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지나가버린 이야기
1. 버스에서 내리자 숨이 턱 막혔다. 아직 오전이었지만 달궈질 대로 달궈진 공기가 숨도 못 쉴 정도로 열을 뿜었다. 오랜만에 보는 학교가 익숙한 듯 낯설었다.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도 처음 와보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정류장 곁으로 드리워진 작은 그늘에 다닥다닥 붙어 우거지상을 하고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고 아스팔트가 이글거리는 정문도 지났다. 늘어선 가로수를 따라 걷는데 벌써부터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인문대에 도착했을 때에는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키 작은 덤불 위로 아지랑이만 피어오르는 내정을 지나 현관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늘진 콘크리트 건물 안에 고여 있던 찬 공기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형광등 불빛이 어둑한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는 내내 인기척 하나 없는 건물이 영 어색했다.
행정실 문을 열자 직원들 모두 동작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눈치를 보며 서류작성 테이블로 향하는데 “무슨 일 때문에 왔죠?” 어느 직원이 물었다. “복학신청 때문에,”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 직원이 서류작성 테이블을 턱으로 가리켰다. 다들 자기 앞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게 머쓱하리만치 무심한 사람들의 태도에 도리어 마음이 놓였다.
복학신청서를 꺼내 빈칸을 채우고 교수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문을 노크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척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손잡이를 돌려봐도 돌아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문이 잠겨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는 내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기껏해야 복학신청서에 도장 하나 찍으러 온 것뿐인데 왜 자꾸 긴장을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종이 한 장을 펄럭이며 계단을 한 층 더 내려가 조교실로 들어갔다. 수화기를 들고 있던 조교언니가 나를 보곤 잠깐만 기다리라고 눈짓을 보냈다. 통화가 끝나길 기다리며 손에 들고 있던 복학신청서를 괜히 한 번 내려다봤다. 땀에 젖은 손 때문에 얇디얇은 종잇장이 습기를 먹어 우그러져 있었다.
“뭐 때문에……?”
“복학신청서에 도장을 받아야하는데 지도교수님이 안 계셔서.”
조교언니가 손을 내밀었다. 복학신청서에 적어놓은 교수의 이름을 확인하고 다른 한 손으로 책상서랍을 열어 도장을 꺼냈다. 이제 받아서 행정실에 제출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이번 학기 복학이네. 그럼 한정수 학생 알아요?”
조교언니가 도장을 찍어 건네며 물었다. 엉겁결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한정수 학생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연락 왔는데, 알고 있어요?”
말문이 막혀 눈만 끔벅거렸다.
“학번대표가 전화했더라고. 비상연락망으로 알려달라고. 전체문자를 보내긴 할 텐데 발인이 내일이라니까 늦기 전에 연락해 봐요.”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고 조교실에서 나와 행정실로 갔다. 학생계 창구에 복학신청서를 올려놓고 기다렸다. 직원이 눈으로 훑어보며 서류내용을 확인하는 사이 내 옆에 있던 에어컨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찬바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바람에 밀려 눅눅한 옷자락이 등허리에 닿을 때마다 냉기에 소름이 돋았다.
“다 됐네요.” 직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몸을 돌렸다. 계단을 내려와 복도를 지나는 걸음을 재촉할수록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내 발소리가 시끄러웠다. 인문대 건물을 빠져나와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섰다.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햇살이 뜨겁다 못해 따가웠다. 언제 그랬냐는 듯 등줄기를 타고 스며들던 냉기는 사라지고 한낮의 무더위가 다시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땀에 전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책상부터 뒤졌다.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이며 파일을 들춰보고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고 나서야 마지막 서랍에 열쇠고리와 포스트잇 따위 온갖 잡동사니들 속에 끼어 있는 과주소록을 발견했다. 주소록을 펼치자 가나다순으로 나열된 이름들이 처음 보는 이름들처럼 눈에 설었다.
이름을 하나씩 짚어보며 정수를 찾았다. 한손에는 주소록을 다른 한손에는 수화기를 들고 정수 번호를 누르다 전화를 끊어버리고 다시 주소록을 넘겨가며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마침내 지혁오빠 번호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걸 들으면서도 끊을까 말까 고민을 끝내지 못하고 있는데 신호음이 멎어버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혁오빠가 전화를 받고 말았다.
“아, 오빠,”
“누구……?”
“연희…….”
말꼬리가 저절로 흐려졌다. 어떻게 말을 이어야할지 몰랐다.
“아, 연희구나. 모르는 번호라 누군가 했네. 여행 끝난 거야? 핸드폰 정지던데?”
“그게, 들어온 지는 이 주 정도 됐는데, 정지된 걸 아직 안 풀어서, 집전화로,”
“그랬구나. 연락이 안 되서 아직 안 온 줄 알았지. 어제 전화 했는데. 정수 때문에.”
“아까 복학신청서 내러 갔다가 들었는데. 정수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안 그래도 영안실에서 나오는 길이야. 내일도 와야 할 것 같다. 너도 올 거지, 잘됐다, 내일 아침에 보자.”
“오늘 저녁에 가보려고 했는데…….”
“웬만하면 내일 하루 시간 좀 내라. 내일이 발인인데 운구할 사람도 부족하다고 하더라고. 내일 사람 적으면 아무래도 좀 그렇잖아.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아버지 아시는 분들한테는 연락도 제대로 못한 것 같더라. 정수가 상주라 올 사람들도 빤하고. 거의 다 다녀가서 오늘 저녁엔 문상도 별로 안 올 테고 인우랑 진욱이가 부조 받고 이것저것 도와주느라 거기서 먹고 자고 하니까 괜찮을 거야. 발인이 내일 아침 7시니까 7시 전에만 오면 돼. 참, 어딘지는 아냐, 여기가 어디냐면…….”