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6장. 사람들 속에서

by 문성 Moon song Kim

3. 누군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랜만이다. 살아있었구나?”


지혁오빠가 예의 그 장난기 어린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 인마. 미정이 연락받고 왔어. 나 앉아도 되는 거지?”


대답하기도 전에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빠, 연희한테 한마디 좀 해줘. 지금껏 연락 한 번 안하고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고 있었나봐. 우리가 얼마나 걱정하는지도 모르고 왕따 놀이한 거지. 아니 혼자서 우릴 따 시키고 있었나.”

“이제 보니 숨어서 다이어트 하고 있었나본데. 못 본 새 얼굴이 완전히 야위었네, 야위었어. 비결이 뭐냐? 얘기해주라. 나도 살 좀 빼보자.”


배를 두드리며 던지는 천연덕스러운 농담에 미정이가 풋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지혁오빠를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지혁오빠와 눈이 마주치던 그 순간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울먹이며 그를 쫓아가다 다급하게 손을 뻗는 그 순간 그의 어깨 너머에서 나를 보고 있었더랬다. 그때 그 순간과 똑같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 발가벗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빠도 들었지, 나, 헤어졌다.”


선수를 쳤다. 그때 그 순간이 지혁오빠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기를 빌면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혁오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덧붙이기까지 했다.


“인우랑 말이야.”


그의 이름에 얼굴이 굳은 건 나였다. 내 입으로 뱉어놓고는 내가 놀라고 있었다. 목이 조여들었다. 목구멍 어딘가에 생채기가 난 듯 목이 아파왔다. 그의 이름이 박혀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굳은 얼굴을 들키기 전에 서둘러 지혁오빠의 얼굴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팍으로 시선을 내렸다. 지혁오빠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래. 안 그래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학기 초였나, 너희 둘이 얘기하는데 진짜 심각해 보여서 인사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었어. 걱정했는데 애들이 그렇게 됐다고…….”


바람은 수포로 돌아갔다. 애초에 그는 달아나고 나는 매달리는 적나라한 장면을 목격하고도 잊어버리길 바란다는 게 무리였다. 지혁오빠는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장면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간파하고 있었다.


“괜찮아, 인마. 나도 정현이랑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했잖아.”


지혁오빠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듯 쓰다듬었다. 거친 듯 부드러운 손길에 위로가 실려 있었다. 고마워야하는데 고맙기보단 무안했다. 또 다시 목이 조여들고 있었다.


“그래, 나도 준호오빠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거잖아.”

“너도 알지, 작년 봄에 우리 헤어졌을 때. 나도 그 때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어. 군대 간다고 휴학하고는 발목 다쳐서 입대도 못하고 복학시기도 놓치고 나니깐 앞이 캄캄하더라. 내 문제만으로도 벅차서 아무것도 감당을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는데, 막상 지내다보니 다시 생각하게 되고, 결국엔 다시 만나게 되더라. 너희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니겠냐.”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내내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어깨, 건너편 사람들의 뒤통수, 벽에 붙은 맥주광고 포스터 따위를 훑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사실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내가 잘못 짚었냐? 뭐 다른 일 있었던 거야? 얘 왜 이렇게 넋이 나가 있냐?”

“그러니까 말이야. 못 보겠어. 보는 내가 다 괴로워.”


어쩔 줄 모르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나 역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야, 인마, 연희야, 말 좀 해라. 그렇게 종알대던 녀석이 왜 이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냐. 말해, 말해서 풀어, 혼자 속 썩히면 더 힘들다.”

“그래, 얘기해, 다 들어줄 테니까 얘기해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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