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사람들 속에서
1. 바람이 지하철역에 유독 매섭게 몰아쳤다. 계단을 내려갈 때에는 아래에서 달려들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게 하더니 승강장까지 내려가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위에서 달려들어 목을 움츠리게 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불어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끊임없이 불어 닥치는 바람 탓에 지하철 역사 안이 바깥보다 추웠다.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 잔뜩 웅크리고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더욱 춥게 느껴지는 건지도 몰랐다. 사람들 뒤에 서너 걸음 거리를 두고 서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몇 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지하철이 오지 않았다. 시리던 손끝이 무감각했다. 주먹을 쥐었다 펴자 손가락이 아려왔다. 손을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승강장을 서성거렸다.
내딛던 발이 움찔했다. 벨이 울리고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재빠르게 줄을 서는 사람들 끝에 엉거주춤 섰다. 지하철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차체를 멈추자 곧이어 문이 열리고 타고 있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머뭇거릴 틈도 없었다. 뒤늦게 올라타는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지하철 안에 섰다. 내 뒤에 들어온 사람들도 입구에서 비틀거리는 나를 지나쳐 각자 자리를 잡았다. 날렵하고도 능숙한 동작들이 반자동이었다. 의자는 물론이고 기대어 설 수 있는 의자 옆자리도 칸과 칸을 연결하는 문 옆자리도 순식간에 채워져 있었다.
얼떨떨했다. 출입구에 서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자리를 옮기려고 발을 떼다가 다시 멈춰 섰다. 다들 빈자리를 잘도 찾아내는데 내 눈에는 빈자리가 보이질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와 손잡이를 잡고 선 이들 사이사이 서기에는 비좁은 공간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그래도 계속 출입구를 막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쭈뼛쭈뼛 손잡이를 잡고 있는 사람들 뒤에 섰다.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고 사람들 어깨너머 빈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왼쪽에 서 있던 아저씨가 돌아보더니 찌푸린 눈으로 내 얼굴과 자기 어깨 위로 손잡이를 잡은 내 손을 번갈아 훑었다. 시선을 피하려고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자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던 교복 입은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도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손잡이를 잡고 있던 왼손을 오른손으로 바꿨다. 무안함에 손잡이와 손잡이 사이로 고개를 숙이자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괜히 점퍼 주머니를 더듬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폴더를 열고 화면에 두 눈을 고정시켰다.
6시 47분. 대기화면의 시계가 깜박였다. 7시 반까지는 40여분. 이제 막 지하철이 출발했으니 지각이었다.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건 둘째치고 지하철역에 도착하는 것도 빠듯할 것 같았다. 약속한 시간이 7시 반이 맞던가. 기억을 더듬어 새벽의 통화를 되짚고 있었다. 미정이가 알바를 끝내고 돌아오면 7시니 7시 반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니, 다시 7시에 보자고 했나. 문자메시지 버튼을 눌러 가장 최근의 메시지를 열었다. “그럼 이따 보자.” 미정이가 보낸 메시지 내용은 그것뿐이었다. 이전 것들을 확인해 봐도 약속시간이 적힌 메시지는 없었다.
관성적으로 이전 버튼을 누르던 엄지손가락이 멈췄다. “정문 앞 횡단보도.” 9월 2일 4시 18분에 온 메시지였다. 개강하던 날 오후였다. 그가 보낸 것이었다. 어디에서 볼까 물었더니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보자고 대답한 것이었다. 이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이미 헤어지자는 말을 하려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 이후 받은 메시지들을 시간 순으로 다시 읽어봤다. 미정이가 보낸 것을 시작으로 나를 걱정하는 메시지들을.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가 헤어졌음을. 내가 이야기하기도 전에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었다. 그는 무어라 이야기했을까. 사람들하고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짐작이 가지 않았다. 괜한 짓이었나. 미정이에게 전화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 때늦은 고민이 밀려들었다.
누군가 어깨를 밀치고 지나갔다. 연이어 다른 이들도 나를 밀치고 지나가는 통에 나도 따라 두어 걸음 떠밀렸다. 사람들이 문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환승 역임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다. 미정이를 만나러 가려면 여기서 내려서 갈아타야 했다. 지하철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승강장이 보이고 있었다. 미정이를 만나러 가지 않는다면 따로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문으로 바싹 다가섰다. 집에 돌아가면 어둠 속에서 오지 않는 잠을 기다려야 했다. 또다시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몰랐다. 아까하고 똑같이 지하철이 멈추자마자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를 떠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