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줄

8장. 어긋남

by 문성 Moon song Kim

1.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적막한 방안에 털썩 드러누웠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긴 했지만 전원은 켜지 않았다. 내가 외박했다는 걸 엄마아빠가 아는지 어떤지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오기 전에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방안이 컴컴했다.


밖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거리며 그릇이 부딪히고 쏴아아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듯했다. 온종일 자고 일어났는데 온종일 걷고 난 것처럼 팔다리가 쑤셨다. 뜨거운 물에 샤워가 간절했다. 지금이라면 엄마와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고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부엌에 있는 엄마를 모른 척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한 손에 샤워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수도꼭지를 돌리는 순간 엄마가 “얼마나 술을 퍼부었으면 방 안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해” 놓칠 줄 알았냐는 듯 욕실 문 밖에서 소리쳤다. 더 빨리 수도꼭지를 돌렸다. “어디서 뭘 하다가 다음날에야 들어와!” 물이 나오기 시작하고도 수도꼭지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돌렸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이어지는 엄마의 성난 목소리가 욕실 바닥을 때리는 물소리에 묻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샤워기를 높이 걸고 서서 쏟아지는 뜨거운 물을 맞았다.


흩날리는 눈발 속 그의 뒷모습이 단출한 그의 방과 겹쳐졌다. 끝없이 되풀이되던 정수의 이야기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미정이와 지혁 오빠의 이야기와 뒤섞였다. 정수와 맥주를 마셨다. 정수를 만나기 전에 미정이가 남겨놓은 쪽지를 들고 미정이 방을 나섰다. 미정이와 지혁 오빠를 만나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시기 전에 핸드폰을 움켜쥐고 집에서 빠져나갔다. 시간 순으로 되짚어 봐도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일처럼 여겨졌다. 자고 일어나니 며칠이 훌쩍 지나가버린 듯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아빠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굳은 얼굴로 TV뉴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나 때문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도 않았다. 애써 날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노려보며 고함치기 직전이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마저 급박했다.


“밥 먹고 들어가 쉬어라.”


긴장을 끊은 건 엄마였다. 부엌에서 고개를 빼고 아빠 눈치를 살피며 나를 불렀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있느라 피곤했을 텐데.”


덧붙이며 눈짓했다. 아빠는 내가 이박삼일을 밖에서 보내고 왔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괜찮아요, 먹고 왔어.”


얼른 대꾸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문을 채 닫기 전에 엄마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너 진짜 왜 그러는 거야, 안 그래도 네 아빠가 너 때문에 벼르고 있는 거 알아 몰라, 너 휴학하고 나서 벼르고 있는 거 아냐고 모르냐고.”


목소리를 낮추고 쏘아댔다.


“네 언니 취직하느라 고생한 거 뻔히 보고도, 정신 차리고 공부만 해도 시원찮을 판에, 어떻게 이틀이 지나서, 그것도 술에 떡이 돼서야 기어들어와, 너 미쳤지, 미쳤어, 도대체 밤새도록 어디서 뭘 하고 다닌 거야, 응?”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대신 내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챘다.


“왜, 나쁜 짓이라도 할까 봐?”


손을 뿌리치며 받아쳤다.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침묵이 흘렀다. 귓가가 얼얼했지만 만져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엄마가 뒤늦게 뻗은 손을 움츠렸다.


“네가 지금 사춘기니, 사춘기야, 중고등학교 때도 안 그랬던 애가 왜 그러는데, 너 아빠 술 마시고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진절머리 나, 너까지 그러지 마라, 응?”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퍼붓고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아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둠이 눈에 익자 방안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널브러져 있는 이부자리 옆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가 쌓여 있었다. 의자에 대충 걸쳐놓은 옷들도 쌓이고 쌓여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책상도 물건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쓰러진 책 더미 사이사이 가방이며 목도리 따위 잡동사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빈 공간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숨이 막혔다. 방안이 거대한 쓰레기장이 돼 있었다.


밖에서 TV가 계속 떠들어댔다. TV 소리와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식사가 끝나고 또다시 TV 소리와 물소리만 들리는 설거지가 이어졌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귀가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엄마아빠가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열렸다. 발소리와 방문 여닫는 소리에 언니가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욕실로 들어가 씻고 있다는 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언니도 방으로 들어가고 나자 밖에서는 이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모두가 잠자리에 든 듯했다. 나 혼자 어둠 속에 앉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째깍째깍. 기다렸다는 듯 시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째깍째깍째깍. 귀를 막아 봐도 소용없었다. 째깍째깍째깍째깍. 벌떡 일어나 방안을 서성거렸다.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신경줄이 팽팽히 조여들었다.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의자에 쌓여 있는 옷더미에서 외투를 찾아 입었다. 책상을 더듬어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고 서랍 깊숙이 숨겨둔 비상금 봉투를 꺼내 지갑에 쑤셔 넣었다. 방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살그머니 문손잡이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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