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침묵

6장. 사람들 속에서

by 문성 Moon song Kim

2.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해서 마을버스에서 내리면서도 고민을 멈추지는 못했다. 정류장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흩어지는 사람들 옆으로 버스에 올라타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정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옆으로 이제 막 수업을 마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땅에 발을 딛자마자 황급히 돌아서서 횡단보도 앞에 섰다. 그를 보게 될까 두려웠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미정이가 보였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옆에 비켜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켜보는 내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미정이가 나를 알아보기 전에 돌아서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파란불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고 미정이가 고개를 들고 말았다.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웃어 보이려 했지만 입술이 어색하게 달싹거렸다. 손을 흔들어 보려고 해도 팔이 어정쩡하게 올라가다 말았다. 걷고 있는 두 다리마저 뻣뻣하게 움직였다. 두어 걸음 거리를 두고 미정이 옆에 섰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다. 어깨를 두드리며 반가워하는 미정이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미정이가 앞장서면 앞장서는 대로 잡아끌면 잡아끄는 대로 묵묵히 따라 걸었다.


미정이는 거침없이 사람들을 헤치며 먹자골목을 지나다가 골목길 중간에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에도 그에 못지않게 왁자지껄한 사람들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빈자리를 찾더니 냉큼 가장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곧이어 종업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을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소주와 어묵탕 세트를 가리키며 나를 쳐다봤다.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씩 웃으며 벨을 누르고 종업원에게 주문을 읊는 미정이의 모습이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미정이가 편안해 보이는 만큼 불편했다. 미정이도 이 자리도 모든 게 불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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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이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소주 한 병과 술잔 두 개를 가져다주었다. 미정이는 소주병이 테이블에 놓이자마자 잡아들고 뚜껑을 열었다. 잔이 넘치기 직전까지 따르고는 얼른 자기 잔을 들어 내 잔에 부딪혔다. 마주 보며 말을 잇느니 술을 마시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마시라고 눈짓하며 잔을 끝까지 비우는 미정이를 따라 나도 천천히 잔을 비웠다.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입안에 쓰디쓴 맛만 남아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다시 미정이가 채우는 술을 잠자코 받았다. 두 번째 넘기자 쓴맛이 덜해지고 세 번째 넘기고 나자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 병을 다 비우고 나서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안주가 나오고 또 한 병을 비울 때까지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시고 있었다.


“들었어. 인우한테.”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미정이었다.


“개강하는 날인가, 나랑 통화한 거 기억나? 그날 네가 인우 만나러 간다고 나중에 보자고 했잖아. 그 뒤로 보이지도 않고 연락도 없고. 연락해도 안 받고.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인우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르겠다고……, 너랑 헤어졌다고 그러더라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가 헤어지자 말하던 그 순간처럼. 헤어졌다고 무심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미정이를 통해서 또 한 번 확인하고 있었다. 내가 인정하건 말건 우리가 헤어졌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이 와중에도 그가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듣고 싶어 하는 나에게.


“그래.”


들고 있던 잔을 마저 비우고 내려놓았다. 미정이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빈 잔만 쳐다보고 있었다.


“헤어졌어.”


미정이가 다시 술잔을 채워주었다. 소주병을 거꾸로 세워 가며 남아 있던 술을 모두 따라주었지만 잔이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 잔에 담긴 술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잔속에 보이는 테이블의 나뭇결무늬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미세하게 휘어지는 굴곡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개강할 때까지만 해도 별 얘기 없었잖아.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아니. 없었어.”


그의 찌푸린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있었나. 아니, 나도 모르겠어.”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한테도 인우한테도……,”


미정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술잔 속 나뭇결무늬가 자꾸만 흐려졌다. 뿌옇게 뭉개졌다가 일그러지고 또 뿌옇게 뭉개지고 있었다.


“왜 그렇게 고개를 처박고 있어. 얼굴 좀 보자. 오랜만에 언니 얼굴 보는 게 그렇게 싫냐?”


미정이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들어 올렸다.


“연희야, 무슨 애가 소리도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니.”


미정이는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에 놀라는 걸 넘어서 당황하고 있었다.


“니가 그렇게 우는 거 처음 봐. 울지 마. 울지 마, 응?”


손을 뻗어 내 눈물을 닦다 말고 옆자리로 다가와 앉아 나를 껴안았다. 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미정이 어깨너머 건너편 술자리 사람들 모두가 잔을 들고 원샷을 외치고 있었다. 한 명씩 잔을 비울 때마다 기세 넘치는 추임새와 응원이 터져 나왔다. 다른 자리 사람들도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경쟁하듯 떠들어대는 목소리들이 뒤섞이고 들뜬 웃음소리들이 흩어졌다. 그 위로 음악소리가 그 모든 소리들을 덮어버릴 듯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꺼번에 밀려드는 소리들에 귀가 먹먹했다. 그대로 안겨 있지 못하고 기어이 몸을 비틀어 미정이 품에서 빠져나왔다. 눈물은 진작에 멈춰 있었다. 술집은 흥분으로 들썩이고 있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나를 쳐다보는 미정이의 눈을 피해 술잔을 들여다봤다. 나를 걱정하는 미정이가 떨떠름했다. 위로를 바라고 찾아왔으면서 정작 위로를 받아들이진 못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이게 아니라면 무얼 바라고 있었던 건지 나도 날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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