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7장. 장면과 장면 사이

by 문성 Moon s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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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못 이기는 척 정수를 따라나섰다. 앞장서는 정수를 두어 걸음 뒤에서 좇아 횡단보도를 건너고 몇 블록을 지나 먹자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안은 한산했다. 대부분이 술집이라 문을 열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정수의 속도가 느려졌다. 두리번거리며 들어갈 곳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천천히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골목 바닥은 누군가 청소를 해놓은 듯 비질을 한 흔적이 있었지만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군데군데 깨진 보도블록과 껌인지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얼룩들이 눈에 띄어 오히려 지저분해 보였다. 지나치는 가게들도 깨끗해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글자가 흔적만 남기고 떨어져 나간 간판에 금이 간 자리를 따라 스티커를 붙여놓은 유리창에 끝자락이 너덜거리는 빛바랜 소주 광고 포스터는 어느 가게에도 빠지질 않았다. 환한 햇살 속에 휑하니 드러나는 낡고 닳은 모습들이 골목을 걷는 나까지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골목 중간쯤 왔을 무렵 정수가 나를 돌아보며 오른쪽을 가리켰다. 역시나 빛바랜 간판에 빛바랜 포스터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삼겹살집이었다. 좋다 싫다 대답하기도 전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리는 정수를 붙잡고 굳이 다른 곳으로 가자는 말을 꺼내는 것도 귀찮아 잠자코 따라 들어갔다.


가게 안은 텅 비어있었다. 카운터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던 아주머니만 우릴 보고 얼른 일어섰을 뿐. 정수가 “아무 데나 앉아도 되죠” 넉살 좋게 말을 붙이자 아주머니도 “아이고, 첫 손님이네, 그럼, 그럼” 호들갑스럽게 대꾸하며 어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정수가 어디 앉을까 머뭇거리는 사이 해가 들지 않아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구석자리에 앉아버렸다. 정수는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와서는 맞은편 의자를 빼며 “여기 삼겹살 2인분에 소주 한 병이요”하고 우렁차게 외쳤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자 태연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에 할 말을 잃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했다.


“누나, 사람이 왜 그래요.”


정수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뜸 정색했다.


“갑자기 잠적해서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요? 어디 아파서 병원에 입원이라도 한 건 아닌가 했어요.”

“입원은 무슨.”

“하도 연락이 안 되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

“조금 지나니까 휴학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그러는데 섭섭하더라.”


정수의 시선을 피해 불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한테 한 번쯤은 연락할 줄 알았어요.”

“미안……. 연락할 정신이 없었어. 어제 미정이한테 처음 연락한 거야.”


아주머니가 쟁반을 들고 다가오자 우리는 약속한 듯 입을 다물었다. 밑반찬을 하나씩 내려놓고 소주와 술잔 그리고 삼겹살까지 내려놓은 다음 가스를 켜고 불판에 고기를 올리는 아주머니를 가운데에 두고 정수는 할 말이 남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나는 수저를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불 조절을 마무리하고 돌아서는 순간 재빨리 술병을 잡아 정수 앞에 놓인 잔에 술부터 따랐다.


“만나서 얘긴 안 하고 술만 마시려고요?”

“어떻게 알았니, 마시자, 마셔. 네가 시킨 거잖아.”


술병을 들이밀며 말을 막았다. 정수도 슬쩍 내 얼굴을 살피더니 더 이상 군말은 하지 않고 술병을 받아 들어 내 잔을 채웠다. 거의 동시에 잔을 들어 부딪치고 잔을 비웠다. 우리는 계속 먹고 마시기만 했다. 정수가 잔을 채우고 비우고 나면 내가 잔을 채우고 다시 비우고 나면 정수가 채웠다. 술로 대화를 대신하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판 위에 남아 있던 고기 몇 점이 타고 있었다. 눈이 시렸다. 연기가 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눌어붙은 고기도 앞에 앉아 있는 정수도 흐릿해지고 있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밑도 끝도 없이 고기가 타는 걸 보면서 울먹이고 있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에 그것도 후배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순 없었다. 눈물이 나지 못하게 눈을 깜박이며 잔을 들어 단숨에 털어 넣었다. 정수가 다시 잔을 채우는 사이에 젓가락을 들어 불판에 남은 고기 몇 점을 몽땅 입에 욱여넣고 씹고 또 씹었다.


정수가 따른 잔을 비우고 내가 술을 따랐다. 술병을 탈탈 털어 잔을 채우고 나니 빈 병이 네 개로 늘어나 있었다. 잔을 들어 부딪치며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서로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합의했다. 마지막 잔을 비우고 일어나 카운터 앞에 가서야 머리를 맞대고 삼겹살 2인분에 소주 네 병이 얼마인지 소리 내어가며 곱셈에 덧셈을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서로 돈을 내겠다며 각자 지갑에서 돈을 꺼내 들고 몸싸움을 벌였다. 아주머니는 기도 안찬다는 듯 앞다퉈 돈을 내미는 우리 얼굴을 번갈아 훑어보다가 양쪽에서 절반씩 돈을 받았다. 어깨동무를 하고 가게를 나서는데 뒤에서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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