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논쟁

6장. 사람들 속에서

by 문성 Moon song Kim

5. 지혁오빠는 별 일 아닌데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시 만날 거 아니면, 힘들어도 그냥 눈 딱 감고 다른 애들하고 지내는 것처럼 친구로 지내. 처음에도 친구로 시작한 관계였잖아. 복학하면 어쩔 수 없이 마주칠 텐데. 다른 사람들하고도 그렇잖아, 나나 미정이나 과 사람들도 다들 가깝게 지내던 사이고, 너희 둘 따로 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너희 때문에 편 가를 수도 없고 계속 너희 눈치 보면서 지낼 수도 없잖아. 다른 관계들까지 다 끊어버릴 것도 아니고 불편하게 지내면 너만 손해야. 나와서 억지로라도 다른 애들 대하듯 그렇게 대해. 그게 너한테도 훨씬 나아.”


딱 잘라 말하는 지혁오빠가 원망스러웠다. 남아 있는 줄도 몰랐던 실망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만날 생각이 있으면,”

“있으면……?”


잠자코 듣고 있던 미정이가 되물었다. 미정이도 나도 지혁오빠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미정이가 말한 것처럼 인우한테 시간을 좀 더 주고 다시 만나봐야지. 만나서 얘기해보는 수밖에 없잖아. 남자들이 그래, 자길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인우도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겠지. 네가 찾아갔을 때도 아직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만 하자고 했겠지. 그럴 땐 누가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자기 안으로만 들어가 버리게 된다니까. 실컷 혼자 지내고 실컷 혼자 생각하게 놔둬야 해. 그러다가 자기를 추스를 수 있을 때, 밖으로 나오고 싶어졌을 때, 그럴 때 만나야지. 타이밍이라는 게 있잖냐, 타이밍을 맞춰서 다시 만나서 얘기해보는 거야, 어때?”

“그 타이밍을 어떻게 알아?”


지혁오빠가 미정이에게 눈짓으로 동의를 구하고 있었지만 미정이는 동의하기는커녕 따져 물었다.


“그건 우리가 도와줄 수 있잖아. 우리는 학교에서 인우 볼 수 있으니까 인우가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하는지 귀띔해줄 수 있잖아.”

“인우도 요즘엔 수업시간 말곤 코빼기도 안 보이던데……,”

“그러니까 인마 시간이 필요하다고. 시간이 지나면 슬슬 주변이 보이겠지. 계속 혼자 있을 순 없잖아. 예전처럼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얘기도 하게 되면 연희얘기 꺼내볼 수 있잖아. 얘기해보면 알겠지. 타이밍은.”


그 타이밍이란 게 끝내 오지 않는다면, 입안에서 맴도는 물음을 삼켰다. 무조건 지혁오빠의 판단을 믿고 싶었다.


“어쩌면 연희가 연락하기 전에 인우가 먼저 연락할지도 모르지. 자기가 헤어지자고 해놓고선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라. 제일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생각을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있겠냐.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충격적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물론 고민하고 결정했겠지만. 걔도 자기가 좋아서 만나고 그러다 헤어진 건데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겠지. 아니, 고민한 만큼 여지가 남아있겠지. 헤어지기로 했다고 해도 그게 꼭 지켜야 되는 계약 같은 것도 아니고,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잖아. 정말 다시 만나고 싶다면 가능성을 믿고 노력해보면 되지 않겠냐.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헤어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 오래 만나면 오래 만날수록. 인우도 힘들 거야. 자기 마음이 어떤 건지도 모를 정도로. 힘들 땐 옆에서 기다려주고 붙들어주는 게 최고라니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했다. 그는 자기 마음이 어떤지 몰랐던 게 아니었다.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별을 통보한 것이었다. 타이밍은 이미 지나가버리고 없었다. 조금씩 되살아나던 기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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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건 아닌 것 같아.”

“야, 너희 커플도 그랬고 우리도 그랬잖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괜히 있겠냐, 다시 시작해볼 마음 있으면 해 볼 만큼 해봐야지. 그러다 마음 바뀌면 그만두면 되지 마음이 있는데 그만두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그치만……, 무작정 타이밍만 기다릴 순 없잖아. 그동안 연희는? 안 힘들 것 같아?”

“그거야……, 어쩔 수 없잖아. 힘든 건 감수해야지. 선택에 따라오는 거니까. 그렇게 해봐도 안 되면 그때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럼 그때는 이 오빠가 소개팅 시켜줄게. 진짜 멋있는 놈으로. 어때, 괜찮지?”

“오빠, 너무 쉽게 얘기하는 거 아냐? 해결책 찾자고 모인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얼굴보자고 모인 건데, 애 속상하게 왜 그래?”

“난 나름대로 도와주려고 얘기한 건데. 그래도 상황을 무겁게 보는 것보다는 가볍게 보는 게 좋잖아. 해결책도 생각을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고. 알았어, 미안, 미안하다니까. 그렇게 째려보다가 눈 돌아가겠다, 야, 난 연희가 얼른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런 거야. 너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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