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감

6장. 사람들 속에서

by 문성 Moon song Kim

6.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윤곽이 흐릿해졌다. 두 사람을 비추는 조명의 불빛이 번져서 반짝거렸다. 눈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눈에 티끌이 들어간 듯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들고 슬쩍 눈물을 훔쳤다. 또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자리를 엉망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메이는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 얘긴 그만 하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지혁 오빠도 미정이도 멈칫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그래, 이럴 때일수록 아무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잊어버려. 혼자 집에만 박혀있으면 더 우울해진다. 인마, 헤어졌다고 세상 끝나냐?”


지혁 오빠가 아까보다 더 세차게 내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미정이도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이것아, 우리가 있잖아.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 우릴 봐서라도 오늘은 신나게 놀자. 같이 한 잔 하는 것도 진짜 오랜만이잖아. 간만에 마셔보자.”

“그거 좋다, 미정이가 웬일로 마음에 드는 말 한마디 했는데. 그래, 연희야, 오랜만에 한번 달려보자. 오늘 죽을 때까지 마시는 거다!”


두 사람이 동시에 테이블 모서리에 있는 주문 버튼을 누르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마주 보며 씩 웃었다. 종업원이 다가오자 지혁오빠가 얼른 두 손으로 네모를 그려 보이고 종업원이 고개를 끄덕하고 메뉴판을 가져다주는 사이 미정이는 테이블을 정리했다. 지혁오빠가 메뉴판을 받아 들고 메뉴를 하나씩 읊을 때마다 미정이는 메뉴판에 머리를 들이밀고 품평을 한 마디씩 덧붙였다. 탁구 랠리 하듯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대화에 낄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혼자 앉아 TV 화면을 보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이 너무나 멀었다. 어떻게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애를 써 봐도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그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떠나는 게 아니라 남는 입장이었더라면 아까처럼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이들이 그에게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의 입장에 공감하며 경청했겠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맞장구쳤겠지. 이들은 내 곁이 아니라 그의 곁 어딘가에 있었다.


날 위하고는 있지만 날 이해할 순 없겠지. 내 심정을 알 리가 없겠지. 가늠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겠지. 몇 마디 위로는 결국 차인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뿐이겠지. 이들이 내가 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들에게 그와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의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그가 했던 말들을 전하느니 영영 오해하게 두는 게 나았다.


종업원이 소주 한 병과 계란찜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지혁오빠가 소주병을 마구 흔들어댄 다음 뚜껑을 열고 내 잔과 미정이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잔이 흘러넘치려고 하자 미정이가 잔에 입술을 대고 홀짝 들이마시고 그걸 지켜보던 지혁 오빠가 키득거리며 미정이 머리를 눌러 미정이 코끝이 술잔에 닿았다. 미정이가 가볍게 눈을 흘기며 콧등을 훔치고는 술병을 받아 지혁 오빠 잔에 술을 마저 채우고 잔을 들었다. 나도 잔을 들어 부딪치고 단숨에 털어 넣었다. 두 사람도 질세라 잔을 비우고는 서로 자기가 먼저 술을 따르겠다며 실랑이를 벌였다.


잔을 몇 번 부딪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금세 술이 떨어졌다. 지혁 오빠가 손을 번쩍 들어 주문하고 종업원이 이번에는 소주 두 병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잔을 부딪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테이블 위에 빈 술병이 늘어날수록 웃음소리도 요란해졌다. 우리는 누가 가장 먼저 잔을 비우는지 누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시는지 따위의 쓸데없는 순위 경쟁을 하며 시시덕거렸다. 술집에서 가장 시끄러운 무리가 돼 있었다. 셋 중에서도 가장 큰 목소리로 부산을 떨고 있는 게 바로 나였다.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낄낄대고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내 모습에 미정이도 지혁 오빠도 손가락질해가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테이블 몇 개를 지나쳐 화장실 앞에 설 때까지도 보란 듯이 우스꽝스럽게 걸었다. 잠긴 화장실 문에 기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어느 틈엔가 미정이가 다가와 있었다. 얼굴을 바싹 들이밀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좀 괜찮은 거야?”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미정이도 안심한 듯 마주 웃더니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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