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심장부, 크레믈린의 성벽 앞에 놓여있는 두개의 묘가 있었다. 방부보존된 레닌이 누워있는 레닌의 묘와 이름없이 죽어간 이들을 위한 무명용사의 묘,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두 묘지 모두 예복을 갖춰입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바실리성당과 붉은 광장을 걸어가면 짜르의 시대와 구소련의 시대를 지나온 현재의 러시아가 그곳에 있었다.
나 이외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거기 있었다. 대부분이 북유럽에서 온 관광객 무리이거나 그들에게 호객을 하는 러시아인들이었다. 그 속을 걷는 동안 나를 붙잡는 이들이 매번 야뽀니즈와 쉬나를 외치며 이곳에 오는 대부분의 동양인이 일본인이거나 중국인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다들 크레믈린과 붉은 광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레닌의 묘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또 카페 벤치에 앉아서 노점의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모스크바의 여름을 즐기기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지나쳐가는 곳에 무명용사의 묘가 있었다. 크레믈린의 입구와 레닌의 묘 사이에. 모스크바의 건축물답지 않게 크지도 높지도 않은 자리에. 그래서 더 마음을 끌었고 더 가까이에서 더 오래도록 지켜보게 만들었다.
사실은 크레믈린 앞에서만이 아니었다. 꺼지지 않는 불은 내가 지나온 구소련 도시들에서 이미 여러번 보았기에 알고 있었다. 도시의 중심에 광장이 있고 그곳에서 몇번이고 레닌의 동상이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 꺼지지 않는 불과 마주했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꺼지지 않는다는 불을 다시 붉은 광장에서 마주하며 이따금 일렁이며 타오르는 불길이 대변하는 이들을 떠올렸다. 볼셰비키혁명과 1차세계대전, 2차세계대전과 나치의 러시아침공, 연합군과 소련 그리고 냉전으로 이어지는 세계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이들, 숫자로만 전해지는 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