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사람들 속에서
4.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이 조여들다 못해 아파왔다. 목구멍이 오그라들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지금 말을 꺼내지 못하면 영영 꺼내지 못하고 말 것 같았다.
“인우가, 헤어지자고 했어.”
숨을 들이마셨다가 토해내듯 말을 뱉었다.
“미안하다고, 예전처럼 돌아가자고 친구로 지내자고 하더라.”
내 앞에 놓인 술잔에 대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잔에 담긴 술이 희미하게 찰랑거렸다.
“처음엔 알겠다고 그러자고 했어. 근데,”
잔을 감싸 쥐었다.
“근데 미치겠더라.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래서 찾아갔어. 다시 시작해보자고.”
“그래서?”
“그랬더니?”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
“그만 하자고 하더라.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해도 그만 하재. 헤어지고 왔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미칠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찾아갔는데 자기도 견딜 수가 없대. 내가 잘하겠다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매달려도 그만 하재. 알았다고 그러마고 또다시 헤어지자고 하긴 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 이야기의 속도를 내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내 안에 쌓여 있는지도 몰랐던 말들이 두서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한심하지, 두 번을 헤어지고 나서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어쩌면, 고민하는 걸 견딜 수 없었던 게 아닐까?”
미정이가 조심스레 끼어드는 순간 멈추지 않을 듯이 나불대던 입이 멈췄다.
“오래 사귀다 보면 고민하게 될 수 있잖아. 계속 사귀어야 할까 그만두어야 할까 하고.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단 관계를 지속하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안 서서 말이야. 나도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었어. 대학생이 되자마자 죽 만나다 보니까 어린 나이에 한 관계 안에 갇히는 것 같고 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은 것 같고 그래서 자꾸만 사람이 좁아지는 것 같고. 그런데 막상 헤어지려고 하니까 그것도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고.”
그는 나랑 있으면 뇌가 멈춰버린다고 했었다.
“그때는 고민하다 보니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빨리 선택하고 싶었어. 그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일단 한 번 헤어져보자 마음먹었어. 해보지 않고 후회하느니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결국 지금은 다시 만나고 있지만. 어쨌거나 선택하고 나면 선택하기 전으론 돌아가고 싶지 않잖아. 다시 고민에 빠지는 게 싫어서. 어려운 선택일수록. 아마 인우도 그런 거 아니었을까. 그래서 네가 다시 찾아갔을 때에도 그만 하자고 한 것 아닐까.”
겪고 싶지 않은 일을 피해서 가는 것뿐이라고 했었다.
“누가 그렇게 쉽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겠어. 너희가 하루 이틀 사귄 것도 아니고. 지금은 인우도 마음이 복잡할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자연스럽게 지내다 보면, 아니, 시간이 좀 지났으니까 다시 마주치다 보면…….”
다시는 이렇게 보지 말자고 했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했었다. 무심하던 말투가 경멸에 가까운 말투로 변해갔었다. 그 말투가 그가 뱉은 말들보다 더 많은 걸 말해줬었다. 분명한 거부였었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미정이를 믿고 싶었다. 미정이의 추측에 기대를 걸고 싶었다.
“연희야, 원하는 게 뭔데? 인우랑 다시 만날 생각이 있는 거야?”
별안간 지혁 오빠가 질문을 던졌다. 숨이 콱 막혔다. 겉도는 이야기를 단박에 가르고 달려들어 감추고 있는 진심을 내보이라고 몰아세우고 있었다.
“몰라, 모르겠어, 모르겠어.”
고개를 저었다. 그를 원한다는 말을 꺼낼 순 없었다. 그를 원한다고 말해봤자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그가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진심을 내보인다고 해도 진심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만 확인하게 되는 게 두려웠다. 차고 넘치던 말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