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10장. 본능적 회피

by 문성 Moon song Kim

5. 정수가 놀라서 외치자 뒤에서 종알대던 목소리들이 멈췄다. 또 한 번 모두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 학기 더 휴학하기로 했어.”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정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뒤늦게 불편한 기색을 알아챘는지도 몰랐다.


“뭐 때문에요? 뭐 할 건대?”


다그침에 가까운 물음이 재차 이어졌다. 자기가 주의를 끌어놓고는 아차 싶었는지 목소리를 한층 낮춰 속삭이고 있었다. 내 팔을 붙들고 있던 정수의 손을 내려놓으며 웃어 보였다.


“여행. 여행 갈 거야.”

아까 그 거짓말이 천연덕스럽게 다시 나왔다. 정수 얼굴에 안심한 기색이 스쳤다.


“얘들아, 들었냐? 누나 휴학하고 여행 간대.”


말릴 틈도 없이 잽싸게 소리쳤다. 뒤에 선 이들에게 광고하고 있었다.


“정말요, 언니? 부럽다!”

“진짜 좋겠다! 어디로요? 얼마나?”

“배낭여행이에요? 배낭여행? 그럼 유럽? 아, 나도 가고 싶다!”


나와 정수 그리고 그와 후배들로 나뉘어 있던 두 무리가 이제는 한 무리가 돼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도 분위기에 동참하듯 잠자코 있었지만 사실은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내 앞으로 다가서는 애들 뒤에 그대로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내 쪽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나, 애들이 물어보잖아. 어디로 가요? 얼마나?”


정수가 다시 팔을 잡아 흔들며 채근했다.


“글쎄……, 그래도 휴학까지 하고 하는 여행이니까, 가능한 한 멀리, 가능한 한 오래?”


또다시 거짓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뱉어놓고도 도대체 내 머릿속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지 알 수 없었던 단어가 이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뻔뻔스럽게 질문에 맞춰 답을 꾸미기까지 하고 있었다. 여행이 당연한 미래가 되고 있었다.


“우와, 말만 들어도 근사하다! 잘 다녀와요, 언니!”

“진짜 멋있어요, 언니!”

“누나, 좀 멋진데? 잘 다녀와요.”


앞 다투어 감탄하며 건네는 덕담들에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받았다.


“실은 아직 아무것도 못 정했어.”

“에이, 뭘요, 그래도 휴학까지 한 걸 보니까 마음 단단히 먹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상상만 해도 근사하다.”

“나도. 나도 가고 싶다.”

“너희 밥 먹으러 간다며. 나도 이제 가봐야겠다. 나중에 또 보자.”


이야기가 더 길어지기 전에 말을 끊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언니, 여행 가서 선물 사 오는 거 잊지 마세요. 히히.”

“나도, 나도, 내 것도요, 언니.”

“누나, 얘들 빼고 나만 사다 줘요. 나만.”

“으이그, 네 것만 빼놓고 사 와야겠다.”


연신 자기를 가리켜가며 끝까지 선물을 조르는 정수의 머리를 콩 쥐어박고 돌아섰다. 뒤에서 와 웃음이 터졌다. 다시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니, 잘 다녀와요.” “여행 다녀와서 봐요.” “건강히 다녀오세요.” 뒤에서 인사하고 있었다. 걸음을 쉬지 않고 손만 들어 인사에 답하는 찰나 “멋지게 살아라” 무심하게 던지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멈추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대로 비탈길을 끝까지 올라가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에 올라타고도 창밖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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