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모스크바를 떠올릴 때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첫 이미지는 바로 전승기념관의 드높은 기념비이다.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해서 지었다던 기념관 앞에 위풍당당하던 그것. 아득히 멀리서 보기에도 너무나 압도적으로 솟은 기념비는 100미터가 넘는 높이라고 했다.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드넓은 광장과 잘 다듬어놓은 공원을 지나 한참을 걸어서 가까이 다가서야 했다. 탁트인 수평선 위에 드라마틱하게 솟은 수직의 기념탑과 그것을 둘러싼 반원형의 건축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건물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이야말로 사람들이 모여 기억을 하고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을,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광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전승기념관이 준 모스크바의 첫 인상은 이후로 경험한 모스크바에서도 역시 이어졌다. 한참을 걸어야 다가설 수 있는 크고 넓은 광장과 엄청난 크기의 건축물.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도 도로와 도로사이의 간격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멀리서 감상하면 시원스럽던 장대함은 이동을 하면서 시간을 잡아먹고 다리를 아프게 하는 고생스러움으로 가까이에서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규모에 내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하는 그래서 감탄을 주면서 한편으로는 주눅이 드는 위압감으로 바뀌곤 했다. 서울변두리에서 자라 담벼락이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에 조금만 걸으면 모든 것이 모여있는 동네에 살던 키작은 한국사람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로 십여년이 지났지만 언제나, 그러니까 지금도, 모스크바의 전승기념관이 떠오르면 이어서 모스크바의 장대함이 떠오르고 그 느낌을 되새김질하며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는 어디까지일까,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크기와 느낌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미덕인지도 모른다. 신선하고도 이질적인 경험은 몇번을 떠올려도 빛바라지 않는 그때 그순간만의 느낌으로 되살아난다. 새로운 자극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