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7장. 장면과 장면 사이

by 문성 Moon song Kim

3. 코끝이 찡하게 추웠지만 맑고 깨끗한 날씨였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또렷했다. 윤곽이 베일 듯 날이 서 있었다. 제일 원룸텔, 그린 원룸형 고시텔, 그린 미니 편의점, 행운 분식집, 지나치는 간판의 글자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길모퉁이 영어학원 건물 게시판에 붙은 각종 학원 광고 포스터들까지도 여 보라는 듯 강렬한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학원을 끼고돌아 버스 정류장에 섰다. 코앞에 붙은 포스터가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취업을 위한 필수 스펙!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선택!” 굳이 읽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읽히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정류장 유리벽 전체가 똑같은 광고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었다.


버스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유리벽을 등지고 서서 버스가 오는 방향만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지겨워져 여기저기 한눈을 팔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올려보다가 건너편에 있는 토스트 가게 유리창으로 시선을 내렸다. 유리창이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구름 한 조각이 유리창 안으로 유유히 흘러들어 왔다가 다시 유리창 밖으로 사라질 무렵 가게에 하나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내 사람들에게 가려져 구름도 하늘도 유리창도 보이지 않았다.


새카만 뒤통수들이 겹겹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햇살을 받아 윤기를 머금고 반짝이는 그 모습이 아찔했다. 고개를 돌렸다. 내 곁으로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또 밀려가고 있었다. 영어학원 수업이 끝난 듯했다. 걷고 뛰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싫었다. 괜히 내가 선 자리를 내려다보며 신발을 바닥에 탁탁 털었다. 바닥이 신발을 붙잡고 놔주지 않기라도 한 듯.


“누나? 연희 누나?”


뒤에서 나를 불렀다. 목소리만 듣고도 정수라는 걸 알았지만 못 들은 척 계속해서 발을 털고 있었다. 그대로 지나치길 바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주고받을 자신이 없었다. 정수는 바람을 저버리고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어, 안녕.”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튀어나왔다.


“오랜만이에요, 누나.”


눈치를 챈 건지 못 챈 건지 마냥 반가운 표정이었다.


“근데……, 어제 술 마셨구나? 지금 집에 가는 거예요?”


얼굴이 화끈했다. 세수는커녕 거울도 제대로 보지 않고 나온 채였다. 얼굴이 푸석한 건지 차림새가 추레한 건지 몰랐다. 옷에서 술에 찌든 내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얼른 버스가 오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목을 빼고 버스가 오는 쪽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여전히 무뚝뚝하게 나오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도로로 한 걸음 내려섰다. 내 뒤로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도 나를 따라 내려섰다. 버스가 멈추기도 전에 버스 앞문에 바싹 다가섰다.


“갈게. 나중에 보자.”


재빨리 인사를 던지고 버스에 오르는데 정수가 팔을 잡아당겼다. 뿌리칠 새도 없이 줄 밖으로 끌려 나갔다.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리며 주춤하는가 싶더니 어서 가라고 팔을 내젓는 정수를 보고는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고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정수는 팔을 놓지 않고 나를 잡아끌었다.


“점심 먹었어요? 난 아직 못 먹었는데. 나랑 같이 밥이나 먹고 가요, 누나, 아님 잠깐만이라도 있다 가요. 간만이잖아.”


적당한 핑계를 대야 하는데 핑곗거리가 하나도 떠오르질 않았다. 정수를 뿌리치고 끝없이 이어지는 줄 끝에 다시 설 엄두도 나지 않았다.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차 문을 닫았다.


IMG_2075.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황망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