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9장. 망상

by 문성 Moon song Kim

1. 한밤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끈질기게 울리는 벨소리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에 빛나는 화면을 확인했다. 지혁 오빠였다. 얼마만의 연락인지 몰랐다. 아마도 방학을 한 이후 처음인 듯했다. 꼭 받아야 하는 걸까 오랜만에 그것도 이 시간에 연락한 걸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는 와중에도 핸드폰은 쉬지 않고 울려댔다. 스타카토로 꽂히는 벨소리가 어서 전화를 받으라고 재촉했다. 주저하다가 통화버튼을 누르자 우렁찬 목소리가 스피커를 뚫고 튀어나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엉겁결에 대꾸했다. 전화기 너머가 소란스러운 게 술자리에 있는 듯했다.


“잘 있었냐? 오랜만이다. 근데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인마.”

“자고 있었는데…….”

“지금이 몇 신데 자고 있어? 술 먹자고 사람들을 그렇게 괴롭히더니 이제 밤나들이 그만둔 거야?”

“오빠야말로 술 좀 마신 것 같은데?”

“마셨지, 마셨는데 네가 없어서 전화해봤지. 우리 같이 한 잔 해야지?”

“글쎄.”

“글쎄는 무슨. 어차피 내일 한 잔 하게 될 텐데 뭘, 내일, 올 거지?”

“내일?”

“이것 봐라 이것 봐. 지 졸업 아니라고 까맣게 잊고 있었구먼. 내 이럴까 봐 전화했다. 내일이 졸업식이잖아, 뒤풀이, 올 거지?”


정말로 잊고 있었다. 말문이 막힌 대신 생각이 달음질쳤다. 졸업식은 매년 2월 마지막 주에 있었다. 내일이 졸업식이라면 2월도 다 지나가버린 셈이었다. 며칠만 지나면 개강이었다. 다시 학교에 가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 졸업은 못해도 졸업사진은 동기들이랑 같이 찍기로 했다. 뒤풀이에 다들 온다니까 나와. 너도 이제 복학이잖아, 오래간만에 못 본 애들도 보고 시끌벅적하게 한 잔 하자.”


졸업식 날 저녁은 으레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과 사람들이 모두 모여 뒤풀이하는 게 관례였다. 졸업생을 축하한다는 핑계로 거나한 술판이 벌어지곤 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북적일 터였다.


“왜 대답이 없어, 나오라니까. 내일 무슨 일 있냐? 뭐, 약속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닌데…….”


그와 마주칠 게 뻔했다.


“할 일도 없는 것 같구먼. 뭘 빼고 그래 인마. 웬만하면 그냥 나와, 나오는 걸로 안다.”


지혁 오빠는 막무가내로 결론을 내더니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핸드폰을 귀에서 떼지도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가고 싶지 않았다. 그와 마주친다면 호기심 어린 시선들 앞에서 나를 외면하고 사라지는 그를 봐야 할 터였다. 내일 가지 않는다 해도 복학을 하고 나면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차라리 내일 사람들 앞에서 내가 먼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외면하고 싶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도 싶었다.


정말로 그가 나를 외면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외면해버릴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 마주하기도 전에 그가 나를 보고 피해버리지는 않을까. 아무래도 가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자꾸만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결정은 하지 못하고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엄마를 피해서 찌뿌드드한 몸을 끌고 억지로 집을 나섰다가 점심을 겨우 넘기고 돌아왔다. 다시 이부자리에 누워서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잠들었다가 또다시 핸드폰 울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허둥지둥 일어나 핸드폰을 찾아들고는 정작 전화를 받지는 못했다. 화면에 지혁 오빠라고 뜬 걸 보고도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자 맥이 풀려 털썩 드러누웠다. 방 안이 어두웠다. 밖에선 TV가 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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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핸드폰이 울렸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세 번째 핸드폰이 울리고 그것도 한참을 울리다가 끊어질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놓지도 못하고 있었다. 벨소리를 듣고 있을 때보다도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기어이 폴더를 열어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정수 그리고 미정이었다.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알림음과 함께 문자가 왔다. “전화 안 받아서 문자 남긴다. 비어캐빈으로 가는 중. 벌써 2차다. 끝나기 전에 빨리 와.” 지혁 오빠였다.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다들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에 올라타면서도 마을버스로 갈아타면서도 고민하고 있었다. 가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가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도대체 어떤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날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왔을까. 우리가 마주치게 될까.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며 그와 마주하는 순간을 그려보려 했지만 그려지질 않았다. 바람이 세차게 뺨을 때리고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추위도 느껴지질 않았다. 다만 시한폭탄이 터지길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을 만날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비어캐빈 간판이 저 앞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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