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장면과 장면 사이
6. 방바닥이 뜨거웠다. 펄펄 끓고 있었다. 바닥에 닿은 등은 뜨겁다 못해 따가운데 몸은 으슬으슬했다. 바닥에 닿은 부분만 빼고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뜨거운 온돌바닥에 얇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듯했다.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렸다.
“형, 어쩌다 보니…….”
“그래, ……아침에 일찍…….”
문 여닫는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묻혀 대화가 들릴 듯 말 듯 이어졌지만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정수에게 대답하는 사람은 분명 그였다. 나지막이 울리는 목소리에 가슴이 저릿했다.
끼익 방문이 열렸다. 서늘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차가운 공기에 밤바람의 여운이 실려 있었다. 젖은 흙냄새가 풍겨왔다. 비릿하면서도 상쾌했다. 누군가 머리맡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끼익 소리를 내며 방문이 닫히고 젖은 흙냄새도 서늘한 기운도 사라져 버렸다. 누구였는지 일어나 확인하고 싶었지만 눈꺼풀 하나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깊게 잠들지도 못하고 완전히 깨어나지도 못한 채 잠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도 분간이 되질 않았다.
따르릉. 따르르릉. 따르르르르릉.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몇 초가 지나도 끄떡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팔부터 뻗어 자명종을 찾았다. 책상 위에서 울리는 자명종을 찾아내 알람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낯선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다시 필름이 끊어져버린 것이었다. 방 안을 둘러봤다. 벽에 걸린 내 점퍼와 목도리를 제외하고는 처음 보는 것뿐이었다. 빛바랜 벽지도 팽개쳐진 이불도 그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물건들도.
밖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방문 바로 앞에 정수가 이불을 둘둘 말고 자고 있었다. 정수가 깰까 봐 숨죽여 점퍼를 입고 목도리를 챙겨 방에서 나왔다. 이불 끝으로 비죽이 나온 정수의 발을 건들지 않으려고 누워 있는 정수를 빙 돌아 현관에 섰다. 현관 옆 방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좁은 틈새로 보이는 이부자리와 그 옆에 펼쳐놓은 책 몇 권 그리고 벽에 걸린 옷가지 두어 개. 단출한 방안의 모습에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의 방이었다. 정수가 침을 튀겨가며 그와 함께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던 장면이 뒤늦게 떠오르고 있었다.
손을 뻗기만 하면, 방문을 밀고 한 발 딛기만 하면, 순간 방 안에서였는지 등 뒤에서였는지 누군가 뒤척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숨을 죽였다. 현관에 내려서서 몸을 숨기고 신발 안으로 발을 밀어 넣었지만 얼른 발이 들어가질 않았다. 몇 번이나 다시 넣어 봐도 제대로 들어가질 않아서 신발끈을 풀어야 했다. 쪼그리고 앉아 신발끈을 푸는데 바로 옆에 그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먼지투성이 낡은 운동화에 눈이 가는 걸 애써 무시하며 손을 재촉했다.
드디어 신발끈을 고쳐 신고 몸을 일으키다 눈물이 툭 그의 운동화 앞코에 떨어졌다. 울음이 터질까 봐 입술을 깨물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채 문을 닫은 다음 문이 완전히 닫힌 걸 확인하고 손을 놓고 돌아섰다. 그러고도 소리가 들릴까 싶어 반쯤 열린 대문을 닫지도 않고 골목으로 나섰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얀 골목길에 눈을 처음 밟은 누군가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 위로 소리 없이 눈이 더해져 다시 발자국을 지우고 있었다. 발자국을 남긴 누군가도 아직 잠들어 있는 이들도 세상 사람들 모두 다 사라져 버린 듯 고요한 풍경이었다. 참고 있던 숨을 토하자 뿌연 입김이 춤추듯 가볍게 흩날리는 눈 사이로 사라졌다.
희미해지는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뽀드득 쌓인 눈이 소리를 냈다. 조급하던 발걸음이 느려졌다. 뽀드득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잘 들어보려고 고개를 숙였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골목길 끝에 그가 돌아서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슬리퍼를 끌며 맞은편 골목으로 바쁘게 사라졌다.
다시 만난다면 어찌해야 할까. 수없이 상상해온 순간이었지만 사라지는 그를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눈앞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하얀 골목길 위로 여전히 소리 없이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발을 뗐다. 따라 걷던 발자국은 그의 것이었다. 남은 발자국 개수가 줄어들수록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골목이 끝나고 큰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다르자 맞은편 골목 모퉁이에 서 있는 그가 보였다. 반쯤 보이는 뒷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조금은 구부정하게 앞으로 기울어진 어깨와 바지 앞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 그리고 비스듬히 한쪽으로 기대고 서 있는 다리. 정말로 그가 맞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충동이 솟구쳤다. 달려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 맞추고도 싶었고 그가 했던 것과 똑같이 그의 눈을 노려보며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만한 말을 내뱉고도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의 뒷모습이 휘어진 골목길에 가려져 더 이상 보이지 않아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있는 골목을 지나쳐 내리막길 아래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도로에는 눈이 다 녹아버리고 없었다. 내리는 눈도 아스팔트에 닿자마자 녹아버렸다. 버스정류장 주변에 쌓인 눈은 검은색 진창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버스가 빵빵거리며 승용차들을 헤치고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버스가 멈추기도 전에 버스에 달려들었다. 나도 사람들 속에 끼어 기를 쓰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이 사람들로 꽉 차서 앞문가에 서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차창만 쳐다보고 있는데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정류장이 멀어지고 있었다. 눈 내리는 거리는 하얀색보다는 회색에 가까웠다. 조금 전에 보았던 새하얀 골목길 풍경은 환상이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