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10장. 본능적 회피

by 문성 Moon s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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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서 빨리 내 방으로 돌아가 이불속에 웅크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택시가 우리 동네에 들어서자 골목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택시에서 내려 어두컴컴한 골목을 달음박질쳐 대문 앞에 섰다. 가방 앞주머니를 더듬어 열쇠를 찾아 소리가 나지 않게 대문과 현관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고 나서도 불을 켜지 않은 채 옷을 갈아입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문제가 되질 않았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디에 이부자리가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곧바로 이불속으로 기어들었다. 모든 게 그대로 놓여 있는 자리로. 내가 바꾸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는 유일한 자리로.


다음날부터 또다시 가족을 피해 가며 하루의 대부분을 이불속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이불속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괜히 폴더를 열어보고 버튼을 눌러보고 메뉴를 하나씩 실행시켜보기도 했다. 이따금 문자가 오거나 전화벨이 울려도 전화를 받지도 않고 문자에 답을 하지도 않은 채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핸드폰은 아예 울리지 않았다. 핸드폰만으로 사람을 가까이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멀리하기에는 충분했다. 내가 핸드폰을 비우는 것으로 사람들을 포기했듯이 그들도 몇 번의 부재중 통화와 몇 번의 문자메시지로 나를 포기했다. 우리는 서로를 포기한 것이었다. 모든 게 그대로라는 착각 따위는 불가능한, 언제라도 산산조각 날 수 있는 살얼음판 같은, 이제는 그와 나 사이에 경계가 돼버린 관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는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부터 찾아 오늘이 며칠인지 확인했다. 방금 핸드폰을 열어 개강하는 날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고도 이내 핸드폰 화면의 날짜와 시간이 어른거려 또다시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켜서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잠시도 쉬지 못하고 매달리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개강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핸드폰에 목매고 있었다.


누워있을 때는 물론이고 화장실에 갈 때에도 들고 일어섰다. 배터리가 다 닳으면 충전기를 꽂고서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 직성이 풀렸다. 막상 핸드폰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고는 건성으로 버튼을 눌러대고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보는 게 전부였지만.


밤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고 들여다보고 있다가 눈이 시려 더 이상 들여다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 그제야 내가 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여전히 무얼 해야 하는 지도 무얼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의지조차 없었다. 밀려드는 불안에도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다시 핸드폰이 울린 건 개강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온종일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으면서도 갑작스레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리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화면에 뜬 번호는 핸드폰 번호가 아니라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유선전화번호였다. 전화가 끊어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학교 전화번호가 똑같은 앞자리로 시작한다는 게 떠올랐다. 아직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김연희 학생인가요?”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여기 인문대 행정실인데요. 이번 학기 등록이 안 돼 있어서 확인 차 연락했어요. 지난 학기에 휴학한 거 맞죠? 이번 학기 등록도 안 할 건가요?”

“휴학한 건 맞는데……, 등록이요?”

“아, 몰랐어요? 휴학한 해당 학기가 끝났으니까 다음 학기는 다시 서류를 제출해서 등록을 해야 재학생으로 인정이 돼요. 등록은 학기 기준이라. 그럼 이번 학기에 복학인가요, 아니면 휴학 연장인가요?”

“그게…….”

“복학이면 복학 신청서를 제출하면 되고 휴학 연장이면 휴학 신청서를 제출하면 돼요. 인문대 행정실에 가서 양식 맞춰 작성하고 지도교수님께 사인받아야 되는 거, 저번에 내봤으니까 알죠?”

“네……, 고맙습니다.”

“이번 주 안에는 꼭 제출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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