서 대강 끼니를 때웠다. 해가 기울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지나온 길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섰다. 걸어온 만큼 걸어서 돌아가면 얼추 모두가 잘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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