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믈린

by 문성 Moon song Kim

견고한 성채. 크레믈린에 들어서며 받은 느낌이었다. 붉은 광장에서도 레닌의 묘나 꺼지지 않는 불에서도 어김없이 그 뒤에 펼쳐져 한 눈에 들어오지 않던 붉은 벽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높고 두꺼운 장벽이 되었다. 매표소 앞에서 시작된 줄은 거리를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곳에 온 모두가 어쩌면 평생의 한 번이 될지도 모를 방문에 반 의무적으로 그 줄에 동참하고 있는 듯했다.

잘 닦인 돌길을 지나 뾰족한 성채를 통과해서는 내가 무언가 엄청난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리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성안이나 성밖이나 결국은 사람들이 만든,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공간. 오랜 세월을 지나 역사가 된 건물들이 있는 그 자리에 꿈과 모험의 세계라도 펼쳐질 줄 알았나, 환상이 깨져 당혹스러워 하는 나 자신을 우스워하면서 그곳을 걸었다.

지금도 국정을 운영하는 행정부건물의 삼엄한 경비를 지나 금빛 지붕을 반짝이는 성당들을 하나씩 천천히. 그리스정교회를 이어받은 적통이라 자랑스러워하는 러시아정교회의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과 정교한 장식들.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린 종.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삼엄한 경비의 건물들. 크레믈린에 들어서며 받은 느낌은 그곳에 들어가 한 바퀴를 돌고 나와서도 그대로 남았다.

분명히 그곳을 돌아봤음에도 그곳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았다.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며 내가 보았던 면면을 떠올리며 종이에 옮겨보게 된 까닭이었다. 한눈에 좀처럼 들어오지 않던 구조를 뒤늦게 가늠해보면서 크레믈린의 핵심은 성 밖이나 성 안이 아니라 성채 자체임을 알았다. 길게 뻗은 붉은 벽과 요소요소마다 솟은 날카로운 청록 탑. 가로와 세로의 변주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비는 크레믈린을 더욱 아름다우면서도 견고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성채, 성안과 성밖의 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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